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하고 싶은
국보 금동반가사유상

우리나라 국보가 MZ 세대에게 인기 있는 굿즈템으로 떠올랐다.

MZ 세대의 인기를 한몸에 받는 금동반가사유상은 전 세계적으로도 높은 가치를 평가받아 해외에서도 러브콜을 받는 자랑스러운 문화재이다.

금동반가사유상을 어디에서, 어떻게 감상할 수 있는지 살펴보자.

 

MZ 세대의 원픽 문화재 굿즈

지난 10월, 국립중앙박물관 상품 브랜드 뮷즈(MU:DS)와 협약을 맺은 프리즘(PRIZM)에서 반가사유상 미니어처 모형 1,000개 한정 판매 라이브 방송을 진행했다. 문화재에 관심있던 사람들만 기념품 정도로 구매할 거로 생각했다면 오산. 반가부좌 자세로 한 손을 뺨에 대고 평안한 미소를 띠고 있는 미니어처 굿즈는 MZ 세대 사이에서 ‘힐링템’으로 불리며 사랑받고 있다. 이전에 BTS RM이 작업실에 놓아둔 것이 SNS에 널리 퍼지며 완판됐고, 이후 프리즘에서 더욱 다채로운 색상을 준비했다. 형형색색 여러 파스텔 색상 중에 선택할 수 있는가 하면, ‘내가 그리는 반가사유상’ 미니어처는 취향에 따라 물감, 페인트, 마커펜 등 다채로운 재료의 질감과 색채를 더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반가사유상을 만들 수 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보, 금동반가사유상

프랑스에 루브르 박물관을 대표하는 모나리자가 있듯, 한국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을 대표하는 우리의 문화유산, 국보 반가사유상이 있다. 반가사유상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의 미소보다 900년 전,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보다 1,4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이 한 점씩 전시했던 반가사유상을 사상 처음으로, 두 점 동시 상설 전시를 하면서 관람하러 온 사람들도 많아졌다. 국립중앙박물관 2층에는 오로지 국보 반가사유상 2점만을 위한 공간, ‘사유의 방’이 있다. 입구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 (Time to lose yourself deep in wandering thought)’ 

‘반가사유상’이라는 이름의 뜻은 무엇일까. 수행이나 명상을 할 때 가부좌를 하는데 여기서 한쪽 다리를 편하게 내려놓은 반만 가부좌했다는 뜻의 ‘반가’, 생각에 잠긴 상이라는 뜻의 ‘사유상’을 합친 말이 그 의미이다.

반가사유상은 불상의 형태 중에서도 특별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손을 뺨에 대고 한쪽 다리를 올리고, 한쪽은 내렸을 때 측면, 뒷면, 앞면을 조각한다는 것은 난이도가 굉장히 높은 일이었다. 그 때문에 당시 사람들의 머릿속에 사유상의 뛰어난 조형미가 강한 인상을 남겼고, 보통 부처의 이름을 넣는 석가모니상, 아미타불상, 약사불상 등과 달리 특이하게도 자세가 불상의 명칭이 되었다.



_전시실 입구 

 

나만의 문화재 관람 포인트

현재는 국보의 서열화 논란으로 문화재 지정번호를 폐지하였기 때문에 이전의 국보 78호(6세기 후반 제작)를 왼쪽, 국보 83호(삼국시대 제작)를 오른쪽에 있는 반가사유상이라 말할 수 있다. 두 반가사유상의 외형은 살짝 다르다. 그렇기에 비교 포인트를 잡으면 더욱 즐겁고 의미 있는 관람을 할 수 있다.

먼저 눈에 띄는 비교 포인트는 ‘보관’이다. 왼쪽은 해와 달이 있는 뾰족한 관이고, 오른쪽은 장식이 생략되어 있고 단순한 형태의 삼산관이다. 두 번째 비교 포인트는 ‘옷’이다. 왼쪽은 날개옷 같이 부드러운 비단옷을 선으로만 표현하여 얄팍한 천의 느낌을 살렸으며, 오른쪽은 상의는 목걸이만 착용하였고 하의 치마를 역동적인 주름으로 만들어 두꺼운 천을 표현했다.

 

뛰어난 주조 기술의 정수

주조 과정은 철심 위에 진흙으로 내형틀을 만들고, 내형틀 위에 밀랍을 씌워 불상의 모양을 조각한다. 조각된 밀랍 위에 진흙을 발라 외형틀을 만들고, 외형틀을 고온으로 가열해 밀랍이 녹아 나오게 한 뒤 밀랍이 녹아 나온 공간에 1,100℃ 정도의 동과 주석을 섞은 쇳물의 온도를 유지하며 부어 완성한다. 세세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전해지는 전통 주조 기술과 과학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주조하여도 한 번에 성공하기란 쉽지 않다. 또한 왕실이나 가능했을 규모의 후원과 몇 십 명 정도의 장인들이 힘을 모아야만 완성할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비파괴검사인 CT촬영을 통해 사유상을 점검해 보면, 왼쪽의상은 신체 곳곳에 금속을 이어 붙여 주조 결함을 수리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당시 금동은 굉장히 비싸고 귀한 재료이다 보니 금동의 두께를 4mm로 아주 얇게 주조하는 바람에 신체의 복잡한 자세까지 쇳물이 흘러 들어가지 않았다. 때문에 주조 이후에 금속을 이어 붙인 것으로 보인다. 약 50년 정도 후에 만들어진 오른쪽 상을 CT촬영 해보면 몸통부분은 이어붙인 흔적 없이 주조 과정에서 한 번에 성공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여러 시도 끝에 기술적으로 발달한 방법으로 오른쪽 상이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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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왼쪽)

 

반가사유상만을 위한 사유의 방

국립중앙박물관 단일 전시장 사상 처음으로 건축가가 설계를 맡은 곳, 사유의 방. 건축가는 박물관 요청 세 가지, ‘2개의 반가사유상을 놓고 싶다’, ‘유리 케이스에 넣고 싶지 않다’, ‘반가사유상의 뒷모습도 보여주고 싶다’를 충족하기 위해 면적을 소극장 크기로 늘려 설계했다.

전시장의 바닥은 살짝 올라가 있고, 천장은 조금 더 큰 각도로 내려가 있어서 멀리서 보면 뒤쪽으로 공간이 더 확장되는 느낌이다. 이 공간을 설계한 최욱 건축가는 이러한 장치를 통해 관객과 두 불상이 서로 교감할 수 있는 공간을 더욱 크게 확장하는 효과를 노렸다고 말한다.

사유의 방이 특별한 건 뭐든 조금씩 어긋나고 틀어져 있다는 점이다. 전시장 바닥이 1도쯤 기울어 있어 구슬을 굴려보면 입구 쪽으로 굴러내려 간다. 천장에는 2만 천여 개의 알루미늄 봉을 마치 하늘의 별처럼 박았다. 천장 역시 불상 쪽으로 갈수록 아래로 기울었다. 황토로 만든 전시관 벽면도 살짝 누웠다. 빛을 흡수하는 소재인 황토에 계피를 섞어 은은한 향기까지 풍기게 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반가사유상 두 불상의 시선이 살짝 틀어져 정면을 보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덕분에 관람객도 반가사유상과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치지 않기에 공간이 경직되지 않고 자연스러운 느낌을 준다. 사유의 방을 설계한 건축가는 과거로부터 면면히 이어져온 반가사유상의 미소에 젊은 세대가 공감하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고, 그로 인해 작품의 가치가 더욱 빛난다면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 될 것으로 믿었다.

이제 우리에게 더욱 친숙해진 국보 반가사유상을 만나러 가보자. 그곳에서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나만의 사유를 완성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