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철환 작가, 前 MBC PD
“정년이란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청년이 된다.”
주철환 작가가 <월간 에세이>에 기고한 칼럼에 나오는 문구다.
아주대학교 교수를 정년퇴임하고 영원한 청년의 마음으로 살고 있는 그에게서 긍정 에너지를 무한대로 받고 돌아왔다.

한국 예능계의 레전드를 만나다
이 글을 쓰기 전 이 분의 ‘직함’을 어떻게 붙여드려야 하나 살짝 고민을 했다. 유 명 포털 사이트나 지식 사이트의 인물 소개 페이지에는 ‘아주대학교 교수’ 또는 ‘아주대학교 교수 휴직 중’으로 나와 있지만 실제로 만나서 얘기를 나누던 중 현 재는 ‘정년퇴직’한 상태란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왜 사이트에 연락해서 잘못된 정보를 수정하지 않으셨냐고 여쭤보았더니 “제가 인터넷을 안 봐요. 그거 하나 잘못됐다고 세상이 크게 어지럽게 되진 않잖아요.” 라는 쿨한 답변이 돌아왔다. 그래서 요즘 칼럼 등 집필 활동을 많이 하시니 ‘작 가’로 붙이기로 했다.
그런데 교수나 작가 이전에 ‘주철환’이라는 인물을 가장 잘 나타내는 직함은 ‘前 MBC PD’다. 중장년층에게 친근한 <일요일 일요일 밤에>라는 인기 프로그램, 특히 그 안에서도 ‘이경규의 몰래카메라’ 코너를 비롯해 ‘퀴즈 아카데미’. ‘우정 의 무대’. ‘테마게임’ 등 숱한 히트작이 그의 손을 거쳐 갔다. 말하자면 대한민국 예능계의 레전드인 셈이다.
좋아하는 음악으로 인생을 얘기하다
그는 현재 각종 잡지나 신문에 칼럼을 기고하면서 정년 이후 ‘제2의 청년’ 시절 을 활기차게 살아가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예전 지인들을 만나는 일이 빈번하 다고 한다.
“제가 직장을 무려 일곱 군데를 다녔거든요. 그러니 오죽 많은 인연이 있었겠 습니까. 그 인연들 중에서 나를 특별히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나도 흐 뭇하고 좋죠. 옛날엔 만나고 싶어도 시간이 없어서 못 만났지만 지금은 시간 이 있고 건강이 있잖아요. 그동안 못 봤던 영화, 연극, 뮤지컬도 보러 가고 가 족들과 여행도 다니면서 살고 있어요.”
그는 현재 ‘주철환의 음악동네’라는 제목으로 문화일보에 매주 한 편씩 음악 에 세이를 기고하고 있다. 햇수로 벌써 6년째이고 나중에는 이 글들을 모아서 책으 로 엮을 계획도 갖고 있다. 예능 PD로 오랫동안 종횡무진 활약을 했으니 방송계 관련 이야기나 회고담을 쓸 수도 있었을 텐데 왜 하필 음악 이야기였을까.
“저는 대여섯 살 때부터 하루도 노래를 안 들은 날이 없고 하루도 노래를 안불러본 날이 없어요. 얘기할 때도 좋은 노랫말을 인용하는 건 오래 전부터 저의 대화 습관이 됐죠. 저를 길러주신 고모님이 라디오를 즐겨 듣고 음악을 좋아하셨는데 그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매주 월요일 음악 에세이가 게재되면 그의 SNS에는 수백 개가 넘는 반응들로 넘쳐난다. 대개는 친구, 제자 등 아는 사람들이 보내온 찬사들이다. 정년퇴직하고 시작한 칼럼을 지금까지 쓰고 있고, 많은 독자들로부터 힘과 영감을 얻고 있으니 자신은 참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그는 말한다.
정년 이후 행복하게 사는 비결
일흔을 앞둔 나이에도 여전히 동안이고 항상 밝은 미소가 얼굴에서 떠나지 않는 그의 모습을 보고 젊고 행복하게 사는 비결을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첫째로 건강이 중요해요. 아무리 하고 싶은 게 많아도 건강이 좋지 않으면 의욕이 생기지 않거든요. 지금 제가 건강하기 때문에 연재하고 있는 신문 칼럼도 죽을 때까지 쓰려고 하는 거예요. 둘째로 자유로워야 해요. 자유롭다는 것은 내일 꼭 해야 할 일이나 가야 할 곳이 없다는 걸 뜻해요.”
그가 한창 인기 예능PD로 이름을 날릴 때는 자유롭지 않았다고 한다. 시청률을 올려야 하고, 타 방송국과 경쟁을 해야 하고, 모시기 힘든 유명한 사람을 섭외해야 하니까 자유로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 구속에서 모두 풀려난 지금이 소위 ‘잘 나가던 시절’보다 더 행복하다고 말한다. 또한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은 유전적인 요인도 있지만 환경적인 요인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그는 덧붙였다. 환경적인 요인을 얘기할 때는 어렸을 그를 길러주신 고모님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여섯 살 때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 고모님이 저를 마산에서 서울로 데려와 키우셨어요. 고모님은 비록 교육은 많이 받지 못하셨지만 비상한 기억력과 친화력을 가지신 분이셨어요. 또 항상 음악을 좋아하셨고, 저에게 남한테 부담을 주지 말라고 가르치셨어요. 고모님의 ‘초긍정’ 마인드의 영향을 받아서 제가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게 된 것 같아요.”
또 덧붙여 말하길, “남들은 내가 정상적인 가정이 아닌 결핍된 가정에서 자랐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그 결핍이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채울 부분이 많았고, 무엇이든 긍정적으로 보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자신의 행복은 자신이 정의해야 한다
주철환 작가는 현재 우리나라가 OECD 38개 국가 중 행복지수 36위로 최하위권에 들어가 있는 상황에 대해서도 안타깝게 여긴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창 돈을 벌어야 하는 사람들은 시간 여유도 없이 바쁘게 일해야 하고 행복할 겨를이 없다고 해요. 그런데 행복에 대한 정의를 자기 스스로 내리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제가 쓴 ‘행복’이라는 시엔 이런 구절이 있어요. “밥 먹을 때마다 행복하다면 하루에 세 번은 행복한 거다. 숨 쉴 때마다 행복하다면 매 순간 행복한 거다.”라고요.”
이처럼 남의 평가에 자신의 행복을 맡길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가 행복의 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또 어떤 사람은 성공을 행복과 동일시하고, 누군가와 경쟁해서 이기는 데 마음이 얽매이곤 한다. 하지만 주철환 작가는 ‘성공하고 이기는 데’ 인생을 ‘올인’하지 말라고 권한다.
“1등주의는 무조건 불행하게 될 수밖에 없어요. 똑똑한 사람은 약간 바보 연기도 할 줄 알아야 해요. 너무 똑똑한 척을 많이 하면 주위에 적이 많아지게 마련이죠.”
그런 그도 과거에 항상 행복했던 것만은 아니라고 했다. 때론 자신을 깎아내리거나 흔드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걸 ‘이겨냈다’기보단 그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게 전부라고 한다.
이처럼 ‘정년’ 이후 행복한 ‘청년’으로 살고 있는 그에게 마지막 버킷 리스트가 있다면 자신에게 항상 고마운 사람인 아내와 함께 스위스 여행을 가보는 것이라고 한다. 그의 바람대로 앞으로도 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며 언젠가 그 버킷 리스트도 꼭 이루길 기원한다.

2020년 출간한 <재미있게 살다가 의미 있게 죽자>에서
그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인생의 어느 모퉁이에 서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인생의 대차대조표를 만들어보라고, 그리고 그 안에서 사랑, 희망, 낙관의 비중이
더 크다는 사실을 발견해보라고 다정한 어투로 조언을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