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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음식에 담긴
이야기를 찾아서
시인, 음식문화
칼럼니스트 및
문화공간 수이재대표
최원준

우리가 먹고 있는 음식은 무엇 하나 갑자기 생겨난 것이 없다.

하나하나 이야기를 가지고 있으며,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에는 그 지역의 역사가 담겨 있다.

 

음식문화칼럼니스트, 부산을 말하다



“부산에서 태어나 평생을 부산에서 살았음에도 부산을 너무 모른다는 사실에 어느 순간 부끄러워지더라고요. 그래서 ‘수이재’라는 문화공간을 만들어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부산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문화공간 수이재 대표 최원준 시인은 공부를 하면 할수록 부산이 참 좋은 곳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평소,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곳에 대해 잘 알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행복해진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생각은 부산시민들도 이런 감정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어졌고, 사람들이 재미있게 부산을 알아갈 수 있도록 ‘음식문화’에 부산의 이야기를 녹여냈다.

“제가 늘 하는 말이 ‘음식은 시대를 담는 그릇, 사회를 담는 그릇’이라는 겁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음식을 먹어왔기 때문에 음식을 들여다보면 그 지역의 역사와 사회상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몇 년간 신문에 게재한 음식문화 칼럼은 부산학을 바탕으로 직접 검증까지 완료한 것이었다. 덕분에 부산학을 공부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방송국에서도 주목할 만큼 그의 칼럼은 인기를 얻었고 책으로도 출간되었다. 최원준 시인이 ‘음식’을 이야기하지만 ‘맛칼럼니스트’가 아닌 ‘음식문화칼럼니스트’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가마솥에 담긴 부산의 정체성

최원준 시인이 알아낸 부산 음식문화의 특징, 즉 부산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먼저, 그가 생각하는 ‘향토 음식’이란 지역 사람 대부분이 먹는 음식이면서 푸드 마일리지*가 제로(0)인 식재료로 만든 음식이다. 예를 들어, 강이 없는 어촌 마을에서는 미꾸라지 대신 고등어로 추어탕과 비슷한 음식을 만들어 먹는 식이다.

“부산에서 왜 이 음식을 먹는지를 알아보면 부산의 정체성, 부산 사람들의 기질이 나옵니다.”

부산은 피난 등의 이유로 전국 팔도에서 사람이 모인 ‘이주민의 도시’라고 한다. 그 사람들이 부산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각 지역 문화와 관습이 ‘부산화 과정’을 거치며 ‘음식’도 자연스럽게 그런 과정을 거쳤다.

한 집 건너 한 집의 이웃사촌이 이북 사람이고 전라도 사람이었으니 처음에는 서로의 음식에 당연히 거부감이 있었다. 그러다 차츰차츰 서로의 비법을 융화해서 이북 사람도 먹고 전라도 사람도 먹는 ‘부산 음식’이 만들어졌다.

“부산(釜山)의 ‘부’ 자는 가마솥을 뜻합니다. 가마솥에 이것저것 넣듯이 ‘개방성’, ‘수용성’, ‘다양성’, ‘공동체성’이 담긴 지역이라는 게 부산의 정체성입니다.”

* 푸드 마일리지 식품이 생산지에서 소비자의 식탁에 오르기까지 이동하는 거리

 

‘돼지국밥’, ‘밀면’ 맛깔나게 먹기

부산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음식이 ‘돼지국밥’과 ‘밀면’이다. 돼지국밥 같은 경우 밥상을 차리는 방식은 정형화되어 있지만 돼짓국은 그렇지 않다. 고기 삶은 물을 가지고 만든 맑은 돼짓국, 사골을 고아서 만든 뽀얀 돼짓국, 국에 밥을 넣지 않는 따로 국밥과 수육과 순대까지. 이렇게 지역별 특징을 가지고 있는 모든 돼지국밥이 지금의 부산 돼지국밥이다.

“‘부산 돼지국밥은 이것이다’라고 정의하지 않았다는 점이 개방성을, 다른 지역의 돼짓국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수용성과 다양성을 보여주고, 거기에 부산 모든 사람들이 먹는 음식이라는 공동체성까지 가지고 있는 거죠.”

밀면은 냉면을 먹을 수 없는 피난 상황 속에서 탄생한 음식이다. 냉면은 메밀가루와 감자 전분으로 만드는 북한 음식인데, 당시 부산에서는 재료를 구하기도 어려웠고 구할 수 있다고 해도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음식으로나마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달래고 싶었던 사람들은 밀가루와 고구마전분을 이용해 밀면을 만들었고, 더불어 많은 이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주린 배를 채울 수 있었다. 이처럼 밀면은 ‘최선’이 아닌 ‘차선’의 음식이었지만, 그 안에는 맛있는 음식을 여럿이 먹기 위한 ‘공유’와 ‘배려’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최원준 시인은 음식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고 먹으면 ‘맛깔’이 달라지고, 음식에 대한 만족도가 훨씬 커질 거라고 한다. 시간이 지나며 음식 맛이 조금씩 변해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음식 본래의 의미를 기억하는 것은 중요하다. 최원준 시인은 음식 맛이 변하더라도 정체성을 지킬 수 있도록 계속해서 음식문화를 기록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