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제공_ 조명박물관
한복의 우아함을 보여주는 노리개부터 국악기와 실내 장식까지. 예부터 매듭은 우리 삶 속에서 늘 함께해왔다. 60여 년 동안 매듭에 인생 전부를 바쳐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매듭의 새로운 세계를 연 국가무형문화재 故 김희진 매듭장의 장신 정신을 되새겨본다.
균형과 질서, 절제를 더한 생동감
매듭장이란 여러 가닥의 실을 짜서 만든 전통 끈인 끈목을 이용하여 여러 종류의 매듭을 짓고, 술을 만드는 기술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우리 전통공예의 한 분야인 매듭은 조선 시대에 용도가 점차 다양해지며 생활 곳곳에 장식용으로 쓰였고, 조선 후기에는 궁중과 상류 사회뿐만 아니라 평민에까지 대중화되었다.
김희진 매듭장의 매듭 정신은 균형과 질서의 미학, 절제미가 보태져 완벽을 추구한다. 촘촘하게 짜인 구성에 균형미까지 갖춘 그의 작품은 빈틈없으면서도 매듭의 문양 하나하나가 마치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넘쳐흐르는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손끝에서 시작되어 맺기까지

_매듭장 김희진, 사진출처 _ 공공누리
김희진 매듭장이 매듭을 할수록 더 큰 매력을 느꼈던 이유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걸 스스로 창조하기 때문이었다. 매듭 공정은 정련-염색-다회-매듭의 과정이 있는데 조선시대에는 각 단계별 장인이 있었으나, 현대는 매듭장이 정련부터 매듭까지 모든 과정을 총망라한다.
공정의 첫 단계는 고운 색깔의 실을 얻는 것부터 시작된다. 염색은 장인의 색채감각을 드러내는 매우 중요한 공정 과정이기 때문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염색을 위해 명주실을 다듬고, 색이 잘 스며들도록 비눗물에 명주실을 적셔야 한다. 적당한 온도의 물에 염료를 넣고 염료의 양을 조금씩 늘려가며 여러 번 염색해야 색이 뭉치지 않는다. 염색한 명주실은 통풍이 잘되는 그늘에 늘어놓기 전, 중간중간 실을 탁탁 털어줘야 실에 윤이 흐르고 빛깔이 좋다. 골고루 털어 말리고, 다시 털어 말리는 과정에서 명주실의 윤기가 살아나고 말갛고 투명한 빛깔이 깨어난다. 이런 수고로운 과정을 거쳐야 순백의 실은 비로소 고운 빛깔을 품는다.
명주실을 합사한 후 오른쪽 왼쪽으로 방향을 바꿔가며 수차례 꼬는 과정을 거치면 비로소 매듭을 맺기 위한 실이 완성된다. 굵게 하려면 이러한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매듭장이 어떤 매듭을 할 것인지에 따라 끈목의 굵기와 모양을 다르게 하는데, 다양한 질감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다회틀이라는 독특한 기구를 이용한다. 한 땀 한 땀 짜져 있는 걸 눈이라 하는데, 한 치의 빈틈없이 끈을 짜 또렷이 살아있는 눈이야말로 매듭의 문양을 또렷하게 해 매듭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기도 한다.
38가지 전통 매듭 문양의 복원

_김희진, <기원>
김희진 매듭장은 1934년 황해도 해주 태생으로, 한 신문사에 연재된 문화재 관련 기사를 보고 어떤 도구 없이 오직 손으로만 완성 짓는 매듭에 매료되었다. 1963년 그는 초대 국가무형문화재 매듭장 보유자인 정연수 선생에 매듭 공예 기술을 사사 받은 이래 끊기다시피한 전통 매듭의 맥을 평생에 걸쳐 이었다. 그 당시 정연수 선생의 작업은 상여에 다는 대봉유소(상여의 네 귀에 늘어뜨리는 큰 매듭술)와 소봉유소(상여의 네 귀 맨 위 둘레의 늘어뜨리는 매듭술)의 강렬한 색실들이 매혹적이었다고 한다.
어느 날 인사동에서 산 안경집에 달린 매듭을 맺는 방법을 스승에게 물었으나 답을 얻지 못해, 심칠암 선생을 찾아갔다. 매듭 하나도 지역마다, 스승마다 방법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안 그는 전국에 흩어져 있는 장인을 찾아 나섰다. 당시 20대 미혼 여성이 매듭을 배우러 지방에 다니니 사람들의 시선이 따가웠지만, 매듭을 향한 열정 하나로 힘든 줄 모르고 새로운 스승을 만나러 전국을 누볐다. 그가 각지의 장인들에게 매듭을 배우고 2년이 지나자 장인들이 한두 분씩 돌아가셨다. 더 늦었더라면, 그 매듭의 기법들은 지금까지 전해질 수 없었다. 그가 복원해 낸 매듭 문양은 총 38가지로, 우리나라 전통 기본형 매듭이다.
“풀어본다고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맺는 방법이 그림이나 글로 표현된 것도 없고, 그야말로 이 매듭의 기법은 손끝에서 손끝으로 이어지고 매듭의 명칭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옵니다.” _ 故 김희진 매듭장
독창적인 기법으로 재해석한 전통

_<가리개>, 사진출처 _ 공공누리
김희진 매듭장은 생전 총 43회 이상의 전시회를 열었고, 1974년 제1회 개인전, 1994년 카이로 공예박물관 초대전, 2007년 각 분야 최고의 명인이 모인 제4대 국새 제작에서도 매듭 장식을 담당했다. 공로를 인정받아 2010년에는 은관문화훈장을 수상하기도 하는 등 명실공히 우리나라 최고의 매듭장인으로 매듭 전통의 복원과 아름다움을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작품을 만들 때 그가 가장 신경 쓰는 것은 색채감이다. 전문가들이 가장 뛰어나다고 인정하는 그의 색채감은 색깔이 화려하면서도 그 농도가 진하지 않아 우아하며 품위가 느껴진다. 각기 다른 다양한 색을 활용한 것은 어울림이 최고 덕목이었던 옛 선조들의 정신을 다양한 색채를 통해 표현한 것이다.
김희진 매듭장이 매듭 공부를 위해 즐겨보는 것이 바로 옛 문헌이었다. 문헌에 남아 있는 매듭에 대한 기록을 찾기 위해 본 <악학궤범>은 조선시대 궁중에서 연주하던 악기에 대한 설명과 그림이 그러져 있는 음악 서적이다. 그 책에서 조선시대 궁중에서 연주하던 국악기에 매듭장식(유소)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소(簫), 박(拍), 해금(奚琴), 운라(雲鑼)를 포함한 총 다섯 개의 악기에 사라진 유소를 복원하여 찾아주었다. 이 밖에도 신윤복의 미인도 속 삼천주 노리개, 조선시대 문인 이재의 초상화 속 오방색 광다회를 자신만의 감각으로 재해석해 재현하였다.
“현대의 기술과 감각으로 매듭을 재현한 것이 진짜 전승입니다. 정형화된 그러나 전해져 내려오지 않던 선비의 끈과 흉대에 해 놓은 매듭 끈을 완전히 독창적인 상상력과 기법으로 재현시킨 것은 이미 창작품입니다.” _ 故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시간의 흐름에 예술성을 더하다

_김희진 매듭장이 매듭을 맺고 있다, 사진출처 _ 공공누리
“매듭에는 역행하는 예가 없습니다. 반드시 길을 따라서 가야 합니다.” 이런 유훈을 남긴 김희진 매듭장은 매듭 전수회를 설립하여 기법을 전수하고 대중과 공유하는 발전적인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애썼다. 올해로 43주년을 맞이한 전수회는 생전 그의 기술과 정신을 여전히 전승하고 있다.
2010년에는 <빛과 매듭 하나되다> 작품 전시회를 통해 ‘유니버스(UNIVERSE)1,2’, ‘매화도 피었네’, ‘기원’ 등 매듭과 빛을 재료로 전통미와 현대미를 융합한 작품을 선보였다. 새로운 소재와의 접목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김희진 매듭장은 작품을 통해 매듭의 현대적인 예술성의 면모를 가감없이 발휘했다.
영원히 사라질 뻔한 전통의 매듭 기법을 재현하고 60여 년 동안 그 맥을 이은 김희진 매듭장. 매듭에 대한 열정과 끊임없는 노력으로 매듭의 격조를 높인 그의 작품은 오늘도 여전히 현대와 전통의 아름다운 소통을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