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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숨어있는
‘봄’을 만나다

향토사학자, 부경근대사료연구소 소장 김한근

사진 제공_부경근대사료연구소, 국립민속박물관

 

‘산 너머 저 들판에 봄이 온다’고들 하지만 해안을 가진 도시 부산에서는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에서 봄이 왔음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그 바람을 타고 부산으로 봄나들이를 떠나 보자.

 

_1920년대 부산 동래구 온천장 야간벚꽃 풍경 

 

봄, 봄, 봄, 봄이 왔어요

“산, 바다, 강이 있어 살기 좋은 곳을 삼포지향이라 하는데, 부산은 산, 바다, 강은 물론이고 호수, 온천, 해수욕장까지 있으니 육포지향이에요.”

향토사학자 김한근 소장은 부산에서 60년이 넘는 세월을 보내며 25년 이상 부산에 대해 연구해 왔다. 그런 그에게 부산의 봄은 어떠한지, 봄나들이 가기 좋은 장소는 어디인지 묻자 마치 화수분처럼 많은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근래에 와서 봄나들이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게 ‘벚꽃’이다. 부산에도 구덕산, 수정산, 용두산, 천마산 등 벚꽃이 만발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산이 많다. 재미있는 건 20년 전, 10년 전에 찍은 봄 산 사진과 현재의 봄 산을 비교해 보면 벚꽃이 핀 자리가 계속 달라졌다는 것이다. 이유는 직박구리가 버찌(벚나무 열매)를 먹고, 산 여기저기에 배설함으로써 식목을 했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조금만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면 부산 사람들에게 봄이 왔음을 알려주었던 건 ‘개나리’였다. 한국전쟁 시기에 산자락에 자리 잡은 피란민들은 집과 집 사이에 개나리를 심어 경계를 삼았다고 한다.

“그때 사람들은 개나리가 피면 ‘봄이 왔구나’ 하면서 쑥과 냉이를 캐러 갔어요. 먹고살기 바빴던 시기에 봄나들이는 생각할 수도 없는 거였고 그게 봄나들이였던 거죠.”

개나리는 생명력이 강할 뿐만 아니라 그 뿌리가 땅을 단단히 잡아주기 때문에 비탈진 땅에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한다. 지금도 부산 원도심 곳곳에서 개나리가 심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김한근 소장은 나들이를 가더라도 꽃만 보고 오는 게 아니라 그곳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곳을 함께 살펴보면 의미 있는 나들이가 될 거라 조언했다.

_1930년대 부산 동래구 온천장의 벚꽃 감상 행락객들

_1952년 수영강 주변 풍경

 

그때도 오늘도 내일도 즐거운 나들이

그때 그 시절 부산의 나들이 장소를 조금 더 살펴보면, 동래 온천장과 해운대 온천, 송도해수욕장과 수영강변, 범어사, 자성대성(현재 부산진성), 복병산을 꼽을 수 있다. 김한근 소장은 10여 년 전에 일본인 등산 마니아들을 데리고 금정산을 올랐다. 범어사를 거쳐 산을 오른 다음 온천장으로 내려오는 코스였는데 사람들이 감탄을 금치 못하더란다.

“훌륭한 등산로에 놀라고, 고찰이 있다는 거에 또 놀라더라고요. 마지막에는 온천으로 피로를 풀고 맛있는 음식까지 먹을 수 있으니 정말 좋아했어요.”

김한근 소장은 최근 온천천변이 정비되면서 도심에서도 봄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며, 개나리, 진달래, 조팝나무 등 꽃들이 차례로 피어나 봄을 좀 더 오래 즐길 수 있는 사상강변도 추천했다. 반면, 1960년대 수영강변에는 민물과 바닷물이 교차하는 지점에 널구지라 불리는 평평한 지형이 있었고 거기에는 온갖 조개가 숨어 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 봄이 되면 산에 쑥과 나물을 캐러 가듯 바다에는 조개를 캐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모였는데 아쉽게도 지금은 사진으로만 남은 추억이 되었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장소, 꽃 등 선호하는 게 다르겠지만, 가덕도 둘레길은 꼭 한 번 가보셨으면 해요. 아주 옛날부터 풍광이 아름답기로 유명한데, 신공항이 만들어지면 변화가 생길 테니까요.”

김한근 소장이 소개한 곳 중에는 사실 꼭 봄이 아니더라도 언제든 나들이를 가기 좋은 장소가 많다. 그만큼 부산은 일상 가까이에 자연이 자리하고 있다. 김한근 소장은 이런 자연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나 지자체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나들이를 갈 때만이라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등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실천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언제든 나들이를 만끽할 수 있는 예쁜 장소가 우리 곁에 오래오래 남아 있을 수 있도록 이번 봄나들이부터 한번 실천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