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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금속공예의 걸작
백제금동대향로

주차장을 만들려고 땅을 파던 공사 현장에서, 진흙에 쌓인 유물이 완전히 보전된 상태로 발견되었다.

이 놀라운 이야기의 주인공은 국보 중의 국보라 일컬어지는 백제금동대향로이다.

 

1,400여 년의 긴 잠에서 깨어난 보물


_2022년 7월, ‘백제금동대향로’와의 특별한 만남 프로그램에 초대된 관람객들이 향로 진품을 감상하며 해설을 듣고 있다. 사진 출처_공공누리

 

1993년 12월 12일 부여 능산리, 백제왕들의 무덤 옆 절터를 주차장으로 만들려고 공사를 진행했다. 그 공사 터에서 진흙에 쌓인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견됐다. 놀랍게도 향로는 온전한 상태로 역사적 가치가 대단했다. 1994년, 국립중앙박물관 역사상 최초로 한 가지 유물만으로 전시회가 열렸고 진흙탕에서 1,400여 년간 온전한 형태를 유지한 백제금동대향로를 보려는 관람객이 전국에서 몰렸다.

백제금동대향로가 오랜 기간 완벽한 형태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첫 번째 비결은 ‘진흙’에 있었다. 향로를 둘러싼 진흙이 공기를 차단해 완벽한 밀폐 상태를 만들어 부식을 피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왜 진흙에서 발견되었을까? 이는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660년 의자왕 시절에 나·당 연합군에 의해 멸망한 백제. 당시 목숨을 걸고 보물을 지키려 땅에 묻은 사람이 있었고, 그 덕에 긴 세월을 견딜 수 있었다. 두 번째 비결은 ‘수은아말감도금법’이라는 특별한 기술이다. 백제 장인은 이 도금법을 사용해 향로 표면을 0.001cm의 얇은 두께로 균일하게 도금한 것이다.


현대에도 재현하기 어려운 정교한 주조 기술

_향로의 받침은 용 모양으로, 시대를 막론하고 백제금동대향로에서만 볼 수 있다. 사진 출처_공공누리

 

백제금동대향로는 청동 표면에 금을 도금하여 만든 큰 향로라는 뜻으로 백제 문화의 절정을 이룬 7세기 왕실의 의식·제사에 사용되었다. 높이 61.8cm, 지름 19cm, 무게 11.85kg이며, 총 12개의 연기 구멍이 있다. 봉황 앞가슴에 2개, 오악사 앞뒤로 10개며 이 중 향을 피웠을 때 연기가 밖으로 나오는 구멍은 7개, 나머지 5개 구멍은 공기가 안으로 들어가 향이 더 잘 타게 하는 역할을 한다.

볼수록 신비롭고 아름다운 향로의 무늬는 현대에도 완벽하게 재현하기 어려울 만큼 정교한데 이 비결은 바로 밀랍에 있다. 온도에 따라 말랑말랑하기도 하고 단단해지기도 하는 밀랍의 특성을 이용하여 정밀한 금속품을 만들었다. 밀랍법의 주조 과정은 첫 단계로 벌집과 송진을 잘 섞은 밀랍으로 향로의 형태를 만든다. 다음 단계로 진흙을 여러 번 덧칠해 단단한 거푸집을 만들고, 세 번째 단계로 거푸집에 열을 가해 밀랍을 녹이고, 네 번째 단계로 거푸집에 구리와 주석이 합금 된 액체 상태의 청동을 붓는다. 마지막 단계에서 거푸집을 부수어 백제금동대향로를 완성한다.

완성한 백제금동대향로에 도금할 때, 수은아말감도금법이 이용된다. 이 도금법은 네 단계로 진행된다. 먼저 액체 상태의 수은에 금가루를 섞은 후, 헝겊에 감싸 짜서 반죽을 만들고, 반죽을 나무 주걱이나 손으로 향로 표면에 고르게 바른 뒤, 향로에 열을 가해 수은을 증발시키고 금을 표면에 밀착시키는 방법이다. 이는 시대를 앞서간 백제 장인의 뛰어난 기술력이 발휘된 놀라운 도금법이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향로를 CT로 촬영하면, 용 받침과 몸체는 따로 만들어서 연결하였는데, 향로 뚜껑과 봉황은 이어 붙인 흔적이 보이질 않는다는 것이다. 이로써 백제의 금속공예 기술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알 수 있다.

백제금동대향로는 중국 한나라 때 유행한 박산향로와 생김새가 비슷하다. 박산향로는 중국 한나라 때 유행한 산봉우리 모양 뚜껑에 받침이 있는 향로로 발견 당시, 생김새가 비슷해 중국 문화재가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했으나, 연구 끝에 백제의 작품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화려한 장식만큼이나 과학적인 설계가 일품인 백제금동대향로. 전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화려하고 정교한 백제금동대향로는 그 어떤 문화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백제의 걸작품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이야기를 가진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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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뛰어난 주조기술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금동대향로 사진 출처_공공누리

 

백제금동대향로는 백제 장인의 손끝에서 탄생한 또 하나의 우주라 할 수 있다. 향로의 세계에는 유교, 불교, 도교가 공존하며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음악을 통해 나라를 다스리고 유교적 정치이념을 보여주는 오악사, 도를 닦는 신선들이 사는 봉래산, 만물의 생명이 탄생하는 연꽃, 음을 상징하는 용, 양을 상징하는 봉황. 백제금동대향로에서만 볼 수 있는 용 모양의 향로 받침. 이렇게 향로의 다리를 용으로 만든 작품은 시대를 막론하고 그 어디에도 찾아보기 어렵다.

향로는 용 모양 받침, 연꽃 모양 몸체, 산악모양 뚜껑, 뚜껑 위 봉황 장식 이렇게 네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몸체는 연꽃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연꽃은 만물의 탄생과 부활을 의미한다. 8개씩 총 3단으로 층을 이룬 연꽃잎은 아름답고 생동감이 넘친다. 연꽃잎을 자세히 보면 무언가 새겨져 있는데, 연꽃잎 사이사이엔 독특하게도 날개 달린 네발짐승, 긴 꼬리를 가진 동물, 무예 하는 사람, 신수, 선인, 등 25마리의 동물과 2명의 인물이 있다. 산 모양으로 솟아오른 뚜껑에도 신비한 동물과 인물을 볼 수 있다. 산과 산 사이, 계곡과 계곡 사이를 한가로이 오가는 신선이 17명, 동물이 무려 42마리나 된다. 향로 꼭대기에 앉아있는 봉황은 문헌과 유물에 등장하는 봉황 중 가장 아름다운 봉황으로 꼽힌다. 당당히 서 있는 자세며 가슴에서 꼬리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곡선은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봉황에서 느껴지는 생동감과 아름다움의 비결은 세밀한 묘사에 있는데, 자세히 보면 양쪽 날개의 선과 모양이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봉황 바로 아래 위치한 5명의 신선을 오악사라고 하는데, 오악사가 연주하는 악기(완함, 북, 거문고, 배소, 종적)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는 박물관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말 탄 사람, 말 위에서 뒤를 향해 활을 당기는 사람의 형상을 통해 당시 백제인의 갑옷과 투구의 형태도 상상해볼 수 있다. 코끼리, 원숭이, 악어 등 산 곳곳에는 우리나라에 살지 않았던 동물들도 등장한다. 이 동물들을 통하여 당시 백제가 동남아시아, 중국과 활발한 교류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백제의 역사를 다시 쓰다

의자왕 즉위 20년에 멸망한 백제는 남겨진 기록이 거의 없어 ‘잃어버린 왕국’이라고도 불렸다. 그러나 1,400년 후 백제 문화를 오롯이 담고 있는 백제금동대향로의 발견으로 재평가를 받게 된다. 백제의 종교, 정치, 문화, 예술 그리고 금속 기술이 집약된 세기의 유물인 백제금동대향로는 우리의 전통문화와 외래문화가 잘 융합되어 재밌는 이야기와 볼거리가 무궁무진하다. 긴부리새, 포수, 외수, 인면수신, 인면조신 등 이외에도 백제금동대향로에는 아직도 이름이 없는 신비롭고 오묘하게 생긴 동물들도 등장한다. 수수께끼처럼 남아있는 신비한 향로의 세계를 국립부여박물관에서 탐험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