로고

현재를 비추는 거울,
역사

역사학자, 건국대 사학과 교수 신병주

 

사극 통해 역사의 매력 알게 되다

신병주 교수는 KBS ‘역사저널 그날’, JTBC ‘차이나는 클라스’ 등의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하여 일반 대중에게도 매우 친숙한 역사학자다. 그는 방송에서 청중을 들었다 놨다 하는 재치 있는 입담과 풍부한 이야기를 곁들인 해설로 우리에게 인문학의 정수를 맛보게 해준다. ‘역사의 대중화를 선도하는 사학자’로 그가 첫손가락에 꼽히는 이유다. 방송뿐만 아니라 <조선을 움직인 사건들>, <왕으로 산다는 것> 등의 대중 역사서도 많이 집필했다. 다양한 단체의 요청으로 인문학 특강도 많이 다니는데, 부산은행연수원에서 특강을 한 인연도 있어서 ‘부산은행 이야기’의 인터뷰 요청도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와의 만남에서 가장 먼저 궁금했던 것은 ‘처음 역사에 매료된 순간이 언제였느냐’는 것이었다.

“일단 학창 시절부터 역사가 흥미로웠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TV에서 방영하는 사극을 즐겨봤거든요. 혜경궁 홍씨의 삶을 그린 <한중록>이라든지, 옛날에 남성우라는 배우 분이 태종 이방원 역으로 출연한 드라마 <세종대왕> 등에 푹 빠졌죠.”

그리고 당시 각 지역마다 ‘문화교실’이라는 것이 있어서, 이순신 장군과 같은 위인을 테마로 한 강연이 종종 열렸는데 그런 강연도 들으러 다니며 역사 공부에 관심을 더욱 많이 갖게 됐다고 한다.

_KBS ‘역사저널 그날’

 

유튜브 ‘사피엔스 스튜디오’

 

전국을 돌며 역사를 공부하던 시절

그렇게 어렸을 때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그가 대학 진학 시 전공을 사학과로 결정한데는 또 하나의 결정적 이유가 있었다. 다른 과에서는 보통 대학 안에서만 공부를 하는 데 반해, 사학과는 유적 답사를 해야 하니까 전국 방방곡곡을 다닐 기회가 많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전국을 돌아다니며 역사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볼 수 있다는 게 큰 매력으로 느껴졌다는 것.

“학기별로 경상남도, 전라남도, 전라북도 이런 식으로 나누어 답사를 나가기 때문에 4년을 마치면 전국 중요한 사적지는 다 돌아보게 되어 있어요. 책으로만 공부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역사의 현장을 실제로 본다는 게 학문에서 매우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병주 교수는 한국사 중에서도 조선시대 역사를 주로 연구했다. 조선시대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조실록> 외에도 <승정원일기>와 같은 기록물을 풍부하게 남겨주었다. 조정뿐만 아니라 지방의 서원 등에도 수많은 기록이 남아 있다. 때문에 사료가 부족한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에 비해 연구할 거리가 많고 근현대사와도 가까워 현대의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부분도 많다고 한다.

예를 들어 얼마 전까지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킨 코로나19 같은 전염병에 대해서 해법을 찾고자 할 때도 조선시대 기록은 참고가 된다. <향약집성방>, <동의보감> 같은 의서 외에도 <일성록>, <양아록>, <이향견문록> 같은 책을 보면 전염병 관련 수많은 기록이 나온다. 그는 최근 이러한 기록들을 참고하여 과거 선조들이 전염병에 어떻게 대처했는지, 왕이 어떻게 민심을 달랬는지 등을 정리한 <우리 역사 속의 전염병>이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매우 ‘실용적’인 학문, 역사

이처럼 과거의 역사를 깊이 연구하고 현대의 대중들이 이해하기 쉽게 알리는 데 신병주 교수가 다양한 방면으로 노력하는 데는 깊은 뜻이 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는 말이 있죠. 과거의 일이 현재에도 비슷한 양상으로 계속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역사가 그저 옛날이야기에 그치는 게 아닌 겁니다. 우리가 역사를 잘 알면 과거의 좋은 정책이나 제도를 계승할 수 있고,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잘못된 결정들은 반면교사 삼아 피해갈 수 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게 비실용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런 이들에게 신병주 교수는 절대 부인할 수 없는 확실한 사례를 하나 들어주었다. 바로 현재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한류 문화 콘텐츠 생산에 우리 선조들의 기록과 유형적·무형적 문화유산이 한몫했다는 것.

“지금 역사를 소재로 하는 문학, 드라마, 영화 등이 엄청 많잖아요. 그런 문화 콘텐츠를 창작하는 데 역사는 중요한 재료가 되는 것이죠. 스티브 잡스도 첨단 산업의 기반에는 인문학이 탄탄히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듯이 역사가 다른 학문 영역이나 문화 콘텐츠의 발전에 그런 역할을 해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을 전 세계인들이 시청하면서 우리의 전통 ‘갓’에 대해 알게 되고 심지어 호기심에 갓을 구매까지 하려 했던 일을 생각해볼 때, 선조들이 남긴 기록과 문화유산은 오늘날 우리나라의 문화산업에도 확실히 큰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지역 활성화를 위해 과거의 위인이나 역사 이야기를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경남 진주시의 경우 남명 조식 선생 같은 학자의 실용주의 학문이 현재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연구하고 그런 연구를 바탕으로 그분의 유적지를 재정비하거나 그분과 관련된 유·무형의 콘텐츠를 만드는 게 해당 지역민들에게 큰 긍지를 심어줄 수 있는 것이죠.”


 

오리 이원익 선생을 존경해

신병주 교수에게 과거 위인 중 현 시대의 바람직한 리더로 생각하는 인물을 꼽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랬더니 한 분은 누구나 다 인정하는 세종대왕이고, 또 다른 한 분은 오리 이원익 선생이라고 했다. 이원익 선생은 남인에 속했으면서도 당론에 기울지 않고 바른길을 걷고자 하였으며, 서민적인 성품을 지녀 ‘오리정승’이라는 애칭으로 백성들에게 사랑받았다.

“이원익 선생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빠짐없이 등용될 정도로 그 시대에 꼭 필요한 인재였습니다. 조선이 임진왜란의 위기를 넘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대동법을 시행해 굶주린 백성들을 보살폈죠. 그는 영의정을 여섯 번이나 지냈지만 청렴하게 살아서 집 한 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할 정도로 가난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조가 하사한 집이 지금도 경기도 광명시에 남아 있습니다.”

대중과 소통하는 역사학자로서 그는 일선 전방부대 같은 곳에 가서 강연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TV 방송뿐만 아니라 ‘사피엔스 스튜디오’ 같은 유튜브 방송에서도 그의 재미있는 역사 강의를 들을 수 있다. 앞으로도 계속 신병주 교수의 연구와 강연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알고, 그 속에서 각자에게 필요한 유익한 교훈을 얻어갈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