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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의 돈은
소금이었다

중국 서쪽의 작은 변방에서 일어난 진나라가 천하통일을 한 배경에는

풍부한 농업 생산력과 강력한 경제력이 뒷받침되었다.

특히 파촉에서 소금을 확보한 것이 진시황에게 엄청난 부를 안겨다 주었다.

 

경제력 확보를 우선시했던 진시황

전쟁에 나가는 병사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을 두 가지만 꼽으라면 첫째는 밥이요, 둘째는 무기다. 장수가 병사들에게 무기만 주고 밥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싸움은커녕 폭동이 일어나거나 모두 도망칠 것이다. 지속적 보급이 가능한 역량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절대로 강한 군대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전쟁수행 능력은 경제력과 직접적 관련이 높다. 전국시대 말기 육국이 경쟁하던 시절, 서쪽 변방의 후진국 진(秦)에서는 개혁이 한창이었다. 법가사상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상앙이 내부개혁을 진행해 중앙집권의 기초를 닦았다. 다음 차례는 전쟁을 치를 수 있는 경제력의 확보와 강한 군대의 양성이었다.

경제력의 기반은 뭐니 뭐니 해도 농업 육성이었다. 당시 진나라는 진령산맥을 넘어 촉국을 정벌하고 있었다. 그곳의 대평원은 농업 생산이 충분히 가능한 땅이었으나 땅이 넓다고 옥토가 되지는 않는 법! 인간의 위대한 손이 있어야 거친 황무지가 옥토로 바뀔 수 있다. 그 주인공은 촉군 태수로 임명되었던 이빙이었다. 당시 촉국 평원은 장강 상류 민강의 범람원이었다. 사계절 온화하고 토질이 좋아 농사가 가능한 땅이지만 숲과 늪지가 많았고, 봄이 되면 상류의 고산지대에서 눈 녹은 물이 일시에 흘러내려 홍수가 발생했다. 따라서 개척된 농토가 많지 않았고 부양 가능한 인구도 적었다.

기원전 306년, 이빙은 수로와 제방을 건설하겠다는 청을 조정에 올렸고 진 소양왕은 10만 냥의 건설 자금을 내렸다. 그로부터 시작한 공사는 아들 이랑이 이어받아 최종 완공할 때까지(기원전 256년) 무려 50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이렇게 건설된 ‘도강언’은 움직이는 제방으로 평상시에는 물이 평원으로 흘러 가지만 봄철 홍수에는 물길을 외부로 돌릴 수 있었다. 평원지역을 개간해 농토를 만들고 여기에 물을 공급함으로써 식량 생산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었다.


 

제국의 가장 큰 돈줄, 소금

이제 풍족한 식량을 확보했으니 강력한 무기를 개발하는 일이 남았다. 진시황의 비범한 모습을 그린 영화 ‘영웅’을 보면 화살이 적을 향해 비처럼 날아가는 장면이 나온다. 흥행을 위해 진시황을 꽤 괜찮은 인간으로 그렸고

영화적 과장이 섞여있겠지만 진나라 군대가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보여주는 압권이었다.

이런 군대를 위해 필요한 건? 당연히 돈이다. 진 조정에서 관심을 둔 것은 파촉의 소금이었다. 예로부터 파동 지방에서는 암염이, 촉 지역에는 정염이 생산되고 있었다. 돌소금이란 뜻의 암염의 생산지는 당시 초나라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 진나라는 10만 대군을 일으켜 초나라 원정에 나섰고, 파동의 소금을 얻을 수 있었다.

촉의 서쪽 산간지방에는 염분이 많이 함유된 샘이 다수 있었다. 과거 KBS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 <차마고도> 4편에는 소금마을이 등장한다. 내륙지역 티베트에 소금을 공급하는 샘물이 있는 마을의 삶과 교역에 관한 이야기다. 산 속에서 생산되는 소금이라니! 이 곳의 소금샘물(염정)은 티베트 고원이 생성되며 갇힌 바닷물이 샘물의 형태로 나오는 것인데, 이를 염전에 퍼다 넣고 햇빛에 말려 소금을 생산한다. 생산은 전적으로 여자들이 맡고 남자들은 왕복으로 한 달 이상 걸리는 먼 곳으로 판매를 나간다. 남녀 간 역할분담을 한다는 게 매우 흥미로웠다.

기록에 의하면 도강언을 건설한 이빙이 광두(广都)에서 염정을 파냈다고도 한다. 그러니까 이 지역에서는 예로부터 소금물이 나오는 우물이 꽤 있었다는 이야기다. 오늘날 쓰촨성에는 소금 생산과 관련한 박물관도 있다. 그러니까 예로부터 이어진 촉의 소금 생산은 역사가 아주 깊다는 의미다. 이렇게 촉의 소금 생산이 획기적으로 증대되었고 파동에서 생산된 암염과 함께 진의 국력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 예로부터 소금은 제국의 가장 큰 돈줄이었기에

그것은 육국을 멸하고 통일 진제국을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