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장한업 이화여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한국인이 사랑하는 커피의 어원은 커피의 본고장인 에티오피아의 ‘카파’ 지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카파에서 카흐와, 카흐베, 까페, 그리고 커피로…. 커피를 둘러싼 흥미로운 세계사를 알아보자.
이슬람교 덕분에 널리 보급된 커피
오늘날 우리는 커피를 참 많이 마십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8년 기준 한국 성인은 연간 평균 353잔을 소비했는데, 이는 세계 성인의 평균 소비량의 2.7배에 해당해요. 한국은 전통적으로 차를 마시던 나라라는 것을 감안하면 정말 놀라운 일이지요. 이처럼 애음되고 있는 커피는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전 세계를 어떻게 돌아다녔을까요?
_에티오피아에서 전통 방식으로 커피 원두를 로스팅 하고 있는 여인
커피의 본고장은 에티오피아 카파(Kaffa)라는 지역이라는 것이 다수설이에요. 6~7세기 경 이곳에는 칼디라고 불리는 목동이 있었는데, 이 목동은 어느 날 염소들이 어떤 열매를 먹기만 하면 이상한 흥분 증세를 보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호기심에 이끌린 이 목동은 자신도 그 열매를 먹어보았고 비슷한 흥분 증세를 느꼈다고 해요. 그는 곧 이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렸고 이로써 커피의 효능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고 하네요.
15세기 경 커피는 홍해 너머 예멘에도 알려지게 됩니다. 그리고 16세기에는 이슬람 순례자들에 의해 인도 등 여기저기에 보급돼요. 아랍 사람들은 커피를 ‘카흐와(qahwah)’라 불렀고, 터키 사람들은 ‘카흐베(kahveh)’라고 불렀어요. 커피가 이슬람 세계에서 널리 유행한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하나는 이슬람 교리에 따라 술을 마시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술을 대신할 음료가 필요했기 때문이지요. 다른 하나는 커피가 하루에도 몇 번씩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에게 졸음을 쫓아주는 기능을 했기 때문이지요.
지식인들의 아지트가 된 카페
17세기 중엽 커피는 유럽으로 들어가게 돼요. 프랑스에 커피를 전한 사람은 오스만 제국 대사 술레이만(Suleiman)이라고 해요. 1669년 7월 그가 파리에 도착했을 때 루이 14세는 오스만 제국을 못마땅하게 여겨 그의 접견을 거부했어요. 이에 불만을 가진 슐레이만은 한 가지 기지를 발휘했어요. 자신을 거처를 아랍식으로 꾸미고 이국적인 물건으로 그 속을 채워서 파리 귀족들의 호기심을 끌었지요. 그의 예상대로 귀족들은 그의 집에 몰려들었고 그때마다 그는 그들에게 커피를 대접했어요. 이런 환대는 방문객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이 소문은 베르사유 궁에 있던 루이 14세의 귀에도 들어갔지요. 결국 루이 14세는 그해 11월 술레이만을 궁으로 부르게 돼요. 향긋한 커피 향을 이용한 대사의 기지가 성공하는 순간이었지요.
커피는 프랑스에서 ‘카페(café)’라고 불렸어요. 1686년 르 프로코프(Le Procope)를 시작으로 다양한 커피 전문점이 여기저기에 생겨났어요. 이 커피 전문점들은 볼테르, 디드로 등 당대 지식인들이 모이는 비밀의 장소였고, 거기서 벌인 열띤 토론은 프랑스 대혁명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해요. 이처럼 프랑스 커피 전문점은 사상·문학·예술의 산실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지요. 예를 들어 1885년에 문을 연 레 드 마고(Les Deux Magots) 카페에는 피카소, 헤밍웨이, 보부아르, 사르트르, 랭보 등 수많은 사상가, 문학자, 예술가들이 드나들면서 교류했지요. 헤밍웨이 작은 흑백 사진이 걸려 있는 자리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그의 작품을 읽는다면 남다른 감회를 느낄 수 있겠지요.
_피카소, 헤밍웨이 등 수많은 명사들이 드나들었던 카페 ‘레 드 마고’
점심 후 커피 한 잔은 못 참지
한국의 커피 역사는 100년이 조금 넘어요. 1895년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했을 때 그곳에서 커피를 처음 마셨다고 해요. 고종은 1897년 경운궁으로 돌아간 뒤에도 커피를 즐겨 마셨지요. 이 커피는 20세기 초 일반인에게도 보급이 되었고, ‘다방’이 생기면서 더욱 확산되었지요. 이런 다방은 제2차 세계대전 전후에 대부분 문을 닫았다가, 한국전을 계기로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면서 다시 활기를 띄게 됐습니다.
1980년대에는 커피 믹스가 생기고 커피자판기가 생기면서 커피의 대중화가 이루어져요. 그래서 오늘날 커피는 한국인이 가장 즐기는 기호식품 중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많은 직장인들은 점심 후에는 꼭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오후 일과를 시작하지요. 회사가 밀접한 지역에 커피 전문점이 많은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답니다.
Tip 알쏭달쏭 커피 메뉴 이름의 유래는?
■ 에스프레소 : ‘빠르다’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express’에서 유래됐다. 높은 압력을 가하여 빠르게 추출하는 커피이기 때문.
■ 카푸치노 : 이탈리아 프렌체스코회 수도사들의 수도복에 달린 후드를 뜻하는 ‘cappucio’에서 비롯됐다. 커피 위의 하얀 거품이 후드를 덮은 듯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마키아토 : ‘표시한’, 또는 ‘얼룩진’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macchiato’에서 비롯됐다. 커피의 우유 거품에 갈색의 얼룩이 있는 것이 특징이라서 붙은 이름이다.
■ 아포가토 : ‘끼얹다’는 뜻의 이탈리아어 ‘affogato’에서 비롯됐다. 차가운 아이스크림에 뜨거운 에스프레소를 끼얹은 커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