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최원형 생태환경 작가, 서울시 에너지정책위원회 시민협력분과 위원
오늘날 우리가 먹는 음식 대부분은 흙에서 얻는 만큼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는 데 흙은 필수이다.
12월 5일 세계 토양의 날을 맞이하여 토양침식으로 계속 사라져가는 흙을 보존하기 위한 지혜에는 무엇이 있을지 알아보자.
흙의 가치를 잊고 사는 시대
태어날 때부터, 아니 내 부모의 부모의 부모로 거슬러 올라가는 머나먼 시간부터 흙은 늘 있었기 때문에 흙도 어느 순간 생겨난 물질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지구에 처음 흙이 생긴 건 언제일까요? 흙에도 종류가 있을까요? 만약 흙이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오늘날 우리에게 흙은 대체 뭘까요?
12월 5일은 세계 토양의 날입니다. 세계 토양의 날을 맞아 이런저런 질문이 떠오릅니다. 아스팔트나 콘크리트가 뒤덮어버려 흙이 자취를 감춘 곳이 바로 도시입니다. 사람들이 도시에 살기 시작하면서 흙을 대하는 태도에 큰 변화가 생긴 것 같아요. 하루 중 흙을 밟는 시간은 고사하고 눈으로 흙을 만나는 시간조차 없는 도시에 살다 보니 흙의 존재감마저 잊고 사는 게 아닌가 싶어요. 미래 농업의 대안으로 스마트 팜이 떠오르는 걸 보면서 더욱 흙의 가치를 잊어//버린 시대를 살고 있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_세계 곳곳에서 토양침식이 심각한 상황.
흙과 점점 더 멀어지는 우리
흙은 우리가 당연해서 그 존재를 잊고 지내는 동안에도 놀라운 일을 합니다. 흙은 단지 식량을 생산하는 터전만이 아니거든요. 오염된 물을 정화시키고 의약품의 원천이며 기후변화에 대처하고 적응하도록 돕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흙은 무한히 많은 생명을 품고 키웁니다. 흙을 봐야 그 존재에 대해 생각도 하고 가치도 느낄 텐데, 도시는 그럴 기회조차 없습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봐야 사랑스럽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흙도 그런 것 같아요. 점점 편리한 쪽으로 일상이 재편되면서 흙을 보는 관점도 바뀌고 있어요. 어느 순간부터 마트에서 흙 묻은 채소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조리 과정에서 흙을 털어내는 일이 줄어들면서 흙이 묻지 않은 채소를 선호하게 되었어요. 흙이 묻지 않은 감자나 당근이 처음엔 무척 낯설었지만 이젠 어쩌다 흙 묻은 채소를 보면 오히려 불편하고 번거롭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렇듯 우리는 미미하게라도 인연을 이어온 흙과 더 멀어지고 있습니다.
2015년은 세계 토양의 해였어요. 굳이 토양의 해를 만든 까닭은 흙이 계속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농업이 발달하고 폭우, 태풍 등 기후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우려스러울정도로 토양침식이 일어나고 있어요. 유엔은 60년 안에 엄청난 양의 토양이 침식될 거라고 경고하고 있고요. 유엔은 토양침식으로 2037년까지 23조 달러어치가 넘는 음식이 사라질 것이고, 전 세계 인구의 40%가량이 피폐한 삶을 살 거라는 예측을 합니다.
_도시인들은 요즘 흙을 만질 기회조차 별로 없다.
너무 빠른 토양침식 속도
그렇다면 토양침식은 어느 정도 규모로 일어나는 걸까요? 흙이 만들어지려면 암석이 필요하고 침식시킬 물도 있어야 합니다. 암석이 등장한 시기에 대해서는 과학자들마다 추론이 분분한데, 가장 오래된 추정에 따르면 44억 년 전 화강암이 생겼다고 해요. 암석이 풍화와 침식을 거듭하면서 흙이 되는데, 암석의 종류에 따라 침식되는 속도도 다르고 흙도 여러 종류로 나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흙을 분류하려는 움직임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났는데, 나라마다 기준이 워낙 다양하다 보니 분류가 쉽지 않았다고 해요. 현재는 흙을 12가지로 분류하고 있어요. 흙의 종류에 따라 질감, 산성도, 흙을 이루는 물질까지 알 수 있다고 합니다.
19만 년 가까이 떠돌던 인류가 정착 생활을 하면서 농경문화가 자리잡게 되었어요. 정착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건 작물을 기르기 적절한 기후 덕분입니다. 쟁기로 땅을 가는 농경문화가 발달하면서 흙 알갱이는 잘게 부서져 바람이나 물에 쓸려 갔지요. 암석이 풍화와 침식을 거듭하면서 흙이 만들어지고 침식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현재 토양침식 속도는 너무나 빠릅니다. 1년에 1ha당 평균적으로 1톤의 표토가 만들어지는 데 비해 같은 면적당 13.5톤의 흙이 바람과 물에 쓸려가 사라지거든요. 만들어지는 속도보다 10배에서 30배의 속도로 흙이 사라지고 있고 기후변화로 침식되는 속도는 더 빨라지고 있어요.
더 우려스러운 것은 흙이 재생 불가능한 자원이라는 사실입니다. 수산물을 제외하고 오늘날 우리가 먹는 음식 대부분은 흙에서 얻는 만큼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는 데 흙은 필수입니다. 그런데 이토록 빠른 속도로 흙이 사라지고 있다는 거지요. 토양을 황폐화시키는 원인 중 80%가 토양침식입니다. 토양이 황폐해지니 농사에 어려움이 생기고 그걸 만회하려 더 많은 비료를 사용하게 됩니다. 토양에 뿌린 비료 중 상당량은 땅에 머물지 않고 강과 바다로 흘러가 그곳 생태계를 망가뜨립니다.
농경지 침식은 그 자체로 치명적일 뿐 아니라 침식된 흙이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새로운 문제를 일으킵니다. 전세계적으로 1년에 10억~40억 톤 정도의 흙이 바람을 타고 이동합니다. 그중 절반 이상은 북아프리카에서 발생한다고 해요.
_폭우, 태풍 등 기후 문제가 토양침식의 한 원인이다.
토양침식을 막는 선한 영향력
_식물 뿌리 주변의 다양한 박테리아는 토양침식을 예방
토양침식을 막을 가장 쉽고 효과적인 방법은 식물을 심는 거예요. 식물의 뿌리 주변에 서식하는 다양한 박테리아는 토양이 물을 흡수할 수 있는 양을 늘려주고, 토양이 침식되지 않도록 붙잡아두는 물질을 만들어요. 식물의 뿌리가 결국 토양침식을 막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농업이 토양침식을 막아줄까요? 답은 ‘아니요’입니다. 대부분의 농작물이 한해살이인데, 한해살이식물은 뿌리보다 씨앗을 퍼뜨리는 데 많은 에너지를 쓰기 때문에 뿌리가 여러해살이식물보다 약합니다. 그래서 한 가지 작물을 심기보다 여러 작물을 섞어 심어서 농토에 늘 무언가가 심어져 있는게 침식을 막는 일에 효과적입니다. 대량으로 단일작물을 심는 일이 토양침식에 얼마나 취약한지 알 수 있지요? 게다가 발굽이 있는 가축이 땅을 많이 밟을수록 흙이 다져져서 물이 스며들지 못해 토양침식은 더 많이 일어납니다. 토양에는 2조 5,000억 톤의 탄소가 저장돼 있는데요. 가뭄과 홍수가 반복될수록 토양침식도 빈번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어요.
토양침식 속도가 빨라지면 토양 속 탄소가 방출되어 기후변화가 더 심해지겠지요. 또 기후변화가 심해짐에 따라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지구는 인류가 거주 불가능한 행성으로 바뀔지도 모릅니다. 가능하면 채식 위주로 적절한 양의 음식을 먹으면 과도한 농작물 재배를 줄일 수 있고 토양침식을 막는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한 해를 마무리하는 달이기도 하지만 ‘세계 토양의 날’이 들어있는 12월에는 한 달 동안 흙의 가치와 고마움을 느껴봐도 좋겠다 싶습니다. 토양침식을 줄일 수 있는 방향으로 내 삶의 방식을 변화시켜야 할 때입니다.
_대량으로 단일작물을 심는 농업은 토양침식에 취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