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장한업 이화여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영어 라이벌(rival)의 어원은 라틴어 리발리스(rivalis)로, ‘같은 개천을 사용하는 사람’ 또는 ‘개천의 반대편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라이벌과의 ‘선의의 경쟁’을 통해 우리는 자존감을 높이거나 지금 하는 일에 애착을 갖게 될 수도 있다.
경쟁의식 탓에 노벨문학상 거절한 사르트르
라이벌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같은 목적을 가졌거나 같은 분야에서 일하면서 이기거나 앞서려고 서로 겨루는 맞수”라고 나옵니다. 이런 라이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디든 있었어요. 한국사에서는 견훤과 궁예, 김구와 이승만, 이병철과 정주영, 김대중과 김영삼이 대표적인 라이벌이었지요.
이중에서 견훤과 궁예는 모두 신라 계통 출신으로 백제나 고구려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각각 백제와 고구려의 계승자임을 표방하며 치열하게 경쟁했지요. 서양사를 보면, 알렉산더 대왕과 다리우스 3세,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 모차르트와 베토벤, 카뮈와 사르트르, 히틀러와 처칠 등이 경쟁을 했어요. 이중에서 카뮈와 사르트르의 경우, 사르트르가 노벨 문학상을 거절한 이유 중 하나가 라이벌인 카뮈가 이 상을 먼저 수상해 자존심이 상해서라고 할 정도로 두 사람의 경쟁의식은 대단했던 것 같아요.
라이벌에게 모욕감을 안겨줬던 알렉산더 대왕
_알렉산더 대왕과 다리우스 3세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 대왕과 다리우스 3세의 라이벌 이야기도 널리 알려진 이야기지요. 그들의 라이벌 관계는 알렉산더 대왕이 다리우스 3세에게 보낸 편지에 잘 나타나요. “앞으로 당신이 나와 대화를 하고 싶을 경우 그 수신인을 ‘아시아의 왕’으로 하시오. 내게 동등한 입장으로 편지하지 마
시오. 당신이 소유했던 모든 것은 이제 나의 것이오.(중략) 만약 당신이 나의 왕위에 대해 이의를 품고 그것에 맞서 싸우려 한다면 절대 도망가지 마시오. 당신이 그 어느 곳에 몸을 피하든 내가 당신을 찾아낼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오.”1) 이 편지를 읽은 다리우스 3세의 기분은 어땠을까요? 엄청난 모욕감을 느꼈을 거예요. 그런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였겠지요. 하나는 알렉산더 대왕에게 비슷한 투의 편지를 써서 대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치욕스럽지만 참는 것이지요. 후자의 경우에는 라이벌 관계가 끝나겠지만 전자의 경우에는 새로운 싸움이 시작되겠지요.
1) 조셉 커민스 지음, 송설희, 송남주 옮김, <라이벌의 역사>, 말글빛냄 2009, p. 4.
같은 개천을 사용하면 싸우게 된다
그렇다면 라이벌은 본래 어디에서 경쟁한 사람들이었을까요? 어원상으로 보면, 이 경쟁은 강가에서 시작되었어요. 영어 라이벌(rival)의 어원은 ‘개천’이나 ‘시내’를 가리키는 라틴어 리부스(rivus)였으니까요. 리부스에서 라틴어 리발리스(rivalis)가 나왔는데, 그 의미는 ‘같은 개천을 사용하는 사람’ 또는 ‘개천의 반대편에 사는 사람’이었어요. 이 단어에서 중세 프랑스어 리발(rival)이 나오고 이것이 영어로 들어가 라이벌(rival)이 되었지요.
그런데 같은 개천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관계는 왜 좋지 못했을까요? 여러 가지 추측이 가능해요. 그중 하나는 물고기와 관련이 있을 것 같아요. 어느 날 아침 한쪽에서 물고기를 많이 잡아버리면 반대쪽에서는 잡을 물고기가 별로 없게 되지요. 또 아전인수(我田引水)라는 말처럼 한쪽에서 물길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면 반대쪽은 물을 사용하지 못하고 그 결과 농사까지 망치게 되겠지요. 또 개천을 사이에 두면 재산, 물건과 같은 물질뿐만 아니라 사람을 두고도 싸울 수 있어요.
넘어야 할 산 또는 자존감을 높여주는 계기
라이벌은 대개 부정적으로 인식되지만 긍정적인 면도 많아요. 첫째, 라이벌은 나의 목표 추구에 도움을 줘요. 라이벌은 내가 넘어야 할 산인 동시에 내가 갈 길을 밝고 명료하게 비춰주지요. 둘째, 라이벌은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더 애착하게 만들어요. 사람들은 자기와 같은 일을 하는 라이벌을
보면서 자기가 하는 일이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더욱 확신한다고 해요. 셋째, 라이벌은 나의 자존감을 높여줄 수 있어요. 누군가가 나를 라이벌로 생각한다면 그가 나의 실력이나 위치를 인정한다는 말과 같아요. 그러니 나의 자존감은 높아질 수 있지요.
여러분의 라이벌은 누군가요? ‘선의의 경쟁’이란 말처럼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는 라이벌을 한 번 찾아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미술계 화제의 라이벌 레오나르도 다 빈치 VS 미켈란젤로
1504년 피렌체 시 당국은 베키오 궁 대회의실 벽화 작업을 두 사람에게 동시에 의뢰해 경쟁을 붙였다. 두 사람은 서로의 밑그림을 헐뜯으며 자기 작품이 더 낫다고 주장했지만 당대 사람들은 미켈란젤로의 편을 들어주었다. 벽화 작업은 여러 사정 때문에 중단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