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한수혁 KG제로인 상무이사
디폴트 옵션의 도입으로 퇴직연금 시장에서 지각 변동이 일어날 전망이다. 은행, 증권, 보험사간 경쟁이 치열해지는 것도 있겠지만 가입자 입장에서 가장 기대되는 부분은 수익률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점이다. 자신의 현재 퇴직연금 유형을 알아보고 슬기롭게 대처하자.
디폴트 옵션은 무엇이고, 왜 도입됐나?
급여 생활자에게 퇴직금은 소중하다. 반드시 받게끔 법으로 보장되어 있다. 그럼에도 자금이 궁한 기업이 퇴직금에 손을 댔다가 지급을 못하거나 근로자가 퇴직금을 한꺼번에 받아 사용한 뒤 정작 더 나이 들어서는 쓸 수 없는 경우가 잦았다. 이 문제에 도움을 주려고 2005년 12월에 퇴직연금이 도입되었다. 회사가 아닌 금융회사(연금사업자)에 퇴직금을 적립해 따로 관리하면서 적립된 분을 불리게 한 것으로, 퇴직금을 일시금이 아닌 연금으로 받고 세금 혜택도 누릴 수 있게 했다.
퇴직연금시장은 빠르게 늘어나 300조 원에 육박하고 있다. 1988년에 시작된 국민연금이 1,000조 원에 이르는 것과 비교해 보면 퇴직연금의 적립 규모와 속도를 알 수 있다. 문제는 근로자들의 무관심 속에 원금을 지켜야 한다는 안정성을 강조하다 보니 운용 수익률이 낮았다는 점. 그런데 7월 12일부터는 수익률을 높여서 보다 풍족하게 퇴직연금을 받게 할 목적으로 ‘퇴직연금 사전지정운용제도’가 도입된다. ‘디폴트 옵션’이라고도 하는 이 제도는 퇴직연금 중 DC(확정기여형)와 IRP(개인형퇴직연금) 가입자가 일정 기간 운용 지시를 하지 않으면 사전에 정한 투자상품에 자동으로 투자하게 하는 방식이다.
디폴트 옵션을 도입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위험자산 투자 비중을 높이다가 원금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강했다. 하지만 퇴직연금 수익률이 낮게 유지되어 온 데 대한 반성이 그 우려를 눌렀다. 우리보다 앞서 디폴트 옵션을 도입한 미국, 영국, 일본, 호주가 안정성과 수익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점이 참고가 됐다. 특히 미국의 DC 퇴직연금인 401K가 연평균 7%대의 수익률을 꾸준히 올리며 ‘연금부자’가 생기게 하고 금융시장 안정에 도움이 되었음이 크게 작용했다.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은?
그동안 예금을 비롯한 확정 상품에 80% 가까이 투자하던 퇴직연금 시장은 디폴트 옵션의 도입으로 지각 변동이 일어날 전망이다. 연금사업자인 은행, 증권, 보험사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상품을 제공하는 자산운용사, 보험사의 상품 개발 노력도 가속될 것이다. 퇴직연금이 미국의 401K처럼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낮출 수 있는 구원투수 역할도 할 것이고, 금융시장 전체의 발전에도 기여할 것이다.
가입자 입장에서 가장 기대되는 부분은 수익률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 10년 동안 퇴직연금의 수익률은 연 3%를 넘지 못했다. 작년 말 전체 적립금 295조 6,000억 원 중 대부분(255조 4,000억 원·86.4%)이 원리금 보장형 금융상품에 쌓여 있었다. 최근 5년간 연환산 수익률은 1.96%에 그쳤다. 적립규모는 DB가 171조 5,000억 원(58%), 근로자 개인이 운용하는 DC가 77조 6,000억 원(26.2%), IRP가 46조 5,000억 원(15.7%)에 달한다.
디폴트 옵션이 도입되었지만 원리금 보장 상품도 운용대상에 포함되었으므로 여전히 보수적인 운용을 할 가능성도 남아 있다. 결국 근로자가 자신의 노후에 받게 될 퇴직연금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정부와 기업, 금융회사가 나서서 교육하고, 제도를 계속 보완해 나가야 한다.
근로 생활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우선 자신이 퇴직연금을 받게 되는 직장에 다니는지 확인해야 한다. 퇴직연금이 도입되었지만 퇴직금 제도에 머물러 있는 회사도 있다. 퇴직연금으로 전환하지 않더라도 페널티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퇴직연금 가입 기업에 다니고 있다면 퇴직연금 유형이 DB형인지, DC형인지 확인해야 한다. 아직 40대 미만이고 봉급 인상률이 높은 직장에 다닌다면 DB형도 나쁘지는 않지만 퇴직연금을 활용하여 자산을 늘리고 싶다면 DC형으로 전환하는 게 좋다. IRP는 별도로 가입할 수 있고, 소득세 감면 혜택도 주어지므로, 없다면 이번 기회에 무조건 들어 두는 게 좋다.
다음으로는 퇴직연금 사업자를 선택해야 한다. IRP는 가입자가 자유롭게 디폴트옵션을 지정할 수 있지만, DC는 노사가 합의해서 결정해야 한다. 퇴직연금은 장기 투자 상품이므로 단기 수익률보다는 종합적인 자산관리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업자를 골라야 한다. 금융감독원 퇴직연금 공시사이트에 가서 금융회사별로 DC형 수익률을 비교해 보면 된다. 디폴트 옵션 대상 상품은 법으로 제한되어 있다. TDF(타깃데이트펀드), MMF(머니마켓펀드), 부동산인프라펀드, 원리금보장상품 등이다. 그동안 위험자산 비중을 70%로 묶어놓다 보니 30%는 무조건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투자해야 했지만, 이제는 디폴트옵션 상품만으로 계좌 운용이 가능해진다.
Tip 퇴직연금의 유형에 대해 알아보자!
- DB(확정급여형) : 퇴직금이 정해져 있는 경우를 뜻한다. 기업이 퇴직금을 적립하여 사전에 운용하다가 퇴직할 때 지급한다. 기업이 운용 지시를 하고, 손실이 나면 메꾸기도 해야 하기 때문에 최대한 안전하게 투자하게 된다.
- DC(확정기여형) : 매년 연봉 총액의 1/12의 퇴직급여를 근로자의 연금계좌로 보내 주면, 근로자가 직접 운용한다. 퇴직연금에 필요한 돈이 확정되어 있다
- IRP(개인형퇴직연금) : 개인이 직접 적립하고 운용하는 제도다. 근로자가 재직 중에 가입하거나, 퇴직 시 받은 퇴직금을 적립하고 운용할 수 있다. 연간 1,800만 원까지 납입이 가능하고 최대 700만 원까지 세액공제 혜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