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지혜 아트 컬렉터, <나는 미술관에서 투자를 배웠다> 저자
수많은 갤러리를 직접 찾아다니지 않고 한곳에서 미술작품을 감상하고 거래할 수 있는 아트페어.
국내에서 열리는 아트페어 수만 50개에 달할 정도로 그 열기는 뜨겁다.
예술을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아트페어의 이모저모에 대해 알아보자.
갤러리 편집숍, 아트페어
갤러리에만 머물러 있던 미술품 판매 채널이 2000년대에 들어서며 아트페어와 경매 등으로 확장되고 있는 현상은 당연히 ‘그린라이트’다. 작가와 컬렉터, 갤러리 모두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우선 작가에게는 노출 빈도가 곧 인지도다. 아트페어에 최소 3년은 연속으로 참가해야 얼굴을 알릴 수 있다는 미술계의 통설이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이유다. 컬렉터 입장에서는 가격을 비교할 수 있는 경로가 다양해지는 만큼 선택의 폭이 넓어질 것이다. 갤러리에게 있어 아트페어의 ‘참가비(부스비)’는 곧 홍보비다. 컬렉터가 보기에 아트페어에서 소위 ‘잘 팔리는 집’은 그만큼 좋은 작품의 수급이 빠른 집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판매 실적이 좋을수록 갤러리의 명성도 올라간다. 이처럼 까다롭고 섬세할 수밖에 없는 미술 관계자 모두에게 ‘윈윈(win-win)’ 전략이 가능하기 때문일까?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발간한 2020년 〈미술 시장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에서 열리는 아트페어 수가 50개에 달할 정도로 그 시장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아트페어의 장점을 꼽자면 역시 ‘편리함’이다. 갤러리가 한데 모인 일종의 편집숍인 만큼 따로 발품을 팔 필요가 없는 것이다. 밀실 거래를 연상케 하는 갤러리들의 판매 방식에 비해 거래가 투명하게 이뤄지는 것 또한 매력적이다. 아트페어에 참가한 갤러리들이 홍보 효과를 노리는 만큼, 선별한 작품만을 소개하기 때문에 작품의 퀄리티가 보장된다는 장점도 있다. 덕분에 컬렉터에게 아트페어는 시장의 트렌드를 읽기에 최적의 학습 현장이다. ‘화랑미술제’와 한국화랑협회가 주최하는 국내 최초의 아트페어인 ‘키아프(Kiaf)’는 각각 봄과 가을을 장식하는 한국의 메이저 아트페어다. 미술 시장에서 ‘메이저’라는 말은, 거래 금액이 가장 높다는 뜻으로 통용된다. 거의 모든 아트페어는 공식 오픈 하루 전날 VIP 고객을 대상으로 먼저 페어를 시작한다. 이를 흔히 ‘VIP 프리뷰’, ‘프레스데이(Press Day)’라고 부르고 전문용어로는 ‘베르니사주(Vernissage)’라고도 한다. 프리뷰가 중요한 이유는 갤러리들이 페어에 가져온 작품들을 가장 빨리 보고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구매 고객에게 작품을 고를 우선권을 주는 것이라 보면 된다. 일반 관람일의 첫날 일찍 방문했음에도 원하는 작품이 이미 팔린 경우가 있는데, 이는 VIP 프리뷰에 방문한 관람객이 먼저 그 작품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관람일에 따라 다른 작품
연차 높은 갤러리스트들은 관람일에 따라 고객의 ‘수준’ 차이가 아주 크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여기서 수준이란, 구입하는 작품의 가격대보다는 미술에 대한 지식수준에 가깝다. VIP 프리뷰를 찾은 관람객의 대다수가 컬렉터이므로 작품의 구체적인 가격이나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을 문의하는 등 좀 더 심도 깊은 대화가 오간다. 반면, 일반 관람일에 갤러리스트들이 주로 듣는 질문은 ‘이 작가는 누구예요?’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갤러리스트가 일반 관람객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로는 ‘만지지 마세요’를 꼽았다. 체감하는 차이가 이렇다 보니 관람일에 따라 설치되는 작품도 다르다. 2021년 5월에 개최된 ‘아트부산’을 이틀에 걸쳐 관람했는데, 대부분의 갤러리들이 일반 관람일에 맞춰 부스에 걸린 작품들을 재정비한 것이 눈에 띄었다.
VIP 프리뷰에 비해 ‘누가 봐도 확실히 아는 작가’의 작품에 중점을 두고, 원화보다는 판화를 선보이는 방식으로 관람객을 맞이한 것이다. 그러므로 아트페어에서 작품을 사기로 결심했다고 해서 무조건 빨리 방문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원화 작품인지 판화인지, 조각인지 피규어인지 등 원하는 작품의 형태와 작
가군을 추리는 것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작품의 구성 또한 미리 생각해두는 것이 중요하다. 아트페어가 가까워지면 갤러리들은 홈페이지나 SNS에 이번에 선보일 작품들을 올려 홍보를 시작한다. 그러니 어느 갤러리에서 어떤 작품을 취급하는지 체크해두기를 권한다. 사전 정보 없이 무턱대고 아트페어에 갔다가 원하던 작품을 눈앞에서 놓치는 쓰디쓴 경험을 해본 사람으로서 하는 조언이니 꼭 명심하기를 바란다.
원하는 작품을 발견했을 경우 그 즉시 사야 할까? 당연히 그럴 필요는 없다. 들어가는 금액이 적지 않은 만큼 충분히 숙고해야 한다. 그럴 땐 갤러리스트에게 작품을 ‘홀드’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아직 값을 치르지 않았지만 가장 선순위 구매자 지위를 갖게 되는 것이다. 내 마음에 드는 작품이 팔렸는지 여부는 굳이 갤러리스트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확인할 수 있다. 캡션 옆에 스티커가 붙어 있는지를 보면 된다. 아트페어에 출품된 작품의 캡션 옆에 빨간색 원형 스티커가 있으면, 그 작품은 판매 완료됐다는 뜻이다. 초록색이나 파란색 스티커가 있다면 누군가가 ‘홀드’한 작품이다.
드디어 작품을 구매하기로 최종결정했다면, 융통성을 발휘할 순간이다. 아트페어에서는 가격 조정을 기대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페어 마지막 날에는 좀 더 큰 폭으로 가격이 변동되기도 한다. 동시에 마지막까지 선택을 받지 못한 작품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유념해야 한다. 가격 협상을 마쳤다면 다음 단계는 드디어 결제다. 작품의 가격대나 갤러리에 따라 결제 방법이 상이하지만, 작품의 가격대가 높은 경우, 현장에서 일정 비율의 계약금을 지불하고 페어가 끝난 후에 잔금을 결제하면서 배송지와 설치 일정을 조율하면 된다. 내가 고른 작품 옆에 빨간색 스티커가 붙여지는 것을 볼 때면 정말 신기하고도 뿌듯하다.
다양한 형태로 개최되는 아트페어
혹시 지금 ‘아트페어는 넘사벽인 그들만의 리그’라는 생각이 든다면, 섣부른 좌절은 금물이라 말해주고 싶다. 메이저급 아트페어가 있다면, 그 반대도 있다. 이제 막 아트테크에 뛰어든 초심자라면 메이저 아트페어로 곧 바로 진입하는 것을 오히려 말리고 싶다. 미술품 구입은 오로지 자신의 안목과 가치관으로 결정되는 일이므로 훈련과 연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작품 구입에 나서기 전에 다양한 형태로 개최되는 아트페어들을 즐기다보면 어느새 작품을 보는 눈이 놀랄 만큼 성장한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호텔에서 열리는 ‘아시아 호텔 아트페어 AHAF, Asia Hotel Art Fair’는 5성급 호텔 객실에 작품을 설치하고 관람객을 맞는다. ‘호캉스’를 떠나는 기분으로 아트페어를 둘러볼 수 있다. 호텔에서 묵을 때 한참 청소 중인 다른 객실의 구조가 궁금해서 빼꼼 들여다보고 싶은 적이 있었는데, 문이 활짝 열린 객실들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작품을 관람하는 기분이 이색적이다. 신진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는 갤러리들이 다수 참여하고, 도예 작품도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어서 한두 점은 꼭 고르게 된다. 2021년 6월, 파크 하얏트 부산에서 열린 AHAF는 1만 5천 명의 관람객이 방문했고 60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단순히 이색 장소에서 열리는 예술품 판매 행사라고 치부하기에는 상당히 고무적인 성과다. ‘어반 브레이크 아트 아시아(Urban Break Art Asia)’는 신생 아트페어지만 기존의 ‘우아미’를 집어 던지고 ‘시끄러운 아트페어’를 표방하며 MZ 세대들을 겨냥했다. 첫 페어가 열렸던 2020년에는 세계적인 스트리트 아티스트인 뱅크시의 작품이 네 점이나 설치됐고, 이듬해 7월에 열린 두 번째 페어에서는 ‘낙서 천재’라고 불리는 존 버거맨(Jon Burgerman) 특별전을 선보이며 큰 주목을 받았다. 아트페어에 참가 이력이 없는 신진 갤러리와 신진 작가를 타겟팅한 ‘더 프리뷰 한남’ 아트페어는 2021년 개최 첫해부터 엄청난 성과를 거두며 2022년 ‘더 프리뷰 성수’라는 이름으로 더 다양한 행사를 선보였다.
아트페어는 현시점에서 작품의 시장가치를 가늠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다. 감상 위주가 아닌, 작품의 판매를 위해 존재하는 곳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아트페어를 다니다 보면 동선이 겹쳐 여러 차례 마주치는 지인들이 있는데, 그렇게 서울이 아닌 다른 도시, 다른 나라에서의 조우가 반복되면 웬만한 친구들보다 더 자주 보게 되는 경우도 있다. 자연스럽게 인맥이 쌓이는 사교의 장이기도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