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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테크,
시장성 측면에서
접근하라

글. 이지혜 아트 컬렉터, <나는 미술관에서 투자를 배웠다> 저자

사진 제공. PKM Gallery, 크리스티, 위키피디아  

 

지난 5월호에 이어, 성공적인 아트테크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좀 더 심층적으로 살펴보자. 아트테크 초보자라면 미술시장이 이미 정해둔 지표를 따르는 것도 좋다. 그리고 시장성 측면에서 가장 접근하기 좋은 판화에도 주목해보자. 

 

싼 게 비지떡임을 명심하자 


몇 해 전 각종 미디어에서 뜨겁게 다룬 키워드 중 ‘가성비’라는 신조어가 있다. 말 그대로 ‘가격 대비 성능’의 줄임말이다. 투자한 금액에 비해 기능과 효율이 뛰어나면 보통 ‘내실이 좋다’는 말로 쓰일 수 있지만, 요점은 바로 ‘아주 훌륭한’이 아닌 ‘가격 대비 괜찮은’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자동차나 컴퓨터를 고를 때 사양과 성능 비교에 있어 가격경쟁력은 중요한 기준으로 자리 잡았고 이후 널리 쓰이고 있다. 하지만 가성비가 미술품을 고를 때도 중요할까? 

전문적인 컬렉터들의 공통적인 조언 중 하나는 바로 ‘작품을 가성비로 따지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조금만 따져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림은 실물자산으로서 완벽한 1:1 매칭으로 거래된다. 가격이 시세와 차이가 있더라도 판매자와 구매자가 해당 금액에 합의한다면 거래가 성립되는 반면, 작품을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 중 한 가지라도 맞지 않으면 거래는 불발된다. 비슷한 예로, 아파트를 구입한다고 가정했을 때 같은 아파트에서도 면적과 타입, 동과 층, 그리고 향 등 수많은 요소가 맞아떨어져야만 거래는 성사된다. 따라서 구매자들은 추후 매도를 고려하여 애초에 선호도가 높은 요소들을 두루 갖춘 세대를 찾기를 원한다. 조금 더 돈을 주더라도 말이다. 다시 미술품으로 돌아와서, 같은 작가의 동일한 크기의 작품이라는 싼 것을 선택하겠다는 태도보다는 되도록 작가의 수작이나 대표작을 고르는 것이 좋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요소는 다른 사람의 마음에도 들지 않을 확률이 높으므로 제 값을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단색화 사조는 확장 가능성 충분 


미술시장에 막 입문한 ‘컬린이(컬렉터+어린이)’라 내 취향과 선택을 확신하기 어렵다면, 미술 시장이 이미 정해 둔 지표를 따르는 것도 좋다. 단색화는 오늘날 미술 시장의 가장 확실한 보증 수표다. 단색화란 1970년대 한국 현대미술의 주류였던 단색조의 추상화와 작품들을 아우르는 단어이자, 현재 한국 미술계를 대표하는 사조다. 단색화 열품은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한국의 단색화전’을 시작으로 단색화를 다룬 다양한 전시들이 연이어 열리며 대표 사조로 자리매김했다. 현재 국내 미술 시장에서 단색화의 위치는 주식 시장에서 대장주로 꼽히는 ‘삼성전자’에 비유할 수 있다. ‘삼성전자가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다소 극단적인 말은 대한민국의 경제와 삼성전자를 불가분의 관계로 일컫는 표현이다. 즉, 단색화 사조는 국내 미술 시장의 대장주로서 대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필연적으로 그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 

반면, 일본의 비슷한 사조인 ‘구타이(Gutai)’ 나 ‘모노하(Monoha)’가 세계 미술사에서 이미 인정받고 있는 것과 비교할 때 한국의 단색화 열풍은 아직 시작 단계로 볼 수도 있다. 다시 말해, 국내에서 탄탄하게 자리 잡은 단색화가 글로벌 아트마켓으로 확장될 가능성은 충분하며 그만큼 가격 상승의 여지도 존재하는 것이다. 

 

작가 선택에는 신중한 판단이 필요


 _(좌)김동유 2007, Oil on canvas, 162×130cm

(우)김동유  2009, Oil on canvas, 162×130cm

 

그렇다면 작가를 선택할 때 주의해야 하는 점은 없을까? 개인적인 노파심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선택한 작가가 시장의 경기를 타는 작가인지 아닌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을 권한다. 2008년 발발한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기 전, 국내 미술 시장은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었고, 그 중심에 김동유 작가가 있었다. 팝아트와 극사실주의 경향의 작품이 인기를 끌면서 2005년 ‘크리스티(Christie’s)’의 홍콩 경매에서 김동유 작가의 <반 고흐> 작품이 최고가인 8,800만 원에 낙찰되었다. 그리고 다시 6개월 후, 같은 경매사에서 당시 한국 생존 작가로는 최고가인 3억 2천만 원에 작품이 낙찰되면서 이 기록을 새롭게 경신했다. 해외발 ‘김동유 돌풍’에 국내 미술 시장도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한 사람의 얼굴을 손톱만한 크기로 보이게 하는 이른바 ‘이중 초상’ 작품은 이렇게 일약 스타덤에 오르며 2008년 서울옥션에 출품된 약 50호 크기의 <마릴린>은 무려 1억 2천만 원에 낙찰되었다. 

그러나 금융위기가 한국을 잠식하면서 찬물 끼얹은 듯 조용해진 미술 시장의 분위기에 하늘 높이 띄워진 연처럼 훨훨 날던 김동유 작가의 작품 역시 작가의 화업과는 상관없이 그대로 가라앉고 말았다. 2020년 12월 서울옥션에 출품된 그의 작품은 하필 2008년 낙찰된 작품과 크기와 도상이 아주 흡사했는데 낙찰가는 당시보다 1억 원 이상 하락한 2,300만 원이었다. 이처럼 호황의 분위기를 타고 스타덤에 오르는 작가들이 현재에도 속속 포착된다. 이렇게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성이 시장의 열기로 과하게 부풀려진 것은 않았는지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

 

높은 환금성, 시세 파악 수월한 판화 


막연한 표현이지만, 미술작품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인 ‘취향’은 어떨까? 꼭 당부하고 싶은 것은 오늘 나의 취향이 앞으로도 영원할 것이라는 확신을 버리라는 것이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어떤 계기로, 심지어 아무런 이유 없이 어떤 대상이 좋아진 경험도, 그 반대의 경험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오랫동안 그림을 보다 보면, 나의 취향이 마치 생물처럼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시시각각 변하는데다 점점 가다듬어지기도, 혹은 더욱 확장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의 취향을 세상에 공언하듯 공식화할 필요는 없다. 조금 더 덧붙이자면, 나의 안목이 곧 시장의 선호도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마지막으로 이 시장성 측면에서 접근하기 좋은 미술품을 알아보겠다. 판화란 복제 미술품이지만 그 자체로 하나의 원본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우선 블루칩 작가의 넘사벽 가격대인 원화에 비해 판화의 가격은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같은 작가가 캔버스에 유화로 그린 작품이 억대에 팔리는데 비해, 판화는 몇 백만 원대의 몸값에 머무른다. 또한 작가의 대표작으로 제작된 판화가 원화와 거의 비슷한 정서적 즐거움을 준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판화의 제작 방법이 발전을 거듭하며 일부러 확인하지 않는다면 원화로 착각할 정도의 정교함을 갖추었다.

또한 판화의 장점은 아트테크에도 안성맞춤이다. 가격을 다운사이징한 판화는 원화에 비해 소장자들이 작품을 보유하는 기간이 짧다. 이는 곧 환금성이 높다는 것을 뜻하며, 한정된 수량으로 제작된 작품이 여러 점 존재한다는 점도 유의미하다. 이는 빈번한 낙찰가를 남기기 때문에 시세 파악에 수월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작가의 명성이 상승하면 판화의 가격도 동반 상승효과를 누리게 된다. 따라서 블루칩 작가의 판화를 이용한 아트테크는 성공이 예정된 투자라고 할 수 있다.

 

 _윤형근 1977-1989, Oil on linen, 73×91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