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평등 정신을 품은 빵,
‘바게트’

글 장한업 이화여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한국 바게트는 45cm 정도로 곤봉과 비슷한 길이지만 프랑스 바게트는 65cm 정도로 기다란 막대기를 연상시킨다. 아닌 게 아니라 바게트라는 단어 자체가 ‘막대기’의 프랑스어에서 유래됐다. 프랑스인들의 바게트에 대한 전통과 자부심은 대단하다. 그 이유를 자세히 알아보자. 

 

프랑스 바게트 가격이 싼 이유   





1980년대에는 ‘빵집’하면 대개 독일 빵집을 떠올렸어요. 실제로 ‘독일 제과’라는 간판을 내건 빵집이 많았지요. 그런데 1988년 광화문에 ‘파리바게트’가 1호점을 열면서 독일 빵집은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했어요. 오늘날 파리바게트는 전국에 3,400여 개나 되는 점포를 가진 명실상부한 ‘국민 빵집’으로 자리 잡았어요. 적어도 빵에 관한 한 프랑스는 독일을 물리친 셈이지요.

하지만 한 가지 불편한 진실이 있어요. 그것은 한국에는 ‘진짜’ 바게트가 드물다는 것이에요. 여기서 말하는 ‘진짜’ 바케트는 프랑스 바게트를 말하는데, 한국 바게트와 프랑스 바게트 사이에는 크게 세 가지 차이점이 있어요. 

첫째, 한국 바게트는 길이가 짧아요. 한국 바게트는 45cm 정도지만, 프랑스 바게트는 65cm 정도나 돼요. 둘째, 두 바게트의 맛이 달라요. 프랑스 바게트는 겉은 딱딱하지만 속은 부드럽고 고소한데, 한국 바게트는 이런 맛이 별로 없어요. 셋째, 한국 바게트는 3,000원 이상이지만 프랑스 바게트는 1,300원 정도해요.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한 프랑스에서 바게트 값이 이렇게 싼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정부가 가난한 사람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도록 바게트 값을 어느 정도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여기에 담긴 철학은 국가가 가격을 통제해서라도 국민이 먹고 사는 문제만은 해결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에요. 여기서 프랑스 혁명의 정신과 프랑스식 사회주의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어요. 

 

바게트의 기계화·기업화에 반대하다


‘막대기’라는 의미를 가진 프랑스어 baguette(바게트)는 프랑스 혁명의 산물이에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지 얼마 안 된 1793년에 국민공회는 “평등해진 체제에서 부자와 빈자의 구분은 없어야 한다. 따라서 부자는 최상급 밀가루 빵을 먹고 빈자는 밀기울 빵을 먹는 일도 없어져야 한다. 모든 제빵사는 감옥에 가기 싫으면 ‘평등의 빵’이라는 단 한 가지의 빵을 만들어야 한다.”고 천명합니다. 1856년 나폴레옹 3세는 이 ‘평등의 빵’의 크기와 무게를 40cm, 300g으로 규격화하려고까지 했어요.

이런 바게트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시련을 겪게 됩니다. 현대화와 기업화의 바람이 불었고, 바게트도 그 흐름에 휘말렸기 때문이지요. 실제로 바게트를 기계로 만들면서 골목 바게트는 큰 타격을 입었어요. 참다못한 제빵사들은 1980년대 말 바게트의 전통과 자신들의 생존권을 내세우며 바게트의 기계화·기업화에 반대하고 나섰지요. 이에 프랑스 정부는 1993년 ‘빵에 관한 법령’을 만들어 제빵사의 손을 들어주었어요. 이 법령에 따라 ‘프랑스의 전통 바게트’는 밀가루, 물, 효모, 소금만 넣어야 합니다. 


국가의 보호를 받는 바게트 장인들 


파리 시청은 매년 ‘최고의 바게트’ 경연대회를 열어요. 1994년에 시작된 이 경연대회는 프랑스 제빵제과연맹의 후원을 받아 해마다 10명의 최고 바게트 장인들을 선정하고, 우승자에게는 메달과 4천 유로의 상금을 수여합니다. 하지만 가장 큰 영예는 1년 동안 대통령 궁에 바게트를 납품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린다는 것이지요. 

올해 열린 경연대회에서는 파리 15구 캉브론느(Cambronne) 가(街) 프레데릭 코민느(Frédéric Comyn)라는 빵집에서 일하는 다미엥 드덩(Damien Dedun)이 1위의 영광을 차지했어요. 그는 한 언론사와의 면담에서 자신의 비법을 숙성의 질과 빵에 대한 사랑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처럼 프랑스의 바게트는 국가의 적극적인 보호하에 오늘도 그 전통을 꿋꿋이 지켜나가고 있어요. 대기업이 돈만 된다면 소상인의 삶의 터전이라도 무자비하게 짓밟는 한국과는 참으로 대조적이지요. 하루바삐 관련된 법률을 만들어 소상인이 자신만의 상품을 만들고 자부심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되지 않을까요?   

 



Tip 세계 빵 이름의 유래

 

크루아상 – 마리 앙투아네트가 왕궁에 데려온 오스트리아 출신 제빵사들이 초승달 모양의 빵을 굽기 시작했는데 프랑스어로 ‘초승달’이 크루아상이기 때문에 그대로 빵 이름이 되었다.

 

도넛 – 400년 전 네덜란드에서 밀가루반죽(Dough)을 동그랗게 말아 튀겨서 만든 빵이 시초인데, 튀겨놓고 보니 견과류(Nut)와 같은 갈색이어서 이름을 도넛(Doughnut)으로 했다.  

 

브라우니 – 미국의 한 제빵사가 초콜릿 케이크를 만들다가 실수로 베이킹파우더를 넣지 않았는데 그것 때문에 짙은 갈색(Brown)을 띤 케이크가 탄생하였고 색깔을 따라 브라우니라 부르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