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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질을 바꾸는
조리기구와
적정기술

글. 신관우 서강대학교 화학과 교수, 국경없는과학기술자회 회장 

 

낙후된 조리기구는 이를 상시적으로 사용하는 여성과 아이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으며 동시에 과도한 노동 부담이 큰 문제로 작용하고 있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적정기술에 대해 알아보자.

 

불완전한 조리기구, 많은 문제 야기해

불은 인류의 조상인 호모에렉투스가 발견하고, 25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이 불을 이용한 조리로 활용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불이 조리에 사용되면서 현재와 같은 인류의 신체구조의 진화, 즉, V-라인으로 대표되는 작은 턱이나, 그리고 위와 장의 형태나 기능에 크게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누구나 화력이 좋고 안전한 조리도구를 원합니다. 그러나 조리를 위한 부엌의 스토브는 해당 지역의 기후와 지리적 환경에 맞게 정착된 주거문화와 음식문화로 인해 가장 느리게 변화하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기름이 있어야 기름 스토브를 사용하고, 나무를 구할 수 있어야 목재 연료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불완전한 부엌의 조리기구의 가장 큰 문제는 배기장치가 구비되지 않은 부엌에서 피할 수 없는 비산먼지나 일산화탄소 등으로 인한 보건문제입니다. 유해가스는 수많은 여성들과 아이들의 호흡기에 천식과 호흡곤란 등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나아가 연소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과 대기오염, 그리고 에너지 비효율성 등은 환경이라는 큰 틀에서의 글로벌 문제의 한 요인이기도 합니다.


누구나 제작할 수 있는 로레나 스토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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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수단 차드 난민캠프에서 사용한 로레나 스토브

 

따라서 적정기술로 조리기구를 설계할 때 고려해야 할 점은, 연소 제어와 열효율을 높이기 위한 방법이 우선입니다. 연소를 위해 유입되는 공기의 방향, 연료 적재방식, 화염의 방향과 열의 방출, 그리고 연기의 배출방법 등입니다.

이와 관련되어, 가장 널리 보급된 스토브는 로레나(Lorena) 스토브입니다. 아프리카나 남미에서 벽돌과 진흙으로 제작되며, 공기의 흐름을 통해 화력을 조절하고, 여러 크기에 따른 조리용 기구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특별한 장비 없이도 진흙과 모래, 벽돌로 제작하되, 크기와 제작방법을 표준화해서 누구나 제작할 수 있도록 하여 널리 확산 되었습니다. 태양열과 반사판을 이용해 조리가 가능한 장치도 여러 형태로 제작된 바 있습니다. 집안에서 사용할 수 없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야외에서 연료 없이 사용이 가능합니다. 수단에서 탈출한 난민이 머물던 아프리카의 차드 난민캠프에서 연료가 없이도 2만 명의 난민들이 음식을 조리 할 수 있도록 활용된 바 있습니다.

 

연소효율이 매우 높은 로켓 스토브



_태양열과 반사판을 이용한 조리기구

 

한편, 이러한 환경 문제에서 바라보는 시각과 조금 다른 관점에서 낙후된 조리기구에 대한 우려가 있습니다. 당장 조리기구에 사용할 연료 확보를 위해서 여성과 아동에게 과도한 노동을 요구하게 됩니다. 벌채나 땔감의 수집에 소요되는 고된 노동으로 인하여 여성들이 육아와 교육과 같은 다른 가사 활동에 참여할 겨를을 없게 만듭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로켓 스토브라는 장치를 바라보게 됩니다. 몇 개의 깡통을 간단히 연결한 소형장치로 구조적으로 단순하고 직관적으로 설계되어 있어 제작이 간단하며, 매우 높은 연소효율을 제공합니다. 이 로켓 스토브가 특별한 것은, 다름아닌 연료로 작은 잔가지들이 사용된다는 것입니다. 즉, 가족의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서 여성과 아이들이 큰 나무를 찾아 산을 가거나, 무거운 나무를 옮기는 노동이 필요 없게 됩니다. 개발도상국에서 여성들의 노동 강도를 낮추는 것은 단지 노동이나 인권에만 한정되지 않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과도한 가사노동에서 벗어나야만 아이들이 보이고, 주변을 살필 수 있으며, 내일을 준비하게 됩니다. 따라서 부엌의 조리용 적정기술은 단지 배기나 열효율을 높여 조리시간만을 단축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 가정과 사회의 삶의 질, 나아가 문화를 바꿀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