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시인 유재영은 ‘다 못 쓴 시’에서 가을날 밤하늘에 ‘금 긋고 가는 별똥별’의 찬연한 모습을 ‘은입사’에 비유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78호 입사장 홍정실 선생의 작품을 통해 점과 선, 면이 함께 어우러져 섬세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우리 전통 금속공예의 꽃, 입사를 만나본다.
삼국시대부터 전래된 우수한 기술
_홍정실, <침묵의 상징 (뒤)>
‘입사’란 금속의 표면에 홈을 파고 금이나 은으로 만들어진 실이나 판을 박아 넣어 점, 선, 무늬 등을 장식하는 공예 기법을 말한다. 이러한 입사 기술을 가진 사람을 ‘입사장(入絲匠)’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가장 오래된 입사 유물은 현재 일본 이소노카미(石上) 신궁에 보관되어 있는 백제시대의 칠지도이며, 국내 유물로는 충남 천안 화성리에서 출토된 4세기 후반의 백제 철제은입사고리자루칼이 있다.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시대에는 향완, 정병 등과 같은 불교용품을 중심으로 입사 기술이 더욱 발전하였고,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궁중 용품은 물론 그릇, 화로, 촛대 등에도 입사가 활용될 정도로 생활 속에 더욱 깊이 자리 잡게 되었다. 우리 전통 입사 유물을 살펴보면, 점과 선, 면이 함께 어우러져 매우 섬세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다.
전통 입사공예의 맥을 이은 인물
_김선정, 김문정, <조선왕실어보의 보통, 보록, 쇄약시> - 보록 33 × 22.5 × 22.5cm - 보통 15 × 15 × 15cm - 순금, 순은, 황동, 철, 어피, 나무, 옻칠, 입사기법
이러한 입사는 19세기까지 조선의 대표적인 금속공예로서 민간에서 널리 사랑을 받았다. 구한말에는 외국인들이 우리 입사 공예품에 매료되어 이를 수집하는 일도 잦았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왕조의 몰락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의 전통 입사 공예는 거의 사장될 위기에 처했다. 끊어져가던 전통 입사 공예의 맥을 오늘날 다시 되살리는 데 크게 기여한 이가 바로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78호인 입사장 홍정실 선생이다.
홍정실 선생은 1947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아름다운 것을 보면 그것을 가지거나 배우고 싶은 열망이 가득했던 선생은 1965년에 입학한 서울여대 공예학과에 권길중 교수의 권유로 금속공예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1974년 우연히 읽게 된 <인간문화재>(예용해 저)라는 책에서 입사의 맥이 끊어졌다는 내용을 읽고 자신이 그 맥을 잇는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박물관, 갤러리, 인사동, 장한평 고미술거리 등을 드나들며 입사공예 작품이나 유물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전국을 돌며 찾은 입사 스승
_마치(소형 망치)로 입사 작업을 하고 있는 홍정실 입사장
홍정실 선생은 인사동 인사동 고미술품점에서 처음 입사공예 작품을 봤을 때의 기억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숨이 막힐 정도로 너무 아름다웠어요. 잠을 못 잘 정도로 매료됐어요. 하지만 누구도 그것을 만드는 방법을 몰랐어요. 그래도 어디엔가는 그것을 만들 수 있는 장인이 살아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찾기 시작했죠.”
그는 맥이 끊어진 입사기법을 전수받기 위해 여러 곳을 수소문한 끝에 7년 만에 당시 조선시대 마지막 경공장이었던 이학응 선생을 만났다. 당시 이학응 선생은 78세의 고령으로 이미 입사 작업을 그만 둔 상태였지만 전통 입사 기법을 전수받겠다고 찾아온 홍정실 선생의 열의를 기특하게 여겨 가족처럼 따뜻하게 대해주며 성심을 다해 가르쳐주셨다고 한다.
또한 홍정실 선생은 전통 입사 기법의 보전과 전승을 위해서 입사에 관련된 방대한 자료를 찾아서 정리하고 스승의 기록을 모아 문화재관리국에 제출했다. 마침내 스승이 초대 입사장 기능보유자로 지정됐다. 1988년 이학응 선생이 노환으로 별세한 뒤 홍정실 선생이 그 자리를 계승했다.
_홍정실, <철제금은입사문자문향로> - 20.7 × 19.5 × 19.5 cm - 순금, 청금, 순은, 황동, 철, 옻칠, 입사기법
창조를 위해선 전통을 제대로 배워야
_홍정실, 다정(多情) - ∅48cm, 순금, 순은, 철, 옻칠, 입사기법
우리나라 전통 입사는 금속 표면에 홈을 파거나 쪼아서 그 위에 금속선이나 금속판을 박아 무늬를 만드는 기술로, 두 금속을 땜질 없이 붙여야 한다. 그래서 한층 더 세밀한 기술이 필요하다. 금이 귀해서 주로 은으로 장식했기 때문에 ‘은실박이’라고도 불렸다.
은실박이에는 쪼음질을 하고 은실을 박는 데 독특한 모양의 정과 마치가 필요하다. 홍정실 선생은 공예기술뿐 아니라 서양 공구와 기법에만 의존하는 교육 풍토를 바로잡기 위해 전통 장인의 공구를 수집하고 정리했다. 전통 연장 대신 편리함을 좇다 보면 창조적인 작품을 만들기 어렵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또한 선생은 입사기술을 후학들에게 가르치는 일에도 힘써 왔다. 1995년에는 전수생들을 집중적으로 가르칠만한 공간이 필요해져 ‘길금공예연구소’(현재 국가무형문화재전수교육관으로 이전)를 설립했다. 길금공예연구소에서 입사기술을 배운 이들은 대학교수, 강사, 디자이너로서 작품제작과 전시 등 활발한 작품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대적 시각으로 재탄생한 입사
_ 홍정실, <하늘빛을 품고> - 60 × 32 × 60cm - 순금, 순은, 청동, 철, 나전, 유리, 옻칠 - 입사기법(유리작품: 김기라)
홍정실 선생은 “전통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강조한다. 과거의 유물을 모방하는 게 아니라 현대적 시각으로 재해석해 오늘날 감각에 맞게 재탄생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통의 재현뿐 아니라 현대에 접합시키는 시도도 끊임없이 해왔다.
“전통적 입사 공예는 쓰임을 가지고 있는 사물에 장식적으로 사용됐다면, 저는 기물의 실용적 가치를 넘어 만든 이의 정신세계를 전달하는 자유로운 표현 매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빛, 시간의 흐름, 자연 등 제가 의미를 두고 있는 주제를 표현하며 창의적인 변화를 시도해왔습니다.”
이와 같은 노력 덕분에 홍정실 선생의 작품은 전통과 현대적 감각의 절묘한 조화를 이뤄 국내외적으로 높은 가치를 인정받아왔다. 영국의 대영박물관,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민속박물관, 폴란드바르샤바민속박물관 등 세계적인 미술관에서도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을 정도이다.
일흔 중반을 넘긴 나이에도 홍정실 입사장은 여전히 은실과 마치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 섬세한 공정을 계속 하다 보니 시력도 나빠지고 늘 신경통에 시달리지만 입사에 대한 열정과 곧은 기품만은 여전하다.
“한국의 전통 공예는 생활 속에서 우리의 인간성과 문화적 정체성을 보여주는 자화상과 같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우리 공예 문화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도록 가정에서부터 학교 교육, 대학 교육으로 이어지는 공예 교육의 흐름이 만들어지길 바랍니다. 또, 국가적 지원을 통해 입사의 문화적 가치와 우수성이 많은 작가에게 활용되고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