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 안계환 금융칼럼니스트, <세계사를 바꾼 돈> 저자
돈과 행복의 관계를 얘기할 때 서양에서 오래 전부터 자주 인용되는 이야기가 바로 아테네의 현자 솔론과 리디아의 크로이소스 왕이 나누었던 대화이다.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가스파르 반 덴 호이케’가 그린 그림을 감상하며 함께 한번 생각해보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리디아의 크로이소스 왕이 아테네의 현자 솔론을 자신의 왕국으로 초청했다. 왕은 화려한 보석과 의류, 정교한 금속으로 치장하고 위엄과 멋진 모습을 보이려 애썼다. 그리고 보물함을 꺼내와 솔론에게 보여주며 자신이 얼마나 부자인지를 알렸다. 그러고서 크로이소스 왕은 솔론에게 이렇게 물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솔론이 이렇게 대답했다.
“저의 동료인 텔루스입니다. 그는 아주 정직한 사람이고 명망 있는 아들들을 갖고 있으며 조국의 영광을 위해 소임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크로이소스는 은근히 자신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을까 기대했으나 솔론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답을 했기 때문에 기분이 나빴다. 금은과 재부가 많은 것을 행복의 근거로 삼지 않고 그저 평범하며 권력도 통치권도 없는 자가 행복하다고 했기 때문이다.
최고 부자보다 더 행복한 보통 사람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남긴 리디아의 크로이소스 왕에 관한 일화다. 당시 리디아는 소아시아 서부의 강국이었다. 군사력이 강해 지역 패권자로 통했고 사금이 많이 나오는 팍톨로스 강이 있어서 예로부터 황금이 풍부했다. 손으로 만지기만 하면 황금으로 변했다는 ‘미다스의 손’ 신화가 이 지역에서 탄생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 리디아의 마지막 왕이었던 크로이소스는 아테네의 현자 솔론을 초청했고 자신의 부와 권력을 보여주려 애썼다. 당대 최고 부자였던 자신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고 운 좋은 사람 아니냐고 말이다. 하지만 솔론은 그가 원하는 답을 해주지 않았고 그저 평범한 사람 이야기만 했으니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기분 나쁜 이야기만 하고 돌아가면 외교적으로 문제가 되겠다고 생각한 솔론은 이런 상황을 정리하려는 듯 이렇게 말했다. 보통 사람이 행복하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크로이소스가 갖고 있는 행복론이 얼마나 허망한지 말이다.
“오 왕이시어! 신은 우리 헬라스인에게 절제를 축복으로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보통사람에게 적합할 뿐 왕에게 어울리는 것은 아닙니다. 인생에 주어진 운명이란 부침이 있는 것이기에 좋은 물건이나 재물들은 언제나 변화 여지가 매우 큽니다. 그러기에 재물의 크기를 가지고 인간의 행복을 평가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언제든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죠. 늘 변하는 세상에서는 신이 주신 절제를 발휘할 때 그 인간은 행복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누구와 비교하고 경쟁을 하는 상황은 승리자와 패배자가 정해지기 때문에 어떤 것이 옳고 행복하고를 따지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작은 것에 만족하며 절제하며 사는 삶이 행복한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분수에 맞게 절제하는 것이 곧 행복
솔론이 말한 행복의 정의는 오늘날에도 그대로 통용될 수 있을 것이다. 재물과 권력의 크기가 사람의 행복을 좌우할 수는 없다. 오늘날 많은 재물을 갖고 있는 자들은 그것을 지키기 위해 또는 더 크게 만들기 위해 밤잠을 설치고 늘 바쁘게 지낸다. 때로는 가까운 이들과 다투고 누군가를 슬프게 만들기도 한다.
행복학연구자 서울대 최인철 교수는 비싼 물건을 사는 것 보다는 가까운 사람과 의미 있는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 행복을 누리는 데 가장 좋다고 말한다. 솔론이 말한 절제의 미덕도 여기에 포함되지 않을까? 분수에 맞게 소비하고 주어진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가까운 이들과 좋은 경험을 나누는 것. 돈을 잘 써서 행복을 얻는 일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