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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는 김치다

한국인들의 식탁에 절대 빠질 수 없는 발효음식 ‘김치’. 2015년 타임지는 김치를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식품 6가지’ 중 하나로 소개했다. 2017년 영국의 가디언은 5대 슈퍼푸드에 김치를 포함했다. 이런 김치의 우수성 때문일까. 호시탐탐 우리의 김치를 노리는 일들이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김치 vs 기무치


김치가 세계에 알려진 계기는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이었다. 세계인의 축제에 우리나라 대표 음식인 김치가 알려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런데 김치가 공식 식품으로 지정되자 일본이 갑자기 선수를 치고 나왔다. 일본은 1970년대부터 일본의 채소 요리 중 하나인 아사즈케와 비슷한 방식으로 만든 절임음식을 기무치라고 불렀다. 그런데 김치의 원조가 기무치(kimuchi)라며 이를 상품화해 세계에 내놓은 것이다. 이런 가운데 1996년에는 국제식품규격(CODEX)의 표준으로 ‘기무치’를 등록하기 위해 일본이 국제심사단에 로비했다는 말이 돌기 시작했다. 진실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이 일로 우리나라에서는 김치 규격화 작업에 돌입하게 되었다. 마침내 2001년 제24차 국제식품규격위원회 총회는 ‘김치(Kimchi)’를 공식적인 명칭으로 통일하도록 조치했다. 이는 곧 김치가 한국의 식품으로 인증받은 역사적 순간이기도 하다.

김치와 기무치의 제조방법은 엄연히 다르다. 재료는 물론 담그는 방법과 숙성 과정 등 여러 면에서 차이를 보인다. 김치는 고춧가루와 마늘 젓갈 등의 양념으로 버무리는 음식으로 젖산균에 의해 발효과정이 있는 건강식품이다. 반면 일본의 기무치는 정제염으로 간을 한 절임 배추에 화학첨가물이 들어간 겉절이 식품이다. 젖산 발효과정도 없고, 산도 조절제로 신맛을 내어 김치에 비해 영양이나 기능 면에서 현격히 떨어진다.

 

김치 vs 파오차이


김치의 수난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최근에는 중국이 김치에 대한 종주국 행세를 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쓰촨 지방의 파오차이가 김치의 원조라고 주장하며, 심지어 당나라 장군 설인귀가 자신의 고향식품인 절임채소를 한반도에 들여온 것이 김치의 시초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파오차이 역시 김치와는 전혀 다른 음식이다. 파오차이는 소금에 절인 채소를 바로 발효하거나 끓인 뒤 발효하는 쓰촨 지방의 염장 채소이다. 김치보다는 독일식 양배추 피클인 사우어크라우트(Sauerkraut)에 가깝다. 하지만 중국은 김치를 ‘한국 파오차이’로 부르는 등 김치의 파오차이화를 일삼고 있다. 특히 2020년 11월엔 중국이 국제표준화기구(ISO)에서 파오차이가 채택되었다며 대서특필했다. 이를 알고 우리 정부에서는 CODEX에 등재된 김치 표준과의 혼동을 막기 위해 2차례에 걸쳐 의견을 제시했고, 이를 반영하여 국제표준화기구의 문서가 최종 승인되었다. 해당 문서(ISO/FDIS 24220)를 보면 “이 문서는 김치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라고 정확히 명시되어 있음에도 중국은 중요한 진실은 빼버린 채 파오차이가 표준이 되었다는 반쪽짜리 사실만 알리는 파렴치한 행동을 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중국은 작년 초 중국에서는 구독자 1,400만 명을 보유한 유튜버가 김치 담그는 영상을 만들고 중국의 음식이라 소개해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중국 내에서는 유튜브를 접속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콘텐츠가 소개되었다는 점은 여러모로 의구심을 자아낸다. 구독자 530만 명을 보유한 국내 먹방 유튜버가 김치가 한국문화라고 설명했다가 중국 네티즌의 비난을 받았으며 중국 소속사로부터 계약해지를 통보받기도 했다. 또한 중국 공장의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배추가 절여지는 ‘알몸 배추’ 영상이 공개되면서 김치의 위상과 이미지를 저하시키고 있는 등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한국의 정체성, 김치를 지켜라!


김치는 누가 뭐래도 한국 음식이다. 한국의 김장문화는 201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을 정도로 김치는 음식을 넘어 우리나라의 고유한 문화를 대변하는 정체성인 셈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김치에 대한 학문적 과학적 검증은 빈약한 것이 현실이다. 작년에 김치 종주국 논란에 대한 토론회가 열렸는데 참가한 전문가 대다수가 우리 김치와 중국 파오차이가 무엇이 다른지, 또한 그 차이는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설명하지 못했다고 한다. 학계에서조차 김치와 다른 채소 절임 식품의 차이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현실이다. 어처구니없는 주장일지라도 이에 맞서 정확한 역사·문화적 연구와 과학적 데이터로 무장해야 한다.

국제식품규격의 명시도 세밀하게 볼 필요가 있다. 2001년 당시 CODEX의 규격상 김치는 ‘다양한 품종의 배추(Chinese cabbage)와 기타 채소들을 이용해 붉은색을 내고 아삭한 씹힌 맛이 나는’ 식품이라고만 명시되어 있다. 우리의 김치는 배추김치만 있는 게 아니다. 총각김치, 열무김치, 갓김치 등 종류만 300여 가지가 된다. 하지만 CODEX의 규격에 따르면 백김치는 김치가 아니게 되어 버린다. 특히 다양한 품종의 배추가 중국식 배추로 명시되어 있는데, 이는 ‘Kimchi Cabbage’로 변경할 필요가 있다. 이런 규정을 개정하기 위한 노력도 진행 중이라고 한다. 김치의 위대함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니 이젠 내실을 다져야 할 것이다. 제2의 기무치와 파오차이가 등장할 명분을 주지 않는 것이 김치를, 한국의 정체성을 지키는 일이리라.

 

 _미국 뉴욕 타임스퀘어의 대형 전광판에 송출된 김치 광고(사진 제공: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