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0년간 끊임없는 도전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패션 세계를 구축해온 패션 디자이너 이영희 대표. 그는 오래 입어도 늘 마음에 들고, 여성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해줄 수 있는 옷을 통해 고객과 행복을 나누고 싶다는 소박한 원칙을 고수하며 항상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부산 패션의 진가를 널리 알리다
올해 6월 부산지방중소벤처기업청은 장수 소상공인의 성공모델 확산을 위해 부산지역 백년가게 3개사, 백년소공인 3개사를 신규 선정했다. 그중 부산진구에 소재한 ‘이영희프리젠트’가 백년소공인 중 하나로 선정됐는데, 40년 간 우수한 여성 명품 정장을 선보이며 국내외에 부산 패션의 진가를 알린 점을 높이 평가받았다고 한다.
이곳의 이영희 대표는 1996년 한국섬유대상, 2006년 한국브랜드대상 디자이너부문 수상 등 수많은 수상경력을 자랑하는 부산을 대표하는 패션디자이너이다. 특히 1992년에 받은 황금바늘상은 그가 늘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상이다.
“다른 상들은 제가 매출을 많이 올려서 받은 부분이 크다면, 황금바늘상은 패션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저의 실력을 높이 평가해서 준 상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릅니다. 흔히 ‘서울민국’이라고 하는 우리나라에서 부산에서 활동하는 제가 당당히 그 상을 받은 것이 크나큰 영광이었고 그동안 노력과 시련에 대한 포상처럼 느껴져 새로운 원동력을 얻을 수 있었죠.”
지금 젊은 층은 황금바늘상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도 많겠지만 이영희 대표가 수상한 후 바로 그 다음해 수상자가 그 유명한 ‘앙드레 김’ 씨였다는 걸 안다면 그 상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디테일한 수작업으로 소량생산 원칙 고수
이영희 대표는 80년대 양장점을 하던 친언니로부터 가게를 한번 맡아서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고 처음 이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의 타고난 감각과 재능 덕분에 1984년 문을 연 ‘이영희 콜렉션’은 얼마 지나지 않아 큰 인기를 끌며 승승장구했다.
이영희 대표는 매 시즌 새로운 디테일의 화려하고 여성스러운 스타일의 제품을 내놓았고, 어느 디자이너 브랜드도 모방할 수 없는 독특한 감성이 큰 호평을 받았다. 모든 제품을 20년 이상의 오랜 경험을 가진 숙련기술자들이 오직 수작업으로만 만들어낸다는 점도 이영희 프리젠트의 자랑거리다.
“수작업을 고집하면 대량생산이 되지 않으니 수익성 면에서 불리한 점도 있지요. 하지만 저희 옷을 사랑해주시는 오랜 고객들의 신뢰와 기대를 저버릴 수 없어서 아직도 높은 퀄리티를 중시하는 소량생산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패스트 패션’이 대세라고 하여 싼 옷을 사서 조금 입다가 유행이 지나면 버리는 게 당연시된다. 하지만 이영희 대표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좋은 옷’은 10년을 입어도 늘 마음에 들 만큼 자신에게 잘 맞는 특별한 옷이다.
“제가 만드는 옷이 상류층만을 타깃으로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그것은 오해입니다. 저는 단지 백화점이나 아울렛에서 파는 기성복보다 좀 더 특별한 디자인을 찾는 분들에게 특별한 옷을 정성스럽게 만들어드리고, 그 고객이 옷을 통해 느낄 행복을 함께 나누고 싶은 사람일 뿐입니다.”
이영희 대표의 오늘날이 있기까지는 패션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향학열도 한몫했다. 특히 한창 잘 나가고 있을 때 38세의 다소 늦은 나이에 뉴욕 파슨스 패션스쿨로 유학을 떠났던 일은 주위 모든 사람을 놀라게 했다.
“늦은 나이에 유학을 다녀온 것이 지금까지 패션 디자이너로서 건재할 수 있었던 밑거름이 된 것 같아요. 국내에서는 좋은 패턴을 떠서 작품만 잘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해외에 나가보니 다르더라고요. 거기서는 이론 못지않게 시장성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더라고요. 즉, 누구를 대상으로 옷을 만들고 얼마에 팔 수 있을까를 깊이 생각하게 만들었어요. 그렇게 배운 것들이 귀국해서 큰 도움이 됐죠.”
미국 유학은 항상 ‘우물 안 개구리’ 같다고 여겼던 자신의 틀을 깨는 계기였고 더 넓은 시각에서 패션을 연구하고 자신의 작품세계를 한층 더 업그레이드시켜준 기회였다.
사회공헌 활동에도 남다른 열정 쏟아
이영희 대표는 사회공헌 활동에도 많은 족적을 남겼다. 부산부녀장학회, 여성장애인협의회 등을 통한 저소득층 지원뿐 아니라 약사회관 건립 기금 마련 의류 바자회 개최, 아프리카 어린이 돕기 바자회 개최 등 일일이 다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가슴 아픈 이야기지만 가족 중에 교통사고로 장애를 입은 이가 있어요. 그 친구를 보면서 장애인들이 좀 더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예쁜 옷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연구를 해서 만들게 됐죠. 더불어 소외계층이나 불우한 환경에 처한 분들을 돕는 일에도 관심을 갖게 되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해마다 바자회를 열었습니다.”
한번은 민주평화통일위원회 중구 의장을 맡아 활동할 때 약 2,000여 명의 시민들과 함께 중구청에서 민주공원까지 걷기 행사를 진행했다. 그때 각 기관에 후원 물품을 요청하다가 부산은행과도 첫 인연을 맺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부산은행은 자전거 10대를 후원해주어 행사 진행에 큰 도움을 주었다. 부산은행과의 두 번째 인연은 한국여성경제인협회 부산지회부회장으로 일할 때였다. 전국 최초로 국제물류단지 산단 조성을 위해 힘쓸 때 부산은행이 건축자금지원(PF) 대출에 우대금리 적용을 해주어 여성산업단지가 조성되는 데 큰 힘이 되어주었다. 이영희 대표는 이러한 인연에 감사하며 부산은행의 동백전 유치에도 힘을 보태는 등 지금까지 부산은행과 돈독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자갈치 시장에서 배운 열정과 희열으로
이영희 대표는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영감을 자갈치시장에서 종종 얻곤 한다.
“틈만 나면 시장에 가는 걸 좋아합니다. 제게 시장은 계절, 색감, 우리의 삶이 오롯이 담겨 있는 백과사전 같아요. 새벽에 자갈치시장의 싱싱한 생선과 은빛 부산바다를 보며 활력을 느끼고 땀 흘리는 사람들 속에서 열정과 희열을 배워 마음속에 가득 담아 오곤 합니다.”
그 또한 오랜 경력에도 불구하고 늘 패션에 대한 열정과 희열을 간직하고 있다. 끊임없이 새로운 패션쇼를 기획하고, 요즘 트렌드를 연구하며 제품에 반영한다. 도전하는 여성은 늘 아름다우며, 여성의 아름다움에 정해진 시간은 없다고 말하는 이영희 대표. 그는 부산은행 고객들도 늘 도전하는 열정적 삶을 살아보시라고 권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부산 하면 부산 갈매기, 등푸른 고등어, 붉은 동백처럼 떠오르는 단어들이 있죠. 저도 부산 하면 누구나 ‘이영희 디자이너’라고 떠올릴 수 있도록 늘 힘차게 열정을 가지고 노력하는 디자이너로 기억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