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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땅끝마을에서 포르투갈 리스본까지

글, 사진. 이영철 여행작가, <세계 10대 트레일> 저자 

 

과거 1,000여 년 동안 기독교인들만 걷던 순례길이었던 산티아고 순례길은 최근 종교 목적보다 일반인들의 자기 성찰을 위한 도보여행길로 더 많이 유명해졌다. 황량한 초원과 끝없는 밀밭, 아름답고 소박한 마을 등을 걸으며 많은 것을 느꼈던 29일간의 대장정을 되돌아본다.

 

생장 피드포르에서 산티아고까지


_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

피레네산맥을 넘어 난생처음 스페인 땅을 밟는다. 아침 9시에 프랑스 국경마을 생장 피드포르를 출발한 지 6시간 만이다. 해발 150m에서 1,450m 정상까지 계속 오르막이다가 인제야 내리막 시작이다. 한라산 백록담에 오르는 것보다 조금 더 힘이 들었다.

도중에 만난 20대 한국인 여성 둘 중 한 명이 심한 어지럼증이 있어서 함께 챙기며 오느라 한두 시간 늦어졌다. 나는 파리에서 사흘 동안 머물며 시차 적응을 하고 왔지만, 그녀는 어제 파리에 도착하고 부랴부랴 이곳으로 왔다고 하니 너무 무리한 게다. 장시간 비행에 따른 피로감과 시차는 남녀와 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너무 쉽게 본 거 아니냐며 나도 모르게 훈계 몇 마디 뱉어냈다. 꼰대 티를 안 내려 하면서도 전혀 그리 못하는 게 꼰대들 특성인가 보다. 스페인 첫 마을 론세스바예스에 머문 이튿날 아침 다시 혼자 길을 나섰다. 어제 피레네에서 고생한 두 여성은 하루 더 쉬었다 간다며 숙소에 남았다.

산티아고는 예수 열두제자 중 첫 번째 순교자인 ‘성인 야고보’의 스페인식 이름이다. 성인(saint)을 뜻하는 라틴어 ‘산(san)’에, 남자 이름 ‘티아고(Tiago)’가 합성되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야고보 성인의 유해가 있는 산티아고 대성당까지 가는 길을 말한다.

 

만남과 헤어짐 사이의 쉼표


_대성당에서 90km 떨어진 땅끝마을 피니스테레

과거 1,000년여 동안은 기독교인들만 걷던 순례길이었지만, 1986년 파울로 코엘료가 이 길을 걸어 자전적 에세이집 ‘순례자’를 출간한 이후부터는 종교 목적보다 일반인들의 자기 성찰을 위한 도보여행길로 더 많이 유명해졌다. 기독교 신자도 아니고 무종교인 나 또한 종교 목적과는 무관하게 이 길을 걷고 있다.

순례길 3일째부터 6명이 함께 움직이는 그룹에 끼어들었다. 전날 길을 잘못 들어 두 시간 동안 고생한 뒤다. 혼자보다는 여럿이 함께 걸으니 훨씬 안심이 되고 마음이 편해졌다. 6명 모두 영국, 이태리 등 세계 각지에서 온 개인들이 자연스럽게 뭉친 경우다. 이곳에선 여느 그룹이나 오는 사람 막지 않

고 가는 사람 붙잡지 않는 게 일반적 분위기다. 소몰이 축제로 유명한 중세도시 팜플로냐를 뒤로하고, 페르돈고개(Alto del Perdon)에 올랐다. 누구나 마음이 관대해지는 일명 ‘용서의 언덕’이지만, 10개월 전 나를 내쫓은 직장과 나 대신 승진한 누군가에 대한 미움과 원망의 마음은 조금도 누그러트리지 못한 채 언덕을 내려왔다.

10일째 되는 날, 일주일 동안 정들었던 일행과 헤어졌다. 오른쪽 발목에 통증이 심해져서 더 이상 걸을 수 없어졌기 때문이다. 일단 나 혼자 멈춰서 쉬어야 했다. 일행 여섯은 이런저런 선물과 격려의 말들을 남겨주곤 다시 길을 떠났다. 9일동안 쉬지 않고 250km를 걸어온 나로선 그들보다 연식이 훨씬 많은 만큼 쉼표가 필요했다. 나중에 터득한 사실이지만 목 긴 등산화가 아닌 트레킹화를 신고, 스틱도 없이 장거리 도보에 나선 건 치명적인 내 불찰이었다.

 

Santiago will be there!


_세계 각지에서 온 순례자들과 함께 걷는 산티아고 길

아름답고 소박한 마을 아헤스(Ages)에서의 하루는 꿀 같은 휴식의 시간이었다. 창가 침대에 누워 지나가는 순례자들을 한없이 바라보았다. 나 혼자 뒤처지고 있다는 불안과 조바심도 일었다. 영국 친구가 전날 헤어지며 남겨준 말을 떠올리자 위안이 되었다. “Mr. Lee, Santiago will be there!” 산티아고는 늘 그곳에 있으니 마음 조급하게 먹지 말고 푹 쉬었다 오라는 격려의 말이었다.

숙소 할머니의 따뜻한 배려와 오후 두 시간 동안의 발목 집중 마사지 덕분에 다음 날 아침의 발목 상태는 가뿐해졌다. 다 나은 걸로 속단하지 말고 오늘 하루는 걷지 말라며 숙소 할머니가 아들 차를 내어줬다. 덕분에 22km 떨어진 부르고 스까지는 봉고차를 타고 편안하게 이동했다.

망토 휘날리며 적진을 향해 말 달리는 엘 시드 장군의 멋진 기마상 앞에서 봉고차를 내렸다. 엘 시드는 우리나라 이순신 장군 같은 존재, 11세기 이슬람 무어인들로부터 나라를 구한 스페인의 민족 영웅이다. 그의 부부 유해가 안치된 부르고스 대성당을 둘러보고, 영웅의 고향에서 구비한 7유로짜리 지팡이를 들고 다음 날 새벽 동트는 시간에 다시 먼 길을 떠났다. 오래전 보았던 고전 영화 ‘엘 시드’에서 찰톤 헤스톤이 소피아 로렌의 눈물을 뒤로한 채 전장으로 뛰쳐나가던 장면과 동일시되며 사뭇 비장한 감상에 젖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