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부산을 방문한 관광객들의 관광 목적 1위가 맛집 탐방일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부산 로컬음식.
부산을 대표하는 음식 속 담긴 이야기를 통해 풍성한 부산의 맛을 느껴보자
고급 식재료에서 대중 음식이 된 ‘부산어묵’
겨울에 가장 생각나는 별미라면 단연 ‘어묵’을 꼽을 수 있다. 어묵은 오래전부터 동아시아에서 많이 먹던 음식이다. 조선시대 진연의궤(궁중에서 베푸는 연회에 관한 전말을 기록한 책)와 산림경제(농서 겸 가정생활서)를 보면 ‘생선숙편’과 ‘생선 완자탕’의 조리법이 소개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어묵이 어떻게 부산을 대표하는 음식이 되었을까.
‘부산어묵’은 부평시장에서 시작되었다. 1915년 부산부청에서 발간한 ‘부평시장월보’에 따르면 가마보코 점포 3곳에 대한 기록이 있다. 당시 어묵은 대좌부란 요정을 중심으로 소비되던 고급 식재료였다. 이 가마보코는 해방 전후를 거치면서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일본인들이 남겨두고 간 설비를 가지고 우리 실정에 맞게 어묵을 생산하였는데, 1945년 부평동시장에서 동광식품이 부산 최초로 어묵을 생산하였다. 이후 부산어묵은 자갈치시장을 중심으로 널리 보급되었다. 당시 시장에서 위판되고 남은 생선이나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생선을 돌절구에 함께 넣고 통째로 갈아 기름에 튀겨내 어묵을 만들었다. 부산어묵은 저렴하지만 영양가가 높아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게 되었다.
1) 생선살을 으깨고 반죽해서 튀기거나 찌거나 구운 생선묵 형태의 음식으로 어묵은 가마보코에서 유래된 것이다.
적은 양으로 포만감을 주는 ‘비빔당면’
삶은 당면에 매콤한 장과 고명을 얹어 비벼 먹는 ‘비빔당면’. 부평시장의 명물로도 알려진 비빔당면은 피난 시절 상인들의 허기를 달래주던 음식이다. 고구마나 감자에서 추출한 녹말가루로 만든 당면은 적은 양으로 포만감을 느끼게 해주었으며, 국수와 달리 당면은 미리 삶아 놓아도 불지 않아 쫄깃한 식감을 유지할 수 있었다. 별도의 조리과정 없이 즉석에서 먹을 수 있던 비빔당면은 초기엔 삶은 당면에 고추장 양념과 참기름을 얹은 소박한 형태였지만, 차츰 고명이 추가되면서 오늘날 비빔당면의 형태가 갖추어졌다.
이후 부평시장 건너편에 위치한 국제시장에 먹자골목이 형성되면서 비빔당면을 파는 수많은 좌판과 상점들이 생겨나, 부산의 명물이 되었다.
부산 차이나타운의 특색 음식 ‘만두’
영화 ‘올드보이’에서 최민식이 무려 15년간 먹었던 바삭한 군만두는 바로 초량 차이나타운에 있는 만두로 알려져 있다. 초량 차이나타운을 가면 한 집 건너 한집 꼴로 만두 가게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중국 현지 맛을 자랑하는 육즙 가득한 물만두와 생강 맛이 느껴지는 찐만두, 거기에다가 한국인 입맛에 맞춰 마늘 간장과 양념으로 버무린 오이무침을 만두와 함께 먹으면 그 맛은 일품이다. 이처럼 다른 지역보다 유난히 초량 차이나타운에 만두가 특색인 이유는 무엇일까.
1882년 임오군란을 진압한 청나라가 조선과 조약을 맺으면서 청나라 상인이 조선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1884년 초량에 청국 영사관이 세워지고, 청관 거리를 시작으로 차이나타운이 형성되면서 음식도 함께 유입되었다. 1900년대 초에는 광둥 출신 무역상들이 청관 거리를 주름잡았지만, 중국 내전 및 한국전쟁으로 인해 산둥 출신 화교들이 대거 피난을 오게 된다. 중공군이 남하함에 따라 계속 내려오던 화교들은 하단 동아대학교 자리에 피난처를 꾸렸다. 얼마 후 초량 차이나타운으로 거주지를 이전하면서 이 일대에 화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지친 타향살이 속 화교들의 향수를 달래준 산둥 지방 특색 음식 만두는 오늘날 부산 차이나타운을 대표하는 음식이 되었다.
다양한 지역 문화가 담긴 ‘돼지국밥’
부산은 돼지국밥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푹 고운 사골에 여러 재료를 넣고 펄펄 끓인 돼지국밥을 먹으면 속이 시원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부산 돼지국밥의 원조는 부산·경남 지역에서 먹어왔던 맑은 고깃국이다. 그러나 한국전쟁 이후 부산에 정착한 피란민들에 의해 여러 지역의 음식 문화가 국밥에 섞이기 시작했는데, 돼지내장과 같은 부산물을 섞어 사골로 육수를 내는 ‘부산식 돼지국밥’으로 변형되었다. 이후 산업화 과정과 장터 문화가 섞이면서 식사 시간을 줄이기 위해 국에 밥을 말고 반찬을 얹어 퍼먹는 식문화가 정착되었다.
부산 돼지국밥은 다양한 육수가 특징이다. 부산에 정착한 이북 피란민들의 조리방식에 따라 돼지머리를 재료로 활용했는데, 상업화된 부산돼지국밥의 원형으로 볼 수 있다. 원래 부산의 돼지국밥은 국과 고기 고명을 국밥과 함께 한 그릇에 담아 토렴 후 내는 방식이었으나, 전쟁으로 많은 피란민이 오면서 돼지내장, 순대 등을 함께 쓰는 곳도 생겼다. 최근에는 삼겹살, 갈빗살 등을 재료로 쓰는 곳도 볼 수 있다
서민들의 허기를 채워준 ‘기장 곰장어 짚불구이’
부산광역시 기장군은 어장이 풍부한 곳으로, 예로부터 기장에서 생산된 미역, 멸치, 갈치는 궁중에 진상할 정도로 품질이 뛰어났다. 기장에는 또 다른 명물이 있는데 바로 곰장어다. 꼼지락 꼼지락거리는 모습 때문에 ‘꼼장어’라고도 불리는 곰장어. 껍질이 연하고 얇아 불 속에 오래 두면 새까맣게 타버려 껍질이 쉽게 벗겨지지 않아, 순간적으로 피어오르는 불에 구워야 제 맛을 낸다. 조선말 춘궁기와 흉년에 서민들이 허기를 채우기 위해 곰장어를 볏짚에 구워 먹은 데서 기장 곰장어 짚불구이가 유래했다고 본다. 짚불에 구운 곰장어는 잡냄새가 나지않고 씹을수록 고소한 맛을 낸다.
한때 곰장어는 천대받던 어종이었다. 눈이 퇴화되어 보이지 않아 징그럽고, 껍질은 끈적거리는 진액까지 있어 어부들은 곰장어를 잡으면 바로 바다에 던져버리곤 했다. 그러나 곰장어는 육고기가 귀했던 시절 바닷가 서민들에게는 단백질을 보충할 수 있는 식품이었다. 특히 곰장어는 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내려온 피란민들의 굶주린 배를 채워주던 음식 중 하나였다. 기장사람들은 1960년대까지도 곰장어를 잡아 밤새워 껍질을 벗겨 구운 다음 꼬치에 꿰어 자갈치시장, 부산시청 앞에서 팔기도 했다.
호떡의 달콤함과 씨앗의 고소함이 만나다 ‘씨앗호떡’
추운 겨울날 뜨거운 철판 위에 지글지글 구워지는 호떡을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호떡. 그러나 호떡은 우리나라 음식이 아니다. 호떡의 기록을 찾아보면 중앙아시아의 아랍인들이 밀가루 반죽을 화덕에 구워 먹었으며, 그들과 국경을 맞대고 문화교류를 하던 중국은 호떡에 고기와 채소를 채워 넣어 다양하게 즐겼다. 19세기 말, 화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알려진 호떡은 차츰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변형되었다. 속에 꿀이나 조청, 설탕 등을 넣어 달짝지근한 맛을 내는 호떡이 개발되었는데, 이는 인천 지역을 넘어 서울 종로까지도 퍼져나갔다.
전국적으로 다양한 호떡이 많지만, 부산에는 해바라기 씨와 각종 견과류, 건포도 등을 넣은 호떡을 볼 수 있다. 한국전쟁으로 부산에 모여든 피란민들이 다양한 종류의 곡물 씨앗을 넣고 호떡을 만들어 먹은 것이다. 휴전 이후, 미국에서 대대적인 밀가루를 원조해줬고, 덕분에 호떡은 대중화되었다. 당시 호떡은 지금처럼 기름에 튀긴 형태가 아니라 화덕에 구운 마른 형태였다. 그러다가 1970년대에 전국적으로 식용유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호떡을 기름에 부쳐 먹게 되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부산 씨앗호떡은 1980년대 남포동 거리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화덕에 구울 필요없이 밀가루 반죽을 식용유 두른 호떡 판에 눌러 튀겨낸 뒤, 가운데를 잘라 각종 견과류를 듬뿍 채워낸 부산 씨앗호떡. 달콤함은 물론 각종 견과류가 씹히는 식감 덕분에 많은 관광객이 부산에 오면 꼭 먹는 별미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