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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세상은 게임과 같다
심리학자·게임문화재단
이사장 김경일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열심히, 목표에 집중하며 사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사회에 살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만 살아서는 정작 우리의 삶을 힘들게 하는 문제의 해답을 얻을 수 없다. 우리 사회의 멘토인 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는 우리가 좀 더 타인의 마음에 대해 이해하며, 각자 개성을 꽃피울 수 있는 게임 같은 세상을 만들어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무의미한 대화를 많이 하라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70% 이상이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답했다. 청소년들의 고민 1위도 친구, 부모, 교사와의 인간관계로 나왔다. 이처럼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힘듦을 안겨주는 너(타인)’ 때문에 괴로워한다. 김경일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이러한 타인과의 문제를 잘 다스려 우리 모두의 생존력을 함께 높여가는 방법에 대해 지혜를 전해주고 있다. 많은 방송, 강연, 저서 등을 통해 그를 만나볼 수 있으며, 특히 <어쩌다 어른>, <사피엔스 스튜디오>와 같은 TV프로그램과 콘텐츠를 통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심리학자로 대중들에게 알려졌다. 또 올해 11월에 출간된 따끈따끈한 그의 신간 <타인의 마음>은 출간되자마자 인문도서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많은 관심을 끌었다.

“한국은 문화 자체가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사람들이 저마다 많이 다르죠. 그래서 저는 ‘사람 때문에 천국도 경험하고 지옥도 경험하는 나라’라는 표현을 자주 씁니다. 저 사람은 도대체 왜 저럴까? 이해가 안 되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인지심리학자로서 그런 고민들을 풀어보면서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당신의 마음을 응원한다.’고 맨 앞장에 썼는데 그 말을 많이 좋아해주시더라고요.”

김경일 교수는 이 책에서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화를 많이 해보길 추천했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대화는 ‘목적 없는 대화’이다. 목적의식을 가지고 하는 대화는 100년을 나눠봐야 상대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부부나 가족도 살아가면서 오랫동안 어떤 목적이나 용건이 있을 때만 대화하면 우리 머리가 ”우린 대화를 많이 했어.“라고 착각을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아는 건 없는 거예요. 그래서 무의미한 대화, 목적 없는 대화, 용건 없는 대화를 많이 나눠봐야 상대의 속마음을 알 수 있어요.”



 

 

정신력이 모든 걸 해결해주진 않는다

인간의 심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김경일 교수라고 해서 인간관계가 마냥 쉬운 것만은 아니다. 그도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고, 그건 당연한 일이라고 인정한다.

“아까 말씀 드렸던 것처럼 용건이나 용무 없는 대화를 나누려고 농담을 걸었을 때, 그 사람이 힘들고 사람 때문에 지쳐 있어서 대답을 못해주는 부분은 괜찮아요. 그런데 농담 자체에 대해 불쾌해 하면서 실없는 사람이라고 말하면 대책이 없죠. 그 사람은 그냥 나를 싫어하는 거예요. 그런 사람들과는 관계를 맺는 게 거의 불가능해요. 그래서 그럴 땐 그냥 포기합니다.”

여기에서 포기는 인간관계를 끊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과는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면서 그 이상 들어갈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하는 것을 뜻한다. 아무리 잘해주려고 해도 그냥 자신이 싫다는 사람과는 굳이 좋은 관계를 맺으려고 정신적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없다는 뜻. 

김경일 교수는 우리 사회에 전반에 퍼져 있는 ‘정신력의 신화’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한다.

“인간의 체력과 정신력은 같은 건전지로부터 나옵니다. 프로바둑 기사들도 체력이 떨어지면 대국 후반에 악수를 두곤 해요. 그래서 그들도 체력단련을 합니다. 최근 월드컵 경기에서도 우리 선수들은 후반전에서 정신력으로 싸웠다기보다 체력으로 싸웠습니다. 정신력도 중요하지만 모든 걸 정신력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착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요즘 젊은 세대는 고생을 안해봐서 뭘 모른다.’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미 정신적으로 힘든데 육체노동을 하라는 것은 젊은이들이 자기 세대보다 더 힘들게 살라는 말과 같다. 기성세대는 젊은이들이 정신적으로 힘들다고 말하“그건 너의 의지와 노력이 부족해서다.”라고 몰아붙이기 쉽다. 하지만 정신력은 의지와 노력으로 무한정 솟아나오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육체와 정신을 단순하게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정신건강의학과에 상담 받는 것도 무시하거나 터부시하는 경향이 많다. 이가 아파서 치과에 가는 것처럼 정신이 힘들어서 정신건강의학과에 가는 것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게임처럼 스스로 몰입할 수 있는 세상

김경일 교수는 게임문화재단의 이사장으로서 올바른 게임문화 정착을 위해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게임과 노동은 행위로서 구분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며 어떤 행위에 피드백을 넣으면 게임이 되는 것이고, 그 피드백을 뺏으면 노동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게임은 단순히 재미있어서 하는 게 아니라 점수나 랭킹 같은 피드백을 받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는 행위 중에는 행위 자체가 재미있어서 하는 것은 거의 없어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사회가 좀 더 게임적인 요소를 지닌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는 아무 생각 없이 타인이 시키는 대로 노력만 계속해서 그것을 잘하게 된 사람들, 즉 시험만 잘 본 사람들이 리더가 되는 사회는 위험하다고 본다. 그렇게 시험에 특화된 사람들은 사회성이 낮거나 자폐적인 사람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런 이들은 진정으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는 모든 사람들이 각자 자신에게 맞는 것에 몰입할 수 있는 걸 만들어주는 게임 같은 세상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 자신의 개성을 활짝 꽃피우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 것이죠. 그러므로 아이들에게 게임을 하지 말라고 할 것이 아니라 세상을 게임처럼 바꿀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는 스스로 워낙 복잡하게 살고 있기 때문에 ‘던전 앤 파이터’ 같은 액션 게임이나 레이싱 게임 같은 심플한 게임을 주로 한다고 말한다. 자신만의 리프레시 방법은 떡볶이 같이 매운 음식을 먹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 한 가지 그가 강조하는 것은 ‘걷기’이다. 인간은 걸을 때 편도체의 활동이 약화되고 반대로 해마의 활동이 증가한다. 그 과정에서 힘들고 스트레스 받고 불안한 마음이 치유되는 효과가 매우 크다. 약물적인 침투적 방법 말고 비침투적인 방법으로 정신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걷기’만큼 효과가 좋은 것이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런 그에게 남은 인생 버킷리스트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엉뚱하게도 ‘세계 정복’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어떻게 세계 정복을 할지 도구는 아직 몰라요.(웃음) 돈으로 치면 아무리 노력해도 전 세계에서 20억등 정도밖에 못하겠죠. 하지만 아무도 안 하는 연구를 해서 세계적인 석학이 되면 그게 세계 1등인 거잖아요. 결국 그렇게 아무도 안 하는 걸 한번 시도 해보고 싶습니다.”

그가 말하는 세계 정복은 결국 우리 모두가 자신이 스스로 정의하는 ‘자기 방식의 인생’이라는 게임 속에서 승리자가 되는 것을 뜻하는 말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