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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함께
가는 경제

글. 최남수 서정대 교수, 전 YTN 대표이사 

 

정치가 잘 통합되면 경제 발전으로 이어지고, 국민의 행복감도 개선된다. 해외 사례를 통해 사회적 통합이 경제와 행복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본다. 

 

화해의 길을 택한 르완다 


1994년 르완다의 상황을 다룬 영화 ‘호텔 르완다’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당시 르완다는 양대 세력인 투치족과 후투족이 서로 총을 겨눠 많은 민간인 사상자가 나왔다. 평화협정으로 잠시 안정을 찾는 듯했지만, 다수 종족인 후투족 출신 대통령이 암살당하자 르완다는 다시 소용돌이에 빠져든다. 분노한 후투족은 투치족에 복수의 공격을 한다. 이때 최고급 호텔인 밀 콜린스의 지배인 폴 루세사비기나는 100일 동안 호텔로 몰려든 투치족 난민 1,200여 명을 목숨을 걸고 보호한다.

6년 후인 2000년 봄, 투치족 반군 조직인 르완다 애국전선(RPF)을 지휘했던 폴 카가메가 대통령에 취임했다. RDF가 군사적 승리를 거둔 데 따른 것이다. 무차별 복수극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카가메는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범죄에 대한 처벌은 최소화했다. 대신 ‘우리는 모두 르완다인’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인종을 따지지 않는 나라를 만들자”고 호소했다. 그는 인종차별을 철폐했다. 후투족이니, 투치족이니 하는 단어를 아예 교과서에서 삭제해버렸다. 조너선 테퍼먼은 저서 ‘픽스’에서 당시 르완다가 ‘고통스러운 화해의 길’을 선택했다고 평가한다.

 

모든 칠레인을 위한 칠레 


1973년 9월 칠레에서는 쿠데타가 일어난다.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정권을 잡았다. 그는 장기집권을 하며 반대 세력을 억압했다. 1976년까지 13만 명이 체포됐다. 피노체트는 임기를 8년 연장한 후 1997년에 다시 8년을 늘리려고 국민투표에 부쳤다가 58%의 반대표가 나와 자리에서 물러났다. 정권은 좌파와 중도 정당의 연합체인 ‘콘세르타시온’으로 넘어갔다. 새 정부는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구성했다. 원칙적으로 피노체트 정권이 저지른 범죄 행위에 대한 진상 규명과 처벌이 진행되긴 헸다. 하지만 관용과 타협이 같이 이뤄졌다. 1990년 3월에 취임한 파트리시오 아일윈 대통령은 ‘모든 칠레인을 위한 칠레’를 건설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경제정책은 전 정권이 시행했던 정책을 적지 않게 이어갔다. 제레드 다이아몬드 UCLA 교수는 ‘대변동’에서 “‘모든 칠레인을 위한 칠레’라는 국가적 정체성이 없었다면 칠레는 정치적 마비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고 남미지역에서 가장 민주적이고 부유한 국가로 되살아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행복으로 직결되는 사회 통합 


이 같은 사례는 갈등보다는 화해와 용서를 선택한 포용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실용과 관용, 타협의 문화가 중요한 것은 사회적 안정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경제와 행복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좋은 약’이기 때문이다. 먼저 상대에 대한 인정은 ‘제3의 자본’으로 불리는 사회적 자본의 핵심 요소이다. 사회적 자본은 신뢰, 법 준수 등 규범, 이웃과의 친밀성 같은 네트워크로 구성되는데 이는 사회 통합을 가져와 경제의 안정성을 높이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실제로 1970~2000년의 기간 중 56개 국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해외의 한 연구 결과를 보면 사회 신뢰도가 높은 국가일수록 경제성장의 변동 폭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적 통합은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북유럽 사회는 항상 행복도 순위에서 세계 최상위권에 오르고 있다. ‘세계 행복보고서 2020’은 그 이유를 분석했다. 하나의 요인으로 꼽힌 것은 덴마크와 핀란드, 스웨덴 등 노르딕 국가가 사회적 통합 면에서 전 세계 ‘톱3’에 올라있다는 점이다. 단합하는 공동체성이 ‘행복한 북유럽’을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 보고서는 “분열된 사회는 국민이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여건을 만드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라고 지적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멀리 함께 가는 경제를 만들기 위해 새겨들어야 할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