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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잊지 못할 향기 이야기

우리 삶은 향기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다양한 인생 역정을 스크린 위에 펼쳐내는 영화에서도 향기는 중요한 매개체로 등장하곤 한다. 

여러 영화 속 향기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어떤 향기로 삶을 아름답게 꾸며나갈 것인지 한번 생각해보자.

 

아름다운 우정을 빚어낸 향기_ <향수 : 파리의 조향사> 


기욤은 이혼한 아내가 데려간 딸의 양육권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이를 위해 안정적인 직업이 필요했던 그는 중년 독신여성인 조향사 발베르그의 운전기사가 되지만, 단 하루 만에 까칠한 성격의 그녀에게 완전히 질리고 만다. 냄새에 대해 트집을 잡는 것은 기본이고, 온갖 잡일을 다 시키질 않나, 소매치기의 위협으로부터 구해줘도 고맙다는 말 대신 차가운 핀잔만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래도 딸을 생각하며 꾹 참고 일해야 했던 기욤. 그러다가 두 사람은 함께 다양한 사건을 겪으며 점차 서로에 대해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알고 보니 발베르그는 과거 명품 브랜드 향수까지 만들 정도로 유명한 조향사였지만 미디어 공포증으로 잠시 후각을 상실, 향수업계에서 추방당한 신세였다. 후각은 다시 돌아왔지만 카펫 방향제 제조, 공장 악취 해결 등의 원하지 않은 일만 하게 돼 삶의 의욕을 잃어갔던 발베르그. 기욤은 참을성을 갖고 이런 그녀를 따뜻하게 대해주었고, 다시 한 번 후각을 잃어 위기에 처한 발베르그가 치료를 받고 재기할 수 있도록 도왔다. 발베르그 또한 기욤이 딸과 관련한 문제로 고민할 때 지혜로운 조언을 들려주었을 뿐 아니라, 그가 조향사의 자질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과 동업을 제안하면서 기욤이 조향사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왔다. 향수를 통해 맺어진 이 우정을 통해 발베르그는 다시 명품 향수 업계에 복귀했고, 기욤은 딸의 양육권을 되찾아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됐다. 

 

삶의 의욕을 일깨운 자연의 향기_<리틀 포레스트>


혜원은 시험, 연애, 취직 등 반복되는 일상에서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어 지쳐버렸다. 각박한 도시 생활을 벗어나 무작정 고향집으로 내려온 그녀는 단조롭지만 사계절의 순리에 따라 살아가는 단순한 시골 생활에 점차 익숙해진다. 또 혜원은 그곳에서 어릴 적 친구 재하와 은숙을 만나 자연에서 나오는 채소와 재료를 캐내어 맛있는 음식과 술을 만들고 같이 먹으며 흩어졌던 자신의 정체성과 자존감을 서서히 회복하게 된다.

이 영화 속에는 잊고 살았던 자연의 향기와, 그 자연에서 얻은 신선한 재료로 만든 음식의 향기가 매혹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시골 풀숲의 향기와 바람, 아카시아 꽃 향기를 머금은 ‘아카시아 꽃 튀김’, 씁쓸한 향과 맛이 입안에 여운을 남기는 ‘머위꽃 된장’ 등을 통해 영화는 정성껏 손수 차린 밥 한 끼의 소중함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준다.

“혜원이가 힘들 때마다 이곳의 흙냄새와 바람과 햇볕을 기억한다면 언제든 다시 털고 일어날 수 있을거라는 걸 엄마는 믿어.” 혜원의 엄마가 보낸 편지에 적힌 이 대사는 많은 사람들이 ‘러스틱 라이프(시골에서의 여유로운 삶)’를 동경하게 만들었다.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만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향기로운 리틀 포레스트가 필요하다.

 

삶의 가치와 행복을 일깨운 향기_ <체리 향기>


이 영화는 자신의 자살을 도와줄 사람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난 한 남자, ‘바디’의 여정을 그린 로드무비이다. 바디가 자살을 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구체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그저 지긋지긋한 삶을 빨리 끝내고 싶었던 그는 길에 서 만난 사람을 언덕으로 데리고 가서 미리 파놓은 구덩이를 보여주며 자신이 그 안에 들어가 있을 테니 다음날 새벽에 와서 흙만 덮어달라고 부탁한다. 그는 수면제를 과다복용하고 구덩이에 들어가 있을 작정이었다. 첫 번째는 가난한 군인을, 두 번째는 이슬람 성직자를 만나서 부탁했지만, 큰 금액의 보수에도 불구하고 그들 모두 자살을 도와줄 수 없다며 거절했다. 마지막으로 만난 한 노인은 딸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그러면서 노인은 자신 또한 젊은 시절 한때 자살을 시도했다가 빨갛게 잘 익은 달콤한 체리를 먹고 난 후 죽음에 대한 생각을 잊어버렸던 일화를 전했다. 노인은 ‘사람은 그렇게 아주 사소한 것으로도 행복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바디는 노인의 말을 듣고 심경에 변화가 생긴 듯했다. 그는 구덩이에 누웠지만 정말 죽고 싶진 않은 것처럼 보였다. 밝은 달을 바라보며 그는 잠들지 않으려 눈을 부릅뜨는데, 영화는 막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