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제공_산청군 목조각장전수관
조각칼로 매끄러운 동자의 머리를 표현하는 과정은 가히 감탄스럽다. 사포질을 통해 표면을 매끈하게 만들면 장인의 손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는 박찬수 명장. 나뭇결을 따라 수백, 수천 번의 칼질 끝에 살아 숨 쉬는 동자가 탄생한다. 전통 목조각장 박찬수 장인의 예술 세계로 들어가 본다.
_고요동자,비자나무,H24x76x34,2000년
살아 숨 쉬는 결을 표현하는 예술
목조각은 나무를 재료로 조각상을 만드는 일이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 불교가 들어오면서 불상 목조각이 발달하였다. 박찬수 장인은 목조각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나무를 잘 아는 것’이라 한다. 그는 끊임없이 나무의 속성과 근본을 탐구한다. 곧은 나무, 휘어진 나무, 살아 있는 나무, 죽은 나무. 60년이 넘는 세월 나무를 보아왔지만, 나무가 보여주는 모양과 느낌은 항상 새롭게 그를 작품으로 이끈다. 그의 마음을 처음으로 흔들어 놓은 목조각은 우리나라 불교 목조각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국보로 지정된 목조 미륵보살 반가 사유상. 얼굴에서 내려오는 결은 마치 핏기가 도는 것 같고, 팔과 다리에 그대로 결이 내려오는 모습이 여인이 살아서 다가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나무의 결을 살리는 것, 그의 작업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심장이 되었다.
목조각 자체의 예술성
“목조각 명인 박찬수는 수천 년 유구한 전통의 상속자 장인의 영역에 속하던 목조각을 고유한 예술의 단계로 격상시켰다.” - 자자르 슈리케 (미술평론가)
UN 본부에서 선보인 목조각 퍼포먼스 공연은 세계적인 화제를 모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 등재를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그의 퍼포먼스를 본 전문가는 ‘자기가 만족할 수 있는 것을 스스로 개발하면서 시대의 흐름을 인식하고 예술성으로 승화시키는 좋은 장인이자 작가’라 했다. 현대 조각가의 작품처럼 느껴지는 그의 퍼포먼스는 힘과 에너지가 넘쳐흐른다.
그가 목조각을 시작한 것은 12살의 나이, 배가 고파 김성수 선생의 공방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였다. 중학교에 진학한 이후 박찬수의 재능을 알아본 당시 미술 교사였던 조소과 출신의 이운식(조각가, 강원대 명예교수)으로부터 목조, 석조, 브론즈 등 다양한 조각을 배웠다. 이운식 선생을 따라다니던 박찬수 장인은 1974년 일본 유학길에 올라 불상을 만드는 가토 선생으로부터 불교 불상, 불교 미술에 대해 공부했다. 박찬수 장인은 목조각 분야에 맥이 끊긴 상태에서 수많은 사찰과 문헌, 스님들을 찾아다니며 한국 불교 목조각의 전통을 잇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만들어놓은 작품이 갈라지며 원형을 잃어버리거나, 나뭇결(목리)에 의해 형태가 삐딱하게 보이는 한계에 닿았다. 이 같은 수많은 실패는 나무의 속성과 근본을 제대로 연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1985년 문화재수리 기능 보유자(조각 제772호)로 지정받은 그는 1989년 전승공예대전에 ‘법상’을 출품하며 대통령상을 수상하였다. 잊혀 가는 우리 전통문화의 목공예 및 불교 목조각의 전승을 위해 1993년 자신의 호를 딴 사립 목아 박물관을 경기도 여주에 설립하였다. 대통령상을 수상한 법상을 초석으로 그의 전통문화 전승을 위한 노력이 인정받았고 1996년 목조각자로서는 대한민국 최초 국가무형문화재목조각장 기능보유자로 인정받게 되었다.
_약사여래삼존불감,회양목,H28x12x12cm
부자유한 예술에서 자유한 예술로
나무쟁이 박찬수의 작업 마당에는 전 세계에서 공수해 온 다양한 나무가 건조되고 있다. 나무마다 고유한 무늬를 가지고 있고, 그 무늬에 따라 제각각 어울리는 얼굴들이 있다. 또한 나무마다 특정한 방향성이 있어서, 작가가 나무의 결과 특징을 어떻게 잘 살리느냐가 목조각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그는 나무의 속성을 정확하게 파악해 나무가 갖는 무늬와 성격에 어울리는 작품을 만든다. 반듯한 나무는 경직된 표정이 어울리고, 삐딱한 나무는 해학적인 표정이 어울린다. 그의 작품은 나무의 결과 작품이 혼연일체가 되어 살아 움직이게 한다는 찬사를 받는다.
그의 목조각 기술에 있어 또 하나의 특징은 질감 표현이다. 연장을 쓰는 다양한 기법을 연구해 생동감 있는 질감을 표현한다. 연장을 내려치거나 또는 좌우로 흔들어 옷의 다양한 질감을 표현하여 목조각의 변화를 시도한다. 완성된 작품은 항상 중앙 안에 구멍을 뚫는다. 안쪽이 완전히 건조되지 않아 뒤틀리는 것을 방지하는 목조각의 전통 기법이다. 그의 작품세계는 전통 기법의 장점을 받아들이며 현대에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충분히 활용해 확장해 나간다.
박찬수의 작품은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 그의 끊임없는 노력은 늘 새로운 작품을 탄생시킨다. 그의 작품세계는 국내에만 머물지 않고 외국의 발전된 조각을 공유하고, 좋은 부분을 배우고 닮기 위해 연구하며 박찬수만의 예술 조각을 탄생시킨다. 그는 자신의 행위를 끊임없이 고민하며 탐구한다. 사람 보기에 예뻐서 돈이 되게끔 하는 예술을 부자유한 예술이라 깨달은 그는, 하고 싶은 대로 작품을 만드는 자유예술로서 전통 조각을 넘어 현대 예술 작업까지 시도하고 있다.
전통을 계승하는 현대 예술
박찬수 전수관에 가면 취미로 목조각을 배울 수 있다. 많은 사람이 목조각을 배움으로 옛날 전통 기법이 보존되고 발전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목아 박물관에 찾은 관람객들에게 직접 작품을 설명하고 조각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박물관에는 나무로 만든 조각 뿐 아니라 동으로 만든 조각상도 볼 수 있는데, 나무로 만든 조각은 세월이 흐르며 풍화되거나 쉽게 부서지기 때문에 오래도록 나무의 결을 그대로 살린 조각을 볼 수 있도록 나무 원형을 만들어 동을 부어 세운, 주물 기법 목조 조각상을 개발했다. 유물을 보관하는 수장고에는 직접 몇 십 년간 세계 각지를 다니면서 조각 분야 장인들이 썼던 연장이 있다. 과거 자신이 썼던 연장도 체계적으로 모아두어, 전수자들이 보고 만지며 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하였다.
미술을 전공한 박찬수 장인의 첫째 아들 박우택 씨가 박물관 운영을 함께 하고 있으며, 둘째 아들 박우명 씨가 박찬수 장인의 기술을 계승하며 전수관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 전통 목조각을 지키기 위해 목조각에 전 인생을 담는 장인 박찬수와 그의 대를 잇는 전수자들. 행복한 메시지를 주고 싶다는 박찬수 목조각장의 작품에 나타난 표정은 웃는 모습이 많다. 정체되어 있으면 흐르는 물도 썩듯, 사람도 기능만 가진 채로 정체 되어 있으면 썩는다. 무형문화재는 전통을 고수해야 한다는 시선에서 벗어나, 이 시대가 가더라도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목조각가로 남고 싶은 박찬수 장인의 정신을 담은 새로운 작품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