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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디커플링은
어디까지 갈까

글. 최남수 서정대 교수, 전 YTN 대표이사

 

미·중 사이의 패권 경쟁이 심화되면서 전쟁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두 나라는 완전히 등 돌릴 수 없는 공생 관계이므로, 상호 견제하면서 디커플링의 폭이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투키디데스의 함정’ 같은 미·중 

기원전 5세기의 펠로폰네소스 전쟁. 아테네의 부상과 이에 대한 스파르타의 두려움이 부딪치면서 일어난 전쟁이다. 그레이엄 앨리슨은 저서 ‘예정된 전쟁’에서 이처럼 새로 부상하는 세력이 지배 세력을 대체할 정도로 위협적일 경우에 그에 따른 ‘구조적 압력’이 무력 충돌로 이어지는 현상을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고 불렀다. 앨리슨은 이 개념을 현재의 미국과 중국 관계에 적용했다. 그는 “수십 년 안에 미국과 중국 간에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그냥 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지금 인식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높다”라고 섬뜩한 전망을 한다. 

 

정점을 향해가는 패권 경쟁

미·중 두 나라 사이에 전쟁 시나리오까지 거론되고 있는 것은 패권 경쟁이 정점으로 치닫고 있어서이다. 국내총생산(GDP) 규모에서 미국의 70% 수준까지 근접한 중국은 오는 2030년 전후로 미국을 추월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인공지능 등 첨단기술에서도 중국의 추격은 거세다. ‘中國夢’을 꿈꾸는 중국의 부상은 이젠 미국의 견제심리를 극대화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당시부터 시행된 중국제품에 대한 보복 관세는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이어지고 있으며, 중국으로 들어가는 첨단기술의 파이프라인을 봉쇄하려는 미국의 시도는 집요하게 계속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을 우리는 ‘신냉전’ 또는 미·중 간 ‘디커플링’으로 부르고 있다. 실제로 디커플링은 어디까지 가능할 것인가. 먼저 경제의 큰 그림부터 짚어보자. 현재 중국은 미국의 3위 교역 국가다. 미국의 수출상대국 순위에서도 3위(비중 8.6%)에 올라있다. 수입국 랭킹은 1위로 미국 전체 수입 중 17.9%를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양국 교역규모가 축소지향으로 갈 수 있을지는 몰라도 과거 미국과 소련의 관계처럼 무역 거래를 거의 하지 않는 블록화로 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특히 미국 소비자들은 중국에서 들어오는 저가 수입품을 대량 소비하고 있고, 중국 또한 주요 품목의 대미 수입의존도가 70%를 초과하고 있다. 

 

디커플링 속에서 필요한 혜안 

결국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자국이 큰 피해를 보지 않으면서 중국을 강력하게 견제하는 방안이다. 그게 바로 최근 본격화하고 있는 중국과의 ‘기술 디커플링’이다.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때부터 화웨이가 미국 기술을 쓰지 못하도록 ‘기술 거리두기’를 본격화했다. 또 외국인투자위원회가 중국의 미국 기업 인수가 국가안보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심사하는 등 촘촘한 ‘좁은 문’을 가동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한술 더 떠 중국 견제를 아예 법제화하고 있다. 지난 7월 29일 미 의회를 통과한 ‘반도체와 과학법’은 세액공제 등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은 기업에 대해 향후 10년 동안 중국 내 반도체 신설 투자를 금지하고 있다. 이어 8월에 미 의회의 문턱을 넘은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해외의 ‘우려 국가’에서 추출·제조된 광물이 들어있는 배터리를 사용하면 전기차에 대한 세제 혜택을 주지 않기로 함으로써 중국을 공급망에서 배제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     

문제는 미국의 대중국 기술 차단이 지나치면 위기 국면이 표면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데 있다. 레이 달리오는 저서 ‘변화하는 세계질서’에서 “기술전쟁에서 승리한 국가는 군사 전쟁을 비롯한 모든 전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기술전쟁은 무역·경제전쟁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경고한다. 만일 미국이 중국에 공급되는 필수 기술을 차단한다면 무력 전쟁으로 번질 위험이 크게 증가할 것이라고 진단한다. 앞으로 미·중 관계는 ‘투키디데스의 함정’과 기술 공방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할 것으로 보인다. 서로 완전히 등을 돌릴 수 없는 한계 속에서 디커플링의 폭은 더 넓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두 나라가 공생(共生)의 조건인 평화를 깨뜨리는 지경까지 가지 않는 지혜와 자제력을 발휘하기를 주문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