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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치로
빚어낸 예술, 방짜
방짜유기장 김문익

사진 제공_군포시 방짜유기전수교육관



방짜 유기는 세월이 흘러도 정갈한 빛과 단아한 곡선을 품으며 은은한 멋을 유지한다. 장인의 손끝에서 탄생한 자연스러운 질감, 부딪혔을 때 오래도록 울리는 청아하고 맑은소리…. 

전통 수공예, 방짜유기를 경기도 무형문화재 10호 방짜유기장 김문익과 함께 체험해 본다.

 

방짜유기의 매력


기록에 따르면 놋쇠의 장인을 유장(鍮匠)이라 부르는데 이는 유기(鍮器) 즉 놋 제품을 다루는 장인을 가리키는 포괄적인 명칭이다. 놋은 그 재료에 따라 두 종류로 구분된다. 구리에 아연을 넣은 주동과 아연 대신 주석을 넣은 향동으로 구분되며, 향동이 더 고급 놋쇠로 방짜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방짜유기로 만든 식기는 다양한 장점을 지닌다. 따뜻한 음식은 온기를 오래도록 유지하며, 차가운 음식은 시원함을 지속할 수 있다. 예로부터 독극물을 가려내는 효험으로 왕의 수라에서 독을 판별하기도 했으며 주동과 달리 납과 같은 소량의 불순물도 전혀 들어있지 않으며 살균 효과도 뛰어나다. 최근에는 방짜유기 식기를 사용하면 음식에 미네랄이 흡수되어 부족한 미네랄을 섭취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어, 건강한 식기로 주목받고 있다. 또한 징‧꽹과리 등 풍물에 쓰이는 악기들도 방짜유기로 만든다. 악기의 소리는 장인의 망치질에 따라 고유의 울림이 고르고 오래간다. 구리와 주석의 비율을 정확히 맞춘 놋쇠를 불에 달궈 망치로 두드려 만드는데, 이 과정을 거쳐 조직이 치밀하고 변색이나 변형이 적기 때문이다. 

 

 _방짜유기로 만든 식기
  

70년 한 길을 걷다


김문익 장인은 경남 함양에서 태어났다. 당시 유기 공방에 목탄을 대던 이모부를 따라다니다 12세에 유기장 최두건 공방에 입문 하였다. 함양은 유기 중에서도 악기가 유명한 곳이다. 그는 다른 지역과도 인적 교류를 많이 하는 가운데, 공방에서 13년 동안 유기 기술을 연마했다. 이후 경기 안양에서 평안도 정주 출신 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 이봉주 휘하에 들어가 17년 동안 평북 정주의 납청방짜 기법도 배웠다. 연마한 기법으로 1988년 서울 올림픽과 장애인 올림픽 개막 당시 춤사위에 사용되던 ‘바라’와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악기 등을 다수 제작했다. 그 외에도 1981년부터 1999년까지 다수의 입상과 전시, 1992년 5월 28일 경기도 무형문화재 방짜유기 기능보유자로 지정되며 그 기술을 인정받았다. 김문익 장인의 방짜유기는 다른 방짜유기 보다 주석의 비율을 높여 제작해, 소리의 음역대가 정확해 악기 중에서도 단연 으뜸으로 친다. 

 

 _꽹과리 – 20cm × 20cm

 

 

방짜 유기 기술


방짜유기는 주물에 의한 생산이 아닌 두드려 만드는 전통적 기술이다. 10단계 모두 수작업으로 이루어기 때문에 유장의 노련함에 따라 빛을 발하게 된다. 먼저 구리16냥, 주석 4냥5돈의 비율로 합금하고 조형한 쇠인 바둑을 두들겨서 늘리고 분리한다. 이후 여러 작업을 거치며 불에 달궈 성형으로 형태를 만들고 물에 담그는 담금질로 식힌다. 이때 찬물에 일그러진 형태를 바로잡아주는 벼름질을 하고 마지막으로 겉면을 깎고 다듬는 가질의 단계를 거치면 하나의 방짜유기가 탄생한다. 

전통 방짜 작업의 하이라이트는 심야에서 새벽까지 장정 6명이 하나가 되어 호흡과 리듬을 맞춰 합금과 메질을 하는 장면이다. 망치질 3명, 집게 1명, 풍구질 1명, 쇠달구는 사람 1명이 호흡을 맞추어 정신을 집중해서 쉬지 않고 최소 3시간 이상을 작업해야 한다. 김문익 장인은 지금도 방짜유기 작업에서 두드리기 작업을 할 때 잡념이 들지 않도록 가장 집중한다. 두드리는 리듬과 강약에 따라 그릇과 악기의 질이 미세하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의 장인 정신은 마지막 망치질까지 최선을 다해 집중하는 그 세밀한 손끝에 담겨있다.



전통에서 현대까지


심혈을 기울인 작업 끝에 탄생한 꽹과리와 징 등의 악기는 국악인들 사이에서 최고로 통한다. 1986년 작고한 전설적인 쇠잡이 김용배 선생이 그의 꽹과리를 썼으며, 현재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사물놀이패인 김덕수 사물놀이패도 그가 만든 징과 꽹과리를 이용하고 있다. 다른 악기와 소리가 다르다는 평가는 김문익 장인이 체득한 노하우와 그만의 예민한 감각에서 비롯되었다. 사물놀이용과 무속용의 소리가 다 다르다는 그는 유기장의 망치질 정도에 따라 사물놀이용은 산뜻하고 무속용은 요란한 느낌이 든다고 한다. 오랜 시간 방짜유기를 두드렸던 손끝에서 체득한 그만의 비결이다. 

과거만큼은 아니지만 요즘도 유기를 찾는 곳은 꾸준하다. 주문이 들어오는 물량을 보면 불기 60%, 가정 반상기 20%, 사물놀이용 악기가 20% 정도인데 반상기의 인기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건강한 그릇이라는 인식이 퍼지며 주목받고 있고, 혼수로 유기 반상기를 구비하는 사람들도 꽤 늘어났다. 그릇은 관리만 잘해도 다음 세대가 쓸 수 있다.

장인의 기술이 전수되어야 한다는 바람은 방짜 유기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도 원하는 바다. 전통이 꾸준히 사랑받고 있으니, 경기 군포에 국일 공예사 공방을 운영하며 방짜유기 생산과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다. 군포시 또한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10호인 김문인 장인의 작품과 기술을 유지‧전수하고자 2018년 방짜유기전수교육관을 개관했다. 방짜유기의 명맥을 잇고 활성화하기 위해 방짜유기 체험 활동과 전시‧홍보 등으로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낮에는 방짜에 반사되는 빛 때문에 일하기 힘들어 주로 밤에 작업을 했다는 방짜유기장 김문익 장인. 그가 놋쇠를 다룬 지도 어언 70년이 되었다. 유수의 세월을 등에 업은 그의 뒤를 전수자인 조카 김춘복 씨가 37년째 따르고 있다. 방짜유기전수교육관에는 이춘복 씨의 아들 이광운 씨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방짜유기의 매력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다음 세대의 활약이 기대된다.

 

 _김문익 장인이 전수자 조카 김춘복 씨와 완성된 악기 소리를 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