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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흥성을
가져오는
돈의 힘

_아카데메이아에서 플라톤과 토론을 벌였던 아리스토텔레스. 라파엘의 그림 <아테네 학당> 중 일부

 

공자학당 운영비는 제자가 충당

오늘날까지 동양사회에서 가장 강력하게 살아있는 유학사상의 비조, 공자가 추구한 사상은 실용과는 거리가 멀었다. 조상제사를 중시하고 정명론이라며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을 강조했다. 천하의 주인이었던 주나라의 권위가 약해짐을 안타까워하며 주나라 중심의 봉건체제로 돌아가자는 대일통(大一統) 사회를 주창하기도 했다. 

하지만 세상이 이미 변했는데 어떤 제후가 과거체제로 돌아가겠는가? 조국 노나라에서는 쓰임새가 없어 천하를 주유하며 제후들을 만났으나 그의 주장을 귀담아듣는 이들은 없었다. 결국 노나라로 돌아와 역사책 <춘추>를 쓰고 제자 3천 명을 양성했다. 그의 공자학당에서는 (먹고 살 형편은 되는) 누구나 배울 수 있었고, 여유 없는 집안 출신 제자들은 열 조각의 육포 정도만 내는 속수지례(束脩之禮)도 가능했다. 말하자면 공자학당은 가난한 학생들에게는 저렴한 학비와 장학금을 제공하는 좋은 학교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현실적으로 운영비가 부족할 텐데 어떻게 충당했을까? 

공자는 14년간이나 천하를 떠도는 동안 수없이 많은 고초를 겪었다. 위나라에서 오랫동안 머물렀고 송·제·진·채나라를 거처 초나라까지 갔다. 그 과정에서 실속 없는 주장만 일삼는다는 비난을 들었고 산 속에 갇혀 일주일간이나 굶은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그를 돕던 제자가 있었으니 조나라와 노나라 등을 오가며 수천금의 자산을 일구었던 자공(子貢)이었다. 그는 공자가 고향에 돌아와 문을 연 학당의 운영자금을 내놓았음은 물론이다. 

 

먹고 사는 데 연연하지 않았던 맹자

공자의 후계자라 할 수 있는 맹자는 어땠을까? 그에게 남겨진 일화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다. 오늘날의 강남 엄마처럼 아들 교육을 위해 이사를 마다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에게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공자는 젊어서 창고지기를 할 정도로 가난했지만 맹자는 그렇지 않았던 듯하다. 

누구의 지원이 있었는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가 양혜왕을 만나러 위나라에 갈 때 수레에 타고 있던 수행원이 백여 명이나 있었다고 한다. 맹자도 공자와 마찬가지로 일자리를 얻으려고 군주에게 아부하지 않았다. 소신 있는 주장을 해서 가르치려들었고 그러다 보니 군주들은 맹자의 말을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버렸다. 한마디로 고객이 원하는 말을 해주지 않고 이상론을 펼쳤으니, 문전박대 당하지 않고 대화를 나눠준 것이 다행이었다고나 할까? 이런 삶이 가능했던 건 먹고사는 데 연연하지 않아도 되었던 좋은 환경 덕분이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학문 발전에 경제적 후원은 필수

비슷한 시기 아테네의 두 학자 플라톤과 그 제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있다. 이 둘의 경제적 형편은 어땠을까? 공자와 비슷한 인생역정을 가진 플라톤은 아테네의 귀족 출신이었다. 공자는 51세 무렵부터 세상을 떠돌기 시작했지만 플라톤은 30세에 세계 주유를 시작했다. 당시 최고 선진국 이집트에 가서 공부했고, 시칠리아 시라쿠사로 이동해서 군주 디오니시오스에게 자신의 정치철학을 설파했다. 그러나 긍정적 결과를 얻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아카데메이아 학당을 차렸다. 필요할 때마다 돕던 친구들이 있었으니 제자들과 공부하고 토론하는 데 경제적 어려움은 없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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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의 사설학원 ‘리케이온’이 있던 자리(유적 발굴 중)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연구 환경은 더 좋았다. 그는 마케도니아 궁정의사의 아들이었고, 아테네에 유학해 아카데메이아 학당에서 수학했다. 스승 플라톤이 죽은 후에는 마케도니아로 돌아가 알렉산드로스의 가정교사가 되었다. 3년간 왕자의 개인교수로 활동을 마친 후에는 막대한 돈을 교육비조로 받아 아테네에서 ‘리케이온’이란 사설학원을 차렸다. 비록 아테네에서는 외국인이었지만 제자들과 연구하고 토론하는 데 경제적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더구나 그의 학원에는 엄청난 규모의 도서관까지 설립했다니 학문 연구에 최고의 환경이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오늘날에도 학문연구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경제적 안정이다. 그렇다고 학문하는 이들이 돈 버는 데 주력하다 보면 연구 시간이 부족해진다. 따라서 연구자들에게는 경제적 후원을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반드시 주변에 있어야 한다. 부모의 재산일 수도 있고 교육기관이나 국가의 후원으로 학문연구를 할 수도 있다. 가장 좋은 것은 연구자들이 만든 학문을 개인들이 적극 소비하는 것이다.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한 것이지만 잘 쓰는 건 더 중요하다. 지금이라도 좋은 책 한 권 읽고 토론에 참여하고 예술을 즐겨보시라! 이 모두 학문 발전에 기여하는 길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