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최원형 생태환경 작가, 서울시 에너지정책위원회 시민협력분과 위원
‘2+1’이나 ‘할인’ 제품을 보면 막상 필요치 않은 물건임에도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과소비로 인해 자원 낭비와 환경 오염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 현대인의 무분별한 소비 습관을 반성하고 과소비가 가져올 후폭풍을 방지하고자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이 만들어졌다.
무분별한 과소비
_무분별한 과소비로 집안 가득 쌓인 방치된 물건들.
우리의 거실 혹은 안방에는 날마다 수천 개의 가게가 좌판을 벌입니다. 이 옷이 당신을 멋지게 해줄 거라고 이 영양제가 당신을 건강하게 해줄 거라고 속삭이지요. 이 자동차를 타면 당신의 격이 올라갈 거라고 당신이라면 이 정도 아파트에 살아야 하지 않느냐고도 합니다. 놀랍고 신기한 물건을 처음 만나는 곳도 대체로 그 가게입니다. 이 가게는 바로 텔레비전 홈쇼핑 채널과 광고입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가게에 가서 물건을 사는 번거로움 없이 클릭 한 번이면 물건이 집 앞까지 배달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집안까지 들어와 있는 가게에서 판매하는 무수한 물건 가운데 마음에 드는 물건을 보면 깊이 생각하기보다는 즉흥적으로 사는 경향이 있지요. 그게 광고의 힘입니다. 한정판이라든가 큰 폭의 할인이라는 말이 더해지면 마음이 바빠집니다. 꼭 필요하지 않아도 일단 확보하고픈 마음이 들고 결국 구매로 이어집니다. 막상 물건이 배달된 후에는 굳이 없어도 되는 물건이라는 후회가 밀려올 때도 많지요. 이렇게 구매한 물건들로 집은 점점 좁아지면서 더 넓은 집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혹시 없던가요?
집안을 한번 둘러보세요. 집을 채우고 있는 무수한 물건 가운데 정작 활용하는 물건이 얼마나 되는지 가늠해보세요. 미국과 유럽에서 꽤 오래전부터 시작된 창고 대여업이 최근 몇 년 사이 우리나라에서도 증가 추세에 있습니다. 겨울옷, 캠핑 장비 등 부피가 큰 물건부터 특정 계절에만 필요한 물건, 당장 필요하지 않지만 버리기엔 어쩐지 아까운 물건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물건을 둘 장소가 마땅치 않은 이들을 위해 공간을 대여하는 사업인데요.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일 수도 있지만 공간에 제약을 받지않기에 물건을 사는 데 주저함이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집이 아닌 곳에 물건을 보관해두고 필요할 때만 가져와 사용한다면 굳이 소유할 필요가 있을까요? 소유냐 공유냐의 문제에까지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납니다.
지구 생물량을 넘어선 인공물질
_바이츠만 과학연구소에 따르면 2020년부터 인공물의 총 질량이 전체 생물량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했다.
창고업이 성행한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물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2020년 과학 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이스라엘 바이츠만 과학연구소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간이 만든 물질의 무게가 1900년대 초만 해도 자연에 존재하는 동식물을 모두 합친 생물 총량 무게의 3%였다고 해요. 이 무게는 2000년이 되면서 생물 총량 무게의 절반에 이릅니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2020년에는 생물 총량
과 무게가 같아졌어요. 인간이 만들어낸 물질이 불과 20년 만에 2배가 된 거지요. 오차를 감안하면 대략 2014년에서 2026년 가운데 어디쯤에서 인공물이 자연물의 무게를 넘어섰을 거라는 겁니다. 가히 ‘거대한 가속’이라 명명할 만합니다.
그동안 생산한 도로, 집, 쇼핑몰, 자동차, 종이, 의류, 커피잔, 스마트폰, 그리고 우리 일상을 받쳐주는 여러 인프라의 무게를 모두 합치면 1조 1,000억 톤쯤 된다고 해요. 이 무게는 지구에 사는 동식물, 균류와 박테리아를 비롯한 모든 생명의 무게를 합친 것과 같다고 합니다. 인공물 가운데 절반이 콘크리트, 나머지 절반의 대부분은 자갈 같은 골재이고요. 그 밖에 인공물로 벽돌, 아스팔트, 금속, 그리고 플라스틱이 있어요. 결국 무언가를 짓고 건설하느라 쓰인 것들이 인공물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거지요. 물론 무게를 비교했을 때의 얘깁니다. 이 인공물에 폐기물은 포함되지 않았는데, 폐기물까지 포함시킨다면 2013년에 이미 인공물이 글로벌 바이오매스 무게를 초과했을 거라고 해요. 굳이 이런 연구 결과를 보지 않더라도 우리는 넘쳐나는 물건의 홍수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미 공급은 수요를 넘어선 지 오래지만, 공급을 멈추지 않으니 과잉 생산한 것들이 쌓이고 쌓여 남은 물건을 처리하려 아울렛 매장이 생기고 블랙 프라이데이가 생겼습니다.
블랙 프라이데이의 단면
_블랙 프라이데이는 물건을 싸게 살 수 있기도 하지만, 불필요한 소비를 부추기기도 한다.
추수감사절 다음 날부터 크리스마스까지 이어지는 쇼핑 시 즌인 블랙 프라이데이는 한 해를 마감하면서 그동안 쌓인 물건을 팔아 재고 비용 부담을 낮추고 한 해 매출 목표를 달성하려는 기업의 전략입니다. 미국에서 시작된 연중 가장 큰 규모의 쇼핑 시즌이지요. 이때 큰 폭으로 할인을 하면서 소비자를 불러들입니다. 소매업의 경우 이때 1년 매출의 70% 가까이 거두어들이기도 한다고 해요. 블랙 프라이데이가 이제는 전 세계적인 유행이 되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최근 들어서는 해외 직구가 활발해지면서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범위가 지구 전체로 확장되었습니다.
물건은 넘쳐나고 거기다 싸게 살 기회마저 생기니 블랙 프라이데이는 축복인 걸까요? 왕창 할인해서 파니 굳이 필요하지 않아도 왠지 안 사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은 불안감도 들고, 당장 필요는 없어도 있으면 좋을 것 같은 복합적인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고민하게 된다면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은 어떤가요? 추수감사절 다음 날은 블랙 프라이데이지만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이기도 합니다. 1992년 캐나다 광고인이던 테드 데이브가 자신이 만든 광고로 사람들이 끊임없이 뭔가를 소비하도록 부추긴다는 자각에서 만든 날입니다. 광고는 없던 필요를 만들어 소비하도록 부추깁니다.
아침에 눈을 떠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광고의 홍수에서 벗어나기란 어렵습니다. 소비의 문제점을 알고 있어도 당장 갖고 싶은 물건을 싸게 판다면 유혹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지요. 이런 우리의 소비 습관이 지구를 박박 긁어 써버리고 결국 ‘생명의 끝’에 이르게 된다고 독일 빈 소재의 사회생태학연구소의 프리돌린 크라우스만은 이야기합니다.
소비 습관을 바꿀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
_‘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 캠페인에 참가한 사람들은 마트에서 그저 물건을 구경하거나 신용 카드를 자르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물건을 구매하면 그 행복감이 얼마나 가던가요? 키마 카길은 ‘과식의 심리학’에서 “충돌과 사치를 부추기며 자기 절제와 절약 의지를 꺾는 소비자 중심 자본주의 사회가 ‘텅 빈 자아’를 만들어냈고 ‘텅 빈 자아’가 소비자 중심 자본주의에 내장돼 있다”라고 했습니다. 텅 빈 자아를 채워줄 물건을 욕망하지만 끝내 채워질 수 없다는 게 이 소비자 중심 자본주의의 핵심입니다. 자본은 소비가 우리의 불행을 해결해줄 거라고 환상을 심어줄 따름이니까요. 소비하는 것뿐만 아니라 공짜로 주는 물건 역시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쿨하게 거절해보세요. 마음이 허전해서 뭔가를 사고 싶다면 일단 밖으로 나와 걸으세요. 걸으면서 왜 사고 싶은 마음이 드는지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자신에게 계속 묻다가 만나게 될 텅 빈 자아를 꼭 안아주세요. 명상이 혹시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을 늘려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