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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루덴스,
봄을 만끽하다

_클로드 모네, <풀밭 위의 점심식사>는 부르주아들의 피크닉 모습을 그렸다. 

 

‘호모 루덴스’는 ‘놀이하는 인간’을 뜻하는 말로 놀이를 통해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인간의 특성을 말하고 있다. 산천에 꽃이 만발하는 봄이 오면 ‘봄나들이’ 또는 ‘봄 소풍’을 통해 자연과 교감하고 삶의 의미를 재발견했던 인류의 발자취를 되돌아본다. 

 

귀족의 문화에서 비롯된 소풍 

‘피크닉’은 본래 중세 프랑스에서 귀족들이 각자 음식을 가져와 실내에서 함께 나눠 먹는 식사 모임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런데 귀족들이 사냥을 나가서 잡은 짐승을 그 자리에서 요리해 먹는 풍습도 점차 ‘피크닉’으로 부르게 됐고, 18세기 중엽에는 공원이나 정원에서 음식을 먹으며 즐기는 풍습으로 발전했다. 또 19세기에 부상한 부르주아 계층은 남는 여가시간에 귀족들의 피크닉 문화를 따라하면서 ‘피크닉’이 대유행처럼 번졌다. 지금은 전 세계에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소풍을 즐기고 있다. 

홍콩 사람들에게 소풍은 보통 해변에서의 ‘바비큐 파티’를 의미한다. 많은 해변가 상점에서는 그릴 용품과 바비큐 식재료들을 상시 구비해놓고 있다. 영국인들은 피크닉을 갈 때 삶은 계란을 소시지에 싸서 빵가루를 입혀 튀긴 ‘스카치 에그’를 챙기는 것이 ‘국룰’이다. 프랑스인들은 빵집에서 바게트 샌드위치와 페스트리, 사이다 한 병을 사들고 생마르탱 운하나 센 강변으로 가서 피크닉을 즐긴다. 튀르키예인들은 공원에서 양탄자를 깔고 온종일 소풍을 즐기는 걸로 유명하다.

 

부녀자들의 풍류, 화전놀이


화전놀이란 음력 3월 3일 삼짇날, 부녀자들이 경치 좋은 산이나 들판에 모여, 진달래꽃을 따다가 전을 부쳐 먹으면서 즐기는 꽃놀이를 말한다.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못했던 당시 여성들에게 화전놀이는 당당히 나가놀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였다.
 

화전놀이에는 대략 30~60명 정도의 여성들이 참여하였으며, 시어머니들은 며느리들이 자유롭게 놀 수 있도록 따라가지 않았다고 한다. 부녀자들은 이 자리에서 술 마시고 춤추며 노는 것은 물론, 시댁 식구와 신랑을 흉보는 것으로 쌓였던 스트레스를 풀었다고 한다. 또 진달래꽃의 꽃술을 걸고 잡아당겨서 먼저 끊어지는 쪽이 지는 ‘꽃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또한 그들은 평소 숨겨두었던 끼를 방출하는 장기자랑 시간을 갖기도 했는데, 연극, 엉덩글씨, 봉사놀음, 꼽사춤, 병신춤, 모의혼례, 닭싸움 등 종목도 다양했다고 한다. 정신없이 놀다가도 때가 되면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부녀자들의 운명. 아쉬운 발길을 돌리는 그들의 손에는 한 움큼의 봄꽃이 들려 있었다. 

 

봄 소풍 같은 삶을 살다간 시인


소풍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자동적으로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라는 시가 떠오른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중략)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시인은 이 시를 통해 세상은 우리가 하늘에 있다가 잠시 소풍 온 장소라고 말한다. 1967년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억울하게 옥살이를 치렀던 천상병 시인. 고문 후유증으로 몸이 극도로 쇠약해졌으며 평생 하루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가난에 시달렸던 그가 이 세상을 즐거운 소풍 온 곳으로 생각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시인의 삶에서 ‘행복’은 사람이 스스로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귀천’이라는 시는 시인이 타계하기 전에 쓴 것이 아닌, 그의 초창기 작품이라고 한다. 즉, 시인은 일찍부터 남은 인생을 아름다운 소풍 온 것처럼 살다가 가겠노라고 결심하고 그대로 살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