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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국경조정제도
채찍 꺼내든 EU

글_ 최남수 서정대 교수, 전 YTN 대표이사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는 환경규제가 약한 외국에서 생산된 수입 제품에 대해 EU 제품보다 탄소 배출량이 많은 만큼 관세 형태의 탄소 가격을 물리겠다는 것이다. 당장 비상이 걸린 곳은 철강업종이지만 앞으로 플라스틱이나 유기화학품 산업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탄소 규제가 약한 나라에 대한 패널티


그동안 ESG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온 곳은 EU(유럽연합)다. 이산화
탄소 배출량 등을 공표하는 기후공시를 비롯해 지속가능금융공시규정(SFDR), 녹색분류체계인 그린 택소노미 같은 제도를 마련해왔다. EU는 특히 기후변화 대응을 선도하고 있다. 2021년 6월에 ‘유럽기후법’을 제정해 2050년까지 순(純)탄소배출량을 제로로 만들겠다는 것을 법에 명문화했다. 또 이를 달성하기 위한 중간 단계로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1990년에 대비해 55%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탄소감축 입법안 패키지 ‘핏포55(Fit for 55)’를 제안했다.

우리나라 입장에서 핏포55 중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이다. 이 제도는 환경규제가 약한 외국에서 생산된 입 제품에 대해 EU 제품보다 탄소 배출량이 많은 만큼 관세 형태의 탄소 가격을 물리겠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 차이만큼 수입 제품에 대해 CBAM 인증서를 구매하도록 의무화해 금전적 부담을 지우겠다는 것이다. 이 제도는 EU 기업이 탄소 규제가 약한 다른 나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자신들은 저탄소 산업으로 전환하느라 원가가 높아졌는데 다른 나라의 고탄소 제품이 아무런 규제도 받지 않고 수입되는 불공정 무역 문제를 해소하겠다는 의도도 담겨져 있다.

 

2026년 의무화되는 CBAM 인증서 구매

CBAM과 관련해 지난해 말에 의미 있는 진전이 이뤄졌다. 그동안 EU 집행위원회와 이사회, 유럽의회가 각자의 안을 내놓았는데 이날 최종 입법안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다. 핵심 내용을 보면, 올해 10월부터 2025년까지의 과도 기간(전환 기간)을 거쳐 2026년 1월부터 탄소국경제도를 본격 시행하는 것으로 일정이 확정됐다. 전환 기간에 대상 업체들은 탄소 배출량을 보고만 하면 된다.

CBAM 인증서 구매는 2026년부터 의무화된다. 대상 품목은 당초 집행위와 이사회는 5개, 유럽의회는 9개를 주장했으나 결국 철강·알루미늄·시멘트·비료·전력·수소 6개 제품으로 결정됐다. 다만, 전환 기간에 플라스틱과 유기화학품을 추가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이 제도가 적용되는 탄소 배출량에는 생산공정에서의 직접 배출량과 외부에서 사들인 열과 전기 사용으로 인한 간접 배출량이 포함됐다.

 

저탄소 생산구조 전환 공동노력 필요


CBAM은 국내 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비상이 걸린 곳은 철강업종이다. 우리나라는 대(對)EU 5위 철강 수출국으로 그 규모가 43억 달러(2021년)에 이르고 있다. 철강업은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업종인 만큼 CBAM 구매 부담이 생기면 수출경쟁력이 크게 약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전환 기간 중 수소환원제철과 CCUS(탄소포집·이용·저장) 기술 등을 활용해 탄소 배출을 크게 줄여야 하는 일이 발등의 불로 떨어졌다. 알루미늄의 경우 연간 수출

량이 5억 달러로 철강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투입재인 잉곳의 생산공정이 탄소를 많이 내뿜어 부정적 영향이 예상된다. 나머지 비료, 시멘트, 전력, 수소 4개 품목은 수출이 적거나 없는 상태이다.

하지만 CBAM의 여파는 여기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EU가 앞으로 플라스틱이나 유기화학품을 대상에 추가하면 그 영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EU 수출물량이 플라스틱은 철강보다 많은 연간 50억 달러, 유기화학물은 18억 달러에 이르기 때문이다. CBAM은 탄소배출 문제가 무역장벽화하고 있는 사례이다. 본격 시행까지 3년의 시간이 있는 만큼 관련 산업을 저탄소 생산구조로 전환시키기 위한 민관의 공동노력이 긴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