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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식안을 키워주는
보석 같은 국내 미술관

글 이지혜 아트 컬렉터, <나는 미술관에서 투자를 배웠다> 저자 

사진 제공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현대사아카이브(박수근박물관), 양구백자박물관, 벗이미술관, 셔터스톡

 

아트테크에서 필수적인 덕목은 미술품을 보는 안목을 높이는 것이다. 어렵게 전문서적을 통해서 미술을 공부하는 것보다는 국내에서 경치 좋은 곳에 자리한 미술관을 돌아다니며 예술을 감상하며 즐거운 경험을 쌓는 것이 감식안을 키우는 데는 더 효과적일 수 있다. 

 

투박한 돌담벽에서 박수근을 느끼다 


_박수근미술관

옛날 옛적, 병풍에 펼쳐진 산수화를 들여다보며 ‘방구석 유람’을 하는 트렌드가 있었다고 한다. 이를 ‘와유臥遊’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누워서 유람한다’는 뜻이다. 온 세계가 벌써 몇 년 째 ‘사회적 거리두기’를 도돌이표처럼 계속 되풀이하고 있는 지금처럼, ‘와유’는 그 시절 ‘방구석 필드 트립’이었던 셈이다.

여전히 국가 간의 이동은 제한적이고, 아예 몇몇 나라는 ‘코로나 제로’를 외치며 무기한 국경 봉쇄 정책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완벽한 장점’도 없듯, ‘완벽한 단점’도 없다. 제주도 항공권 보다 더 저렴한 해외 항공권 프로모션을 찾는 재미는 없을지라도, 이 기회에 보석 같은 국내 미술관을 찾는다면 그 도시를 기억할 특별한 추억이 생길 것이다.

고요한 자연이 아름다운 강원도 양구. 1박 2일 또는 당일치기로 다녀오기 참 좋은 여행지다. 국토의 정중앙에 위치하여 ‘한반도의 배꼽’이라고도 불리는 양구는 예술의 고장이기도 하다. 언택트 시대의 완벽한 여행지라고 해도 될 만큼 내륙의 오지인 양구와 예술이라니, 언뜻 보기엔 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일 수도 있겠지만 이곳에 ‘박수근미술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 질 것이다. 

2002년 박수근 작가의 생가터에 세워진 미술관의 시작은 서민의 삶을 살고, 서민의 삶을 그려 ‘서민화가’라고도 불렸던 작가의 인생만큼이나 소박했다. 미술관을 짓기는 지었는데 막상 제대로 된 작품이 한 점도 없었던 것이다. 박수근 화백이 작고한 후 그림 값이 천정부지로 올라버린 탓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표작 〈빨래터〉는 2007년 경매에서 45억 원에 낙찰된 적이 있고, 2019년 미술 경매 낙찰 작품의 호당 가격이 2억 4천만 원으로 가장 높아 국내 작가 중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어렵사리 지어진 박수근미술관은 미술계의 저명한 인사들에게 작품을 기증받고 꾸준히 수집한 끝에 양구를 대표하는 하나의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투박한 돌담벽에서 고즈넉함이 느껴지는 미술관의 정취는 작품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조선 백자의 고고한 자태를 감상하다 


_(좌) 백자청화모란문호백자청화나비문호 (중간) 백자청화모란문호 (우) 양구백자박물관

 

그런데 최근 들어 이곳에 코로나19 이전보다도 더 많은 관람객이 방문하고 있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별세한 뒤 일명 ‘이건희 컬렉션’으로 불리는 미술품들을 기증했는데, 이때 박수근미술관이 작가의 원화 18점을 기증받은 것이다. 미술관은 새로 들어온 작품을 기념하며 ‘2021 박수근 미술관 아카이브 특별전’ 전시를 열었다. 이 중에는 특별한 스토리가 담긴 작품들도 여러 점 있다. 작가가 자주 그리던 아기 업은 소녀는 주로 뒷모습이나 옆모습으로 작품에 등장했는데 이번 기증작 중에는 소녀가 평온한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는 작품이 있어 눈길을 끌었다. 해외 경매에 출품된 적 이 있던 작품도 포함됐는데, 이는 해외에 반출된 작품을 삼성가가 다시 사들여 한국으로 들여온 것이다. 

아, 미술 덕후라면 양구에 온 김에 ‘양구백자박물관’ 도 꼭 방문하기를 추천한다. 고려시대 주요 도자기 생산지였던 양구는 지금도 약 40개의 가마터가 남아 있을 만큼 예부터 도자기로 유명했다. 여기서는 백토로 빚어낸 조선 백자의 고고한 자태를 감상할 수 있다.

 

안도 타다오 설계의 전원형 미술관 


_(좌)뮤지엄 산 (우)마크 디 수벨로의 설치미술(뮤지엄 산)

 

제2영동고속도로에서 서원주IC를 빠져나와 10여 분을 달리면, 해발 275미터의 울창한 참나무 숲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골프장과 스키장이 나타난다. 강원도 원주에 위치한 오크밸리 리조트인데, 이곳에는 일본의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국내 유일의 전원형 미술관, ‘뮤지엄 산’이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한국 관광 100선’에도 이름을 올리고, 영국 <파이낸셜 타임즈>가 ‘어디에도 없는 꿈의 뮤지엄’이라고 극찬했다는 그 미술관. 국내 사립 미술관 중 최대 면적을 자랑하는 뮤지엄 산은 리조트와 뮤지엄을 결합시킨 ‘리지엄’ 콘셉트로 편안하고 여유로운 여가와 문화생활을 즐기며 힐링할 수 있는 공간이다. 

뮤지엄 산은 2019년 작고한 이인희 전 한솔그룹 고문이 평생 동안 수집한 300여 점의 컬렉션이 전시된 청조갤러리와 전주에 있는 한솔그룹의 종이 박물관을 닮은 페이퍼갤러리로 나뉜다. 청조갤러리는 비디오아트의 거장 백남준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백남준홀을 포함해 김환기, 박수근, 김창열 등 거장의 작품이 1년 주기로 번갈아 전시된다. 미술관 내 가장 깊숙한 곳에는 명상관이 있다. ‘싱잉볼 침묵 명상’, ‘자연 명상’ 등의 다양한 명상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사색의 시간을 제공하는 공간이다. 미술관 소장전과 기획전, 그리고 명상을 통해 도심을 벗어난 관람객의 휴식을 도모한다. 이 미술관의 가장 큰 자랑은 ‘제임스 터렐’관이다. ‘빛의 마술사’라고도 불리는 제임스 터렐은 빛을 매개체로 사색과 명상을 표현한 미국의 설치미술가다. 건물을 캔버스 삼아 빛을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며 그려지는 색채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다 보면 컬러 테라피를 하듯 우리의 몸 전체가 감각적으로 일깨워진다.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미술 체험 


_갤러리 
벗이

영동고속도로를 달리다 양지IC에서 나오면 1분 거리에 있는 ‘벗이미술관’은 아시아 최초의 ‘아트 브뤼(art brut)’ 미술관이다. 가공되지 않은, 원시 그 자체의 미술을 뜻하는 아트 브뤼는 소외계층이나 장애인, 아동, 비전문가 등이 예술 활동에 대한 목적이나 자각을 없이 그려내는 작품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취지에 따라 미술관 설계 당시부터 장애인과 노약자의 관람 장벽을 낮춘 ‘배리어 프리’ 건축을 도입한 것도 특징이다. 기존 아트 브뤼 작가뿐 아니라 신진작가 발굴과 양성을 위해서도 힘쓰고 있으며, 미술관이 지원하는 작가들의 전시를 포함, 다채로운 테마로 전시를 열고 있다. 

경기도 남부에 밀집한 주거단지와의 뛰어난 접근성을 살려, 벗이미술관은 가족 단위 방문객과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 역시 다양하게 진행하고 있다. 미술관을 방문한 어린이들은 창작의 주체가 되어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활동을 통해 미술을 보다 친밀하게 경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