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최남수 서정대 교수, 전 YTN 대표이사
기업의 탄소 배출량 공시가 새로운 글로벌 룰로 도입되고 있다. 탄소 배출이 많은 제조업 비중이 높은 한국 산업으로서는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글로벌 비즈니스를 하려면 피할 수 없는 흐름이어서 세밀한 대응이 필요한 때이다.
탄소 배출을 위한 적극적 노력 필요
더워지는 지구. 이를 억제하기 위한 과제가 인류에게 발등의 불로 떨어져 있다. 세계 각국에 주어진 대표적 숙제는 지구온난화를 가져오는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배출을 크게 줄이는 일이다. 이를 위해 각국은 2030년까지 줄일 온실가스 배출 감축 폭과 탄소 배출량이 더는 순증(純增)하지 않는 탄소중립을 이루는 시한(한국은 2050년)을 국제사회에 공언해놓고 있다. 문제는 각국이 발표한 2030년까지의 온실가스 배출 감축 목표가 실현된다고 해도 금세기 말까지의 기온상승 폭이 파리기후협정에서 정한 1.5℃를 상회한 1.8℃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탄소 배출을 더 줄여야 하는 상황이다. 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기업의 적극적인 노력이 중요한 시점이다. 이와 관련해, 기업이 탄소를 얼마나 배출하고 있는지를 공시하도록 하는 ‘기후공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 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탄소가 배출되고 있는 기업의 가치사슬 영역에 대해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획기적인 감축이 어려운 스코프 3 영역
기업이 탄소를 배출하는 영역은 세 가지로 구분된다. 스코프(scope) 1, 스코프 2, 스코프 3이다. 먼저 스코프 1은 기업이 소유하고 통제하고 있는 곳에서 직접 발생시키는 탄소 배출이다. 화학 공정, 보일러, 터빈 등이 대표적 사례이다. 다음으로 스코프 2는 기업이 사용하는 전기와 동력이 생산되는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이다. 마지막으로 스코프 3. 기업이 원자재 등을 사들이고, 제품을 판매하는 공급망에서의 탄소 배출을 말한다. 여기에는 기계 구입, 폐기물, 수송, 유통, 판매 제품의 가공, 자산의 임대 및 임차 등이 포함된다. 직원이 해외 출장을 가거나 출퇴근을 할 때 배출되는 탄소도 들어간다. 그만큼 기업으로서는 측정하고 관리하기가 어려운 영역이다. 중요한 점은 절반 이상의 탄소 배출이 스코프 3에서 이뤄져 스코프 3을 관리하지 않고는 탄소를 획기적으로 줄이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현재 기업들이 이 같은 영역에서 탄소를 얼마나 배출하고 있는지를 공시하도록 하는 논의는 두 갈래로 진행되고 있다. 하나는 지난해 10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협약당사국총회에서 출범한 ISSB(국제 지속가능성 기준위원회). 이 기관은 최근 발표한 기후공시 프로토타입(prototype)에서 앞에서 설명한 스코프 1, 스코프 2, 스코프 3을 기업이 모두 공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특히 스코프 3에 대해서는 관련 활동에 대해 설명하도록 하고 있다. ISSB는 올해 안에 최종안을 내놓는다는 계획이다. 이 안이 확정되면 여러 국가와 규제기관에서 신속하게 도입할 것으로 보인다. ISSB의 안이 G20와 국제증권관리 위원회 등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피할 수 없는 흐름, 기후공시 의무화
이와 별도로 미국의 증권관리위원회(SEC)도 지난 3월 상장기업에 기후공시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을 보면, 탄소 배출의 경우 스코프 1과 스코프 2는 모든 상장사가 공시하도록 했다. 다만, 스코프 3 공시는 ISSB 안보다는 다소 완화된 내용이다. 스코프 3 탄소 배출이 상장사에 중요하거나 상장사가 스코프 3을 포함한 감축 목표를 설정한 경우로 제한했다.
지금까지 소개한 기후공시 방안은 시행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며 일부 내용도 수정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탄소 배출량 공시 자체는 새로운 글로벌 룰로 도입되는 게 대세이다. 탄소 배출이 많은 제조업 비중이 높은 한국 산업으로서는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글로벌 비즈니스를 하려면 피할 수 없는 흐름이어서 세밀한 대응이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