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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삶과
호흡하는 그릇, 옹기
무형문화재 충북
제12호 박재환

무형문화재 충북 제12호 박재환

 

사진 제공_문의문화재단지 옹기전수관

 

‘무형문화재 박재환’이라는 낙관은 우수한 옹기의 보증수표와 같다. 200년의 전통의 숨 쉬는 그릇 옹기를 만들고 있는 박재환 옹기장. 우리의 삶과 가장 친숙한 옹기에서 장인의 손길을 만나본다.

 

흙으로만 빚어지는 전통 그릇




2012년 충청타임즈에는 한국교원대 한 교수가 장인의 옹기 제작 과정에 대해 한 말이 기사화됐다. “내가 전국 60여 곳을 돌며 여러 장인들을 만나 현지 조사를 했는데 그중에서 가장 신빙성 있는 말을 들었다.” 옹기 제작 과정에 담긴 장인 정신에 감탄하는 말이다. 

플라스틱, 일회용 용기에서 검출되는 환경호르몬과 미세플라스틱은 사람의 건강뿐 아니라 자연환경까지 파괴하고 있다. 우리 삶과 문화와 함께한 옹기는 편리성과 휴대성이 뛰어나다고 말할 순 없어도,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보존하는 우리 민족의 지혜가 고스란히 담긴 숨 쉬는 그릇이다. 또한 항아리, 뚝배기, 접시, 다기, 약탕기, 등잔 등 우리 생활에서 여전히 실용적으로 사용되는 그릇이다. 옹기의 특성은 흙으로 빚어져 큰 입자 사이로 공기가 쉽게 드나들어 통기성이 우수하고, 열과 잔 물질을 빨아들여 온도유지는 물론, 정수 효과도 지니고 있다. 목초를 태운 재와 약토를 섞은 유약을 발라 구우면, 방부성을 띠게 되어 보리나 쌀이 다음해까지 썩지 않는다. 이런 옹기는 100년 이상 사용 가능하고, 깨지더라도 자연 그대로의 천연 재료만 사용하였기 때문에 화학물질 없이 흙으로 돌아가는 자연 환원성이 뛰어나다.

 

선조의 지혜를 그대로 담아내는 옹기


_전통 방식으로 옹기를 빚고 있는 박재환 장인


옹기장이 박재환의 옹기그릇에는 오랜 세월 물려받은 유구한 전통 기술이 담겨있다. 물레를 이용하여 도려낸 바닥 바깥의 흙을 위로 쌓아 올리는 타렴질로 흙을 계속 쌓아 올린다. 옹기의 형태를 잡았으면, 옹기 윗부분을 마름하는 전잡기를 시작한다. 우선 물가죽을 이용하여 옹기의 입구를 곧게 정리한 후 옹기의 전체 모양을 잡는다. 옹기면을 다듬고 넓히는 수레질과 근개질로 형태를 균형 있게 잡아준다. 장인의 옹기는 유약을 바른 후 손으로 무늬를 넣어주고 낙관을 찍는다. 

유약이 가마 안에서 녹아 스며들면 반들반들해지며 코팅 역할을 해 방수가 된다. 건조된 옹기가 가마로 옮겨지고 구울 때가 가장 중요하다. 경사진 언덕에 지어진 가마는 경사도 자체가 굴뚝의 역할을 하며 서서히 자연스럽게 열이 올라가도록 만들어졌다. 유약이 발리지 않은 것을 질그릇, 유약을 바른 그릇을 오지그릇이라 하는데 각각 가마에서 구워지는 온도가 다르다. 질그릇은 600~800℃, 오지그릇은 1,100~1,250℃ 사이에서 구워진다. 

불을 땔 때는 일주일간 주야로 피운다. 피움불로 가마와 옹기 속 습기를 제거하고 옹기가 열에 적응할 수 있도록 서서히 피워나가며, 중불에서 본격적으로 온도를 높이고, 큰불에서 용기에 칠한 잿물이 잘 녹도록 1,250℃까지 불을 올린다. 창불 단계에서는 가마를 입구부터 막고 순간적 고열을 이용해 옹기를 익힌다. 이 모든 단계가 끝나면 가마의 불이 꺼지고, 급격한 온도차로 그릇이 깨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5일간 서서히 식힌다. 식힌 가마를 열어도 뜨끈한 열기가 남아있어 예전에는 동네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찜질하며 그날을 만끽했다.

 

_가마 온도를 조절하는 박재환 장인



7대조로 내려오는 가업


_건조한 옹기를 굽기 위해 가마 안에 쌓는 모습 



박재환 장인의 6대조인 박예진은 ‘사회도덕을 문란하게 하고 아버지와 어머니도 없는 무군무부(無君無父) 사상인 천주교를 신봉한다’는 이유로 문중에서 퇴출당한 뒤 봉산마을로 피해왔다. 조선말 천주교인들은 마을과 나라의 박해를 피해 벽지에서 화전(산에 불을 질러 일군 밭) 농사나 양잠(누에치기), 옹기점 등을 하며 생계를 이었다. 장인의 집안은 대대손손 옹기점을 하며 신앙을 지켜왔다. 전문가들은 이곳 가마터가 200년 전쯤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장인은 생계를 위해 11살 때부터 독 짓는 일에 뛰어들어 옹기 빚는 기술을 연마했다. 더 나은 기술을 배우기 위해 전국의 옹기 기술자를 찾아 10여 년의 기술 연마 후 온갖 어려운 상황을 견디며 2003년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12호 옹기장으로 선정됐다. 2007년에는 국정홍보처 공익 CF ‘우리의 내일은 식지 않습니다’에 출연해 IMF 외환위기로부터 10년 동안 식지 않는 열정을 ‘뚝배기’로 표현했고, 2010년에는 울산 세계옹기문화엑스포 광고 모델로도 활약했다. 점촌마을 옹기가마에서 불을 지펴 엑스포 성화 불로 옮기는 모습이 전 세계에 방영되기도 했다. 2009년 캐나다에서 열린 세계 무형문화재 작품전에 똥장군 두 점을 출품해 큰 관심을 받은 박재환 장인의 옹기 기술. 지금은 쓸모 없어진 똥장군은 전통의 지혜가 고스란히 깃들어있다. 전통적으로 농경 사회를 살아갔던 우리 조상들에게 화학비료가 없던 과거에는 인분을 비료화하여 농작물에 주었다. 사람에게는 쓸모없지만 농작물에는 꼭 필요했던 물체로, 우리 민족의 생활상을 그대로 담아내는 대표적인 옹기가 똥장군이다.

 

보존 가치에 힘써야 할 때





전통 기술과 함께 양질의 옹기를 빚기 위한 필수조건은 바로 좋은 가마다. 전문가들은 200년 넘게 사용되었던 장인의 가마를 그대로 보존해 이 가마로 전통 옹기 제작 기술을 후대에 전승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내셔널트러스트는 2014년 봉산리 가마를 보존 대상으로 선정했다. 200년 넘게 맥을 이어온 전통 가마로, 규모가 크고 다양한 형태로 보존돼 있어 한국 가마의 변천사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또 초창기 박해를 피해 숨어들어온 천주교인들이 교우촌을 형성했다는 점에서 역사 문화적으로 중요한 현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충북도가 1조 원을 들여 추진하고 있는 오송 제2생명과학단지에 포함된 가마터 주변으로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2017년 굴삭기를 동원해 주변 시설물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가마 일부분을 무참히 훼손시키고 말았다. 전수자인 셋째 아들 박성일 씨는 장인과 함께 역사 문화적 가치를 담은 가마 보존 노력을 진행 중이다. 

흙을 만지며 고온의 가마 곁에서 전통 그대로 빚어 만든 그릇 옹기. 옹기에 담아 먹는 건강한 음식이 비결인지, 2017년 EBS1 <장수의 비결>은 ‘200년 가업의 6대 옹기장 박재환’이라는 제목으로 그의 건강 비결과 일상을 다루었다. 훗날 누군가를 위해 도움이 되고자 항상 장기기증 서약서를 소중하게 지니고 다닌다는 그. 뜨거운 고온에서 더욱 단단해지는 옹기가 나중에 어떤 불순물도 없이 자연으로 환원되는 것처럼, 인생 마지막까지 열정적으로 살다가 옹기처럼 미련 없이, 흠결 없이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그의 바람이 평온하게 이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