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최남수 서정대 교수, 전 YTN 대표이사
미국 정부가 팔을 걷어붙이고 제조업 리더십을 부활시키겠다는 전략을 펴고 있다. 이들 조치로 미국 주요 첨단산업에는 앞으로 대규모 자금이 투입된다.
이런 산업 기류의 변화에 한국 경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미·중 산업정책의 격돌
중국 경제에 대한 미국의 공세가 파상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미국의 조치는 법과 행정조치, 두 가닥으로 진행되고 있다. 먼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반도체 및 과학법, 인프라 투자법 등이 ‘아메리칸 퍼스트 2.0’의 큰 판을 구축하고 있다. 측면에서는 바이 아메리칸, 생명공학 및 바이오 제조 이니셔티브 등 행정명령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들 조치로 미국 주요 첨단산업에는 앞으로 대규모 자금이 투입된다. 지난해 11월 인프라법이 미 의회에서 통과됨에 따라 탄소 포집 같은 신 청정에너지 기술에 200억 달러 이상이 투자될 예정이다. 반도체 및 과학법은 반도체와 인공지능 등 첨단산업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 2,800억 달러의 연방 재정을 동원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인플레 감축법은 에너지와 기후변화 대응 부문에 3,860억 달러를 지출하도록 하고 있다.
미국이 본격적으로 신(新)산업정책의 깃발을 든 것이다. 그동안 미국에서는 산업정책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보이는 태도가 주류를 이뤄왔다. 정책이 경제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에 대한 견제 심리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제는 분위기가 크게 바뀌었다. 중국이 제조 2025, 일대일로 등 대내외를 겨냥한 확장정책을 펴면서 미국의 턱밑까지 추격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도 팔을 걷어붙이고 제조업 리더십을 부활시키겠다는 맞대응 전략을 펴고 있다. 미·중 산업정책의 격돌이다.
제조업이 국가의 명운을 좌우한다
미국에 있어 2008년의 금융위기는 제조업을 바라보는 시선을 크게 바꾸게 되는 계기가 됐다. 경제위기의 와중에서 미국의 간판급 자동차 회사인 GM과 크라이슬러는 빈사 상태에 놓였다. 결국 정부가 직접 긴급 자금을 수혈하면서 이들 회사는 기사회생한다. 당시 오마바 행정부는 제조업이 공동화라는 심각한 중병에 걸려있음에 주목하게 된다. 실제로 2001년부터 2011년까지 10년 사이에 사라진 제조업 일자리는 5백만 개에 달했다. 오마바 행정부는 2012년에 ‘제조업 르네상스’를 기치로 내걸고 제조업 부활 정책에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민주당 정부의 정책을 대부분 폐기했던 트럼프도 제조업 르네상스 정책만은 존속시켰다.
제조업 중시 정책의 기조는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코로나19와 글로벌 공급망의 혼란 사태를 계기로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 안에 위치한 제조업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국 제조업이 전체 국내총생산(GDP)와 직접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각각 11%와 8% 수준이다. 하지만 기업 연구개발 투자 중 비중이 70%에 달하고 있으며, 수출의 60%, 생산성 증가율의 35%, 자본투자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중요도가 그만큼 큰 산업이다. 이렇게 보면 바이든 행정부가 지금 펼치고 있는 산업정책은 제조업 르네상스를 대폭 강화한 확장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개별 정책들의 수면 밑에서는 중국을 제치고 제조업 리더십을 확보하려는 미국의 그랜드 플랜 ‘미국몽’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산업 기류의 변화에 한국 경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정부는 현재 기업의 활력 회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규제 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바람직한 방향이다. 제조업이 국가경제의 명운을 좌우하는 시대인 만큼 반도체산업경쟁력강화법 제정 등 더 적극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함을 미국이 잘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