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시간이 흐를수록 빛나는 가치
나주 소반
국가무형문화재 제99호 김춘식

사진 제공_ 나주반 전수교육관

 

어린 시절 온 가족이 둘러앉아 밥 먹을 때 늘 사용하던 소반. 우리의 생활 문화를 그대로 담고 있는 소반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67년 동안 우리의 전통문화를 복원하며 전승하고 있는 김춘식 소반장의 장인 정신을 만나본다.

 

민족 생활양식에 밀접한 소반

탄생 100일을 축하하는 돌상, 혼인 후 첫날 밤에 쓰이는 합환상, 제사를 위해 쓰이는 제사상. 상은 우리의 삶 전반에 밀접하게 연결된 전통 가구이다. 고구려 시대 무용총 벽화에서도 찾을 수 있는 만큼, 우리나라에서는 오래전부터 소반을 사용해왔다. 안채와 부엌이 분리돼 있는 생활방식 때문에 음식을 실어 나를 수 있는 소반이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문화가 만들어졌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유교의 영향으로 독상 문화가 발달하면서 소반 제작이 활발해졌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부엌이 실내로 들어오게 되었고, 식탁이 등장하며 자연스럽게 소반은 일상 필수품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해주반, 통영반, 나주반을 모두 볼 수 있다. 해주반은 다리가 사각으로 되어 있으며, 통영반은 다리가 상판과 직결되어 있어 아주 튼튼하다. 나주반은 상판에 변죽을 돌려 물고 있고, 다리가 운각에 끼워져 연결이 튼튼하다. 운각1)은 곡선을 채용하되, 단순하고 담백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1) 소반의 천판을 받쳐주고 다리와 다리 사이를 고정시키는 구름·풀 무늬 모양의 판

 


_
김춘식 소반장이 소반을 제작하는 모습

 

전통 기법을 그대로 재현하는 나주 소반

나주는 예부터 여러 종류의 나무가 많아 다양한 재질의 나무를 찾을 수 있었다. 소반은 하루 세끼 음식을 올리고, 닦아내야 하기에 나무의 특성을 알고 소반으로 알맞은 나무를 찾아야 한다. 수분이 남아 있으면 변형이 일어나 쓸 수 없기 때문에 소반 제작에서 첫 번째로 중요한 단계는 제재소에서 자른 나무가 뒤틀리지 않도록 건조하는 것이다. 최소 3년 이상은 지나야 비로소 쓸 수 있는 목재가 된다. 소반은 크게 그릇을 올려놓는 상판과 변죽, 네 개의 다리, 운각, 가락지로 이뤄져 있다. 특히 상판과 다리를 연결하는 운각은 다리 힘을 분산시켜주는 효과와 더불어 조각 장식을 넣어 조형미를 한껏 올려준다.

소반은 상판부터 만들기 시작한다. 상판으로는 가볍고 뒤틀림이 적어 흠이 잘 나지않는 은행나무를 사용한다. 소반에서 상판이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기 때문에 흠이 나 있는지, 옹이가 있는지, 갈라져 있는지를 잘 따져야 한다. 보통 지름 45cm는 확보가 되어야 해서 나무토막 하나를 기준으로 40%밖에 쓸 수가 없다.

목재를 고른 뒤에는 대패질로 상판을 곱게 다듬고, 치수에 맞게 모서리를 만든다. 나주반의 모서리는 변죽과 운각 다리를 한데 연결하는 핵심 부분이기 때문에 치수에 꼭 맞춰 반듯하게 재단해야 제대로 균형을 잡을 수 있다.

상판 제작이 끝나면 운각을 조각한다. 장식하지 않는 나주반도 운각에는 문양을 새겨 넣는데, 수작업으로 해야만 운각의 아름다움과 입체감을 살릴 수 있다. 운각이 완성되면 상판 아래에 연결한다. 이때 운각을 휘어지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조금 심심할 수 있는 나주반에 아름다움을 더하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운각의 높이를 낮게 만듦으로써 들기 편하게 제작, 소반을 주로 사용하는 여인들을 배려하였다. 견고함을 더하기 위해 상판 변죽 운각을 한데 잇도록 대나무 못을 대각선으로 박는다. 소반 하나당 약 40여 개의 대나무 못을 사용함에도 대각선으로 쳐주어 상판에는 못 자국이 전혀 남지 않고 깔끔하다.

마지막으로 조립이 끝난 소반은 먹어도 해가 없는 옻칠 과정을 거친다. 옻칠하고 말리고 사포질하는 과정을 여덟 번 반복하는 데 거의 한 달이 걸린다. 그래야 비로소, 나뭇결이 오롯이 살아있는 나주반이 탄생한다.

 _운각은 철저히 손으로 다듬어야 전통 그대로의 멋이 살아난다

 

탁본으로 복원한 전통 문양, 운각

나주반의 특별함은 변죽에서 찾아볼 수 있다. 상판의 가장자리를 지칭하는 변죽은 통판을 그대로 파내는 것이 아니라 별도로 제작하여 끼워 붙이는 것인데, 조선 시대 말 소반을 대량 생산하면서부터 시작된 나주반만의 변죽 기법이다. 제작이 간편하고 나무를 절약할 수 있어 다른 지역에서 응용해 쓰기도 했다. 소반장 김춘식은 작은 상 하나에 담긴 수많은 비법을 알아내기 위해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변죽과 운각, 가락지의 비례감을 찾기 위해 연구할 과제가 많았다고 한다.

“단절된 나주 소반의 제작 기법, 재료에 대한 자료를 찾아 복원해서 만들고 계셨어요. 남아있는 우수한 명품 소반을 보여드리면 그것을 그대로 그 비례를 맞추고 감각을 재현해내셨습니다. 조선시대 기법을 수공예로 재현하셨기 때문에, 전통 기법이 그대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소반 연구가 나선화)

김춘식 소반장은 나주반의 원형을 찾기 위해 가방에 항상 먹지를 가지고 다니며 언제 어디서든 탁본할 수 있도록 준비해 전국을 돌아다녔다. 특이한 문양은 눈으로 보고, 탁본하여 복원시킨다. 원형이 남아있다는 소식이 들리면 천리를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 문양을 탁본하고 혹시나 잊을까 밤을 새우며 재현해 보았다.

끊임없이 연구하고 보러 다니는, 남다른 열정과 탐구 정신이 지금까지 나주 소반을 이어오게 한 힘이 되었다. 그렇게 해서 김춘식 소반장이 찾아낸 나주반 운각은 총 25여 개. 김춘식 소반장은 상 만드는 전통 기법을 변화시키지 않고, 전통 기술이 앞으로도 전수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_
김영민. 완자호족반 느티나무-옻칠 48-48-30cm

 

우리가 사랑해야 할 전통문화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나주를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는 김춘식 소반장. 학창시절 친구들은 학교에 갈 때 나무를 하러 산에 올라가야 했다. 남들 넥타이 매고 다닐 때 까만 작업복을 입고, 남이 멋진 구두 신고 다닐 때 검정 고무신을 신고 손수레를 끌고 시내를 활보하고 다니며 상을 수리하며 그 만의 기술을 축척해갔다.

어려운 가정 형편, 좌절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도 김춘식 소반장은 전통문화 복원이라는 어려운 길을 선택했다. 그 기술을 인정받아 1986년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4호 소반장으로, 2014년에는 국가무형문화재 제99호 소반장 김춘식이 되었다. 나주반 전승교육관에서 끊임없이 소반을 연구하는 그의 뒤를, 아들 김영민 씨가 계승하고 있다. 대학교에 다니면서도 소반 제작을 한 그는 벌써 25년이 훨씬 넘는 세월동안 묵묵히 장인의 뒤를 따랐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군더더기를 다 쳐내기 때문에 더 세련되고 현대적인 상을 만든다는 이들자의 나주 소반은 간결하면서도 멋스럽다. 이제 김춘식 소반장의 바람은 많은 사람에게 전통을 알리는 것이다.

“전통문화가 됐든 전통 공예가 됐든 전통소리가 됐든 우리 민족이 사랑해주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어요. 사랑해주고 아껴주어야 예술이 꽃피는 법입니다.”


_김춘식.죽절완자반 43-33-27 느티나무, 오칠


 
 _김춘식. 호족반 은행나무, 옻칠36-3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