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최원형 생태환경 작가, 서울시 에너지정책위원회 시민협력분과 위원
6월 3일은 ‘세계 자전거의 날’입니다. 자전거는 단순하고, 쉽고, 신뢰할 수 있고, 환경 친화적이면서 지속 가능한 운송 수단입니다. 사람들의 일상에 자전거가 깊이 파고드는 미래를 꿈꾸어봅니다.
자전거가 늘어날수록 숲도 늘어난다
_에펠탑 앞에서 자전거를 타며 휴일을 즐기는 파리 시민들
하늘은 높고 대기는 더없이 청량합니다. 출근길, 도심 한복판의 널찍한 도로 위를 가득 메운 사람들이 자전거를 탄 채 신호를 기다리고 있어요. 선글라스에 헬멧을 쓰긴 했지만 드러난 얼굴에서 밝은 표정을 읽을 수 있습니다. 자전거 그림이 그려진 초록 신호등이 켜지자 자전거 행렬은 썰물처럼 도로 위를 움직이며 멀어집니다. 마치 거대한 용 한 마리가 꿈틀거리듯 이동하는 모습은 익숙한 아침 풍경입니다. 한 무리의 자전거가 사라지고 붉게 포장된 자전거 도로 위로 도장처럼 찍힌 하얀 자전거 그림이 잠깐 보이나 싶더니 이내 새로운 자전거들이 속속 그 자리를 채웁니다.
신호가 바뀌자 자전거를 이용할 수 없거나 좀 먼 거리를 이동하는 사람들을 태운 전기 버스가 출발합니다. 또 한 번 신호가 바뀌자 이번에는 승용차들이 느린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주차할 장소도 점점 줄어드는 데다 시속 30km 이상 속도를 낼 수도 없고 대중교통이나 자전거로 충분히 이동할 수 있으니 자전거 도로의 5분의 1밖에 안 되는 자동차 전용 도로는 언제나 한산합니다. 더 이상 차가 다니지 않는 도로와 주차장을 걷어낸 자리에 숲이 들어섰어요. 숲이 여기저기 생기니 점점 많은 새가 찾아와 도시는 지저귀는 새소리로 정겹습니다.
자전거 공간 확보가 중요한 이유
이런 상상 어떤가요? 그저 꿈같은 이야기일까요? 2020년 1월 파리 시의 안 이달고 시장은 재선에 도전하면서 여덟 가지 공약을 발표했습니다. 공약 가운데는 ‘파리 시내 상젤리제를 비롯한 몇 군데 도심을 제외하고는 자동차 속도를 시속 30km로 제한하겠다’, ‘주차장의 절반 이상을 걷어내고 정원을 조성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지요. 과연 안 이달고를 파리 시장으로 또 만날 수 있을까 싶었지만 파리 시민들은 이 멋진 공약을 선택했습니다. 파리 시민들이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삶의 질에 대한 성찰을 제대로 했던 걸까요? 파리 시는 도로 차선을 줄이고 자전거 길을 늘리며 2024년까지 파리 시내 전체를 자전거로 다닐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목표를 향해가고 있습니다. 2015년 파리에 갔을 때 전철역마다 즐비한 공유 자전거 밸리브를 보고 잊었던 자전거를 떠올렸어요. 곧 자전거로 파리 시를 맘껏 다닐 수 있을 거라니 상상만으로도 즐겁고 부럽습니다. 서울시에도 이제 따릉이가 있고 여러 도시에 공유 자전거가 제법 생기고 있어요. 그렇지만 공유 자전거에도 격이 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닐 수 있는 공간을 얼마나 확보했느냐가 격을 가늠하는 척도이지요.
자전거의 메카가 된 네덜란드
_암스테르담의 출근길에서 자전거의 물결을 보는 것은 흔한 일
네덜란드는 이동 수단 1위가 자전거일 만큼 세계에서 자전거 이용률이 가장 높은 나라답게 사람보다 자전거 수가 더 많습니다. 자전거가 부담하는 운송률은 자그마치 36%에 이르거든요. 암스테르담, 로테르담, 위트레흐트는 세계 자전거의 메카입니다. 출근 시간 암스테르담은 자전거 물결로 가득합니다.
네덜란드는 어떻게 자전거의 메카가 되었을까요? 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네덜란드에서 한 해 교통사고 사망자는 3,000명이 넘었고 400여 명의 어린이가 자동차 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60년대를 지나면서 시민의 발이었던 자전거가 밀려나고 자동차가 도시를 점령하기에 이릅니다. 오늘날 많은 도시가 그렇듯 자동차가 사람과 자전거를 모두 밀어낸 거지요.
그러다 1972년 9월 당시 일간지 De Tijd의 한 기자가 아이를 자동차 사고로 잃게 됩니다. 그 일이 기사화되자 시민들은 분노하며 거리로 뛰쳐 나왔어요. “Stichting Pressiegroep Stop de Kindermoord.” 아이들을 그만 죽이라는 이 외침 아래 모인 이들이 자전거로 도로를 점령합니다. 이후로 어린이 교통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이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고 해요.
게다가 마침 두 번의 오일쇼크가 전 세계에 닥칩니다. 네덜란드 정부는 치솟는 기름 값을 감당키 위해 ‘자동차 없는 월요일’을 한시적으로 시행했어요. 거리에 자동차가 사라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도시에 함께 살면서도 자동차 소음에 파묻혔던 새 소리가 살아납니다. 자동차에 밀려났던 사람들의 발걸음이 살아나며 도시를 되찾았습니다. 인간의 동력으로만 움직이는 데다 교통사고마저 급격히 줄이는 자전거는 사람들의 일상으로 파고 들기에 이릅니다. 네덜란드에 자전거가 뿌리내리게 된 배경에 시민들의 노력이 출발점이었다는 걸 기억해야 할 것 같아요.
더 많은 사람이 자전거를 즐기도록
세계 도시들이 자전거의 매력에 푹 빠졌다는 게 느껴지나요? 자전거는 인류의 놀라운 발명품입니다. 자전거는 인간의 동력으로 움직이며 사람이 다닐 수 있는 정도의 공간만 있으면 어디든 이용 가능한 탈것입니다. 6㎡면적에 자전거를 적어도 10대는 세울 수 있지만 자동차 1대를 주차하려면 그보다 20배나 넓은 11.5㎡의 주차 공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자동차 운행과 상관없이 도로와 주차장은 그 공간을 24시간 점유하고 있습니다. 겨울부터 봄까지 미세 먼지로 마스크와 공기청정기가 필수품이 되어버렸지만 자동차 수는 날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도시에 사는 사람 수가 자동차 대수와는 비교할 수 없이 많은데도 사람이 다니는 길은 도로에 비하면 굉장히 협소합니다. 팬데믹 기간 서울시 따릉이 이용자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지만 자전거 도로 사정은 너무나 초라합니다. 도로 일부를 자전거 길로 만든 곳도 있지만 자전거 도로를 확보하지 못한 곳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좁은 인도를 두고 사람과 자전거가 경쟁하고 있는 게 현실이지요. 탄소 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도, 오염 물질 없는 깨끗한 대기를 위해서도 자전거는 세계적인 흐름입니다. 이제 좀 더 많은 사람이 자전거를 쾌적하게 이용할 수 있는 인프라가 필요합니다. 자전거로 막힘없이 어디든 다닐 수 있도록 자전거 도로를 요구하는 일은 이제 생존을 위한 우리의 권리입니다.
6월 3일은 ‘세계 자전거의 날’입니다. 유엔에 따르면 세계 자전거의 날은 ‘단순하고, 쉽고, 신뢰할 수 있고, 환경 친화적이면서 지속 가능한 운송 수단인 자전거의 중요성, 지속성, 다양성을 확인하는’ 날입니다. 자전거는 거실이나 헬스클럽이 아닌 도로 위를 달려야 합니다. 머릿속이 복잡할 때 자전거를 타면 생각이 정리됩니다. 자동차 대신 자전거가 늘어나면 우리가 사는 도시의 공기가 더 깨끗해질 것이고 도로는 훨씬 여유로워질 겁니다. 자전거를 타든 타지 않든 자전거 도로를 지방 정부에 요구해주세요. 더 많은 사람이 자전거를 즐길 수 있도록 말이지요. 자전거 전용도로는 내가 숨 쉬는 공기가 깨끗해지는 길이며 기후 위기로부터 우리의 미래를 지키는 일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