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쌀한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연말에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이 농익은 기교와 성숙한 음악성으로 우리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어줄 예정이다. 이젠 젊은 거장에서 대가로 성장한 사라 장의 음악 세계 속으로 들어가 본다.
천진난만한 소녀의 ‘신동’ 시절
요즘 한국의 젊은 클래식 연주자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피아니스트 조성진, 임윤찬,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등 많은 젊은 연주자들이 세계 유수 콩쿠르 석권하고 국내외에서 공연을 하면 금방 표가 매진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이보다 앞선 30여 년 전 세계 클래식 음악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신동이 있으니 바로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이다. 4세에 바이올린을 시작한 사라 장은 6세에 줄리어드 예비학교에 전액장학생으로 입학, 8세인 1990년 주빈 메타가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과의 데뷔 무대를 가져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아버지를 따라 갔다가 미국 최고의 음악학교 중 하나로 손꼽히는 줄리어드 예비학교에 들어가게 된 여섯살의 사라 장은 그 때를 이렇게 기억한다.
“학교를 다니면서 가장 좋았던 기억은 2층 벽면을 가득 채운 수많은 자판기에서 먹고 싶은 간식을 마음껏 사먹을 수 있도록 어머니가 용돈을 주셨던 것이에요.”
9세 때 EMI와 계약을 맺고 녹음한 <데뷔> 앨범에서 이 천진난만한 소녀는 자신의 나이를 훌쩍 뛰어넘는 성숙한 음악을 들려주었다. 기술적인 면에서도 흠 잡을 데 없었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에 맞게 톤과 완급을 조절하는 능력이 완벽해서 더 놀라웠다. 특히 조지 거슈윈의 ‘It ain’t necessarily so’에서 들려준 흥겨운 싱코페이션 리듬은 듣는 이들을 황홀한 행복감에 젖게 했다.
천재보다는 좋은 음악가 되고 싶었다
그렇게 어렸을 때부터 세계를 누비며 바쁘게 활동한 사라 장은 베를린 필, 빈 필, 뉴욕 필하모닉, 시카고 심포니 등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했으며 아이작 스턴, 요요마 등 수많은 거장들과 함께 호흡을 맞춰왔다. 커리어가 쌓여갈수록 사라 장 앞에 붙는 수식어는 점점 더 화려해졌다. 미 ‘뉴스위크’지 선정 금세기 10大 천재, 세계 경제 포럼 선정 ‘영 글로벌 리더’ 등의 칭호와 더불어 수상 경력도 어마어마하다.
큰 상으로는 에버리 피셔 상, 그라모폰의 ‘올해의 젊은 음악가상’, 독일의 ‘에코 음반상’, 이탈리아 시에나의 ‘국제 키지아나 음악아카데미상’ 등이 있다. 그러나 20대 후반이 되면서부터는 늘 그를 따라 다녔던 ‘신동’, ‘어린 거장’이란 수식어는 자취를 감췄다.
“그런 수식어가 사라지니 좋아요. 너무 어릴 때 시작해서 ‘천재소녀’라는 이야길 많이 들었는데 그런 수식어가 싫었어요. 나이가 아니라 좋은 음악가로서 윤기 나는 연주를 들려주고 싶을 뿐입니다.”
그런 바람에 따라 사라 장의 음악은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더 무르익어갔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청중들은 그의 음악에서 완벽한 기교보다는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솔하고 깊이 있는 정서를 포착하고 한층 더 뭉클한 감동을 느끼게 됐다.
인생에 대한 통찰이 더욱 깊어지다
사라 장의 그러한 음악적 변화를 잘 느끼게 해주는 음반이 바로 2009년 그의 20번째 EMI 음반으로 지휘자 쿠르트 마주어와 드레스덴 필하모닉 협연으로 녹음한 <브람스 및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클래식 음악 중에서도 브람스의 음악은 어릴 때보다는 중년 이상의 나이에 들었을 때 더욱 절절한 감동으로 다가온다고 한다. 그만큼 연주자에게도 인생과 음악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 필요한 작품이라 사라 장의 브람스에의 도전은 더욱 특별한 반환점으로 다가왔다. 또한 2007년에 발매한 비발디의 <사계> 앨범은 발매 후 국제적인 찬사를 이끌어냈는데, BBC 뮤직 매거진이 “그녀의 음반 중 이보다 더 훌륭한 음반은 없었다.”라고 평한 바 있다.
“비발디는 연주하면서 좀 많이 꾸미는 편이에요. 그런데 레코딩에 들어가서는 다 뺐어요. 심플하게 하고 싶었거든요. 비발디는 악보에 연주 지시를 별로 쓰지 않았어요. 아티스트 공간을 남겨준 거지요. 스코어 자체에 가깝게 가려고 노력했어요.”
이 <사계> 앨범은 그가 데뷔 15년 만에 낸 첫 바로크 앨범으로, 지금까지도 꾸준한 인기를 자랑하고 있다. 그리고 오는 12월 18일 부산의 청중들은 부산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사라 장 & 비르투오지’ 공연을 통해 사라 장이 들려주는 <사계>의 향연을 즐길 수 있게 됐다.
천부적이고 변함없는 음악에의 열정
이번 공연은 사라 장의 솔로, 합주, 협주 등 다양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흥미롭지만, 이제 ‘신동’에서 어느덧 ‘대가’로 성장한 그녀가 한국의 후배들을 이끌며 공연하는 무대이기에 더욱 감회가 새롭다. 바이올리니스트 장유진, 비올리스트 이한나, 첼리스트 심준호, 더블베이시스트 성민제 등 한국을 대표하는 솔리스트들로 이루어진 체임버 앙상블이 사라 장과 함께한 무대에 오른다. <사계> 외에도 비탈리의 <샤콘느 g단조>, 바흐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D장조, BWV1043> 등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바로크 음악의 명곡들이 대거 포진되어 있어 연말을 앞두고 콘서트홀을 찾는 관객들에게 훈훈한 서정으로 잊지 못할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8세의 사라 장을 콘서트 무대에 데뷔시킨 명 지휘자 주빈 메타는 그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완벽한 테크닉, 뛰어난 곡 해석 능력은 그녀를 천재의 반열에 들게 했다. 그러나 나는 천재라는 말만으로 그녀를 표현하는 데에는 뭔가 부족함을 느낀다. 그녀는 남다른 독특함을 가지고 있다. 바로 열정이다. 이것은 학습이나 노력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주빈 메타의 말처럼 사라 장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음악에의 열정으로 청중들을 사로잡고 오랫동안 그의 음악이 주는 여운에 휩싸이게 한다. 나중에 한참 더 나이가 들면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와 파르티타>의 레코딩에도 도전하고 싶다는 사라 장. 젊은 거장이라는 칭호를 벗고 이제는 명실상부 클래식 음악계의 대가로 우뚝 서고 있다.
“사라 장은 내가 들어본 가장 뛰어나고 완벽한, 최고의 이상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이다.” - 故 예후디 메뉴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