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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돌파를 위한
‘큰 정부’와 시장의 협업

한국 경제의 재기를 위해 필요한 조건은 정부와 시장 사이에 금을 긋는 경직적 이분법이 아니라 유능하고 실용적인 정부와 공정하고 효율적인 시장을 유연하게 혼용하는 경제운용이다. 

 

글. 최남수 서정대 교수, 전 YTN 대표이사 

 

큰 정부의 귀환과 위기 돌파 노력

 

코로나19 사태로 나타난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큰 정부의 귀환’이다. 각국 정부는 위기 돌파를 위해 경제 전반에 대해 강한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다.

먼저 미국. 지난해 3월에 나온 갤럽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미국인 54%는 팬데믹 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정부의 역할 확대를 지지하는 비율은 이조사가 시작된 1992년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이다. 실제로 미국 정부가 경기 회생을 위해 써온 정책은 재정과 통화 정책의 ‘수문(水門)’을 활짝 열어 대규모 자금을 경제에 긴급 수혈하는 전통적인 케인지안 방식이었다. 특히 미 정부와 의회는 국가 주도 산업부흥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영국도 상황은 마찬가지. 보리스 존슨 보수당 정부조차 국가 주도로 ‘녹색 자본주의’를 착근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예컨대 영국 정부는 오는 2030년까지 휘발유 자동차 판매를 금지하겠다고 공언했다. 기후 변화 대응이 워낙 중요한 과제인 만큼 시장을 중시하는 보수당 정강을 역주행하는 것을 불사하고 있다. 한국 경제도 예외가 아니다. 전례 없는 팬데믹 위기 국면에서 소비와 투자 등 민간의 경제 활동이 꽁꽁 얼어붙은 자리에 정부와 중앙은행이 돈을 풀어 온기를 공급해왔다. 더 큰 틀에서는 위기 극복을 넘어 경제와 사회구조의 대전환을 위해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을 주축으로 한 한국판 뉴딜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와 시장을 대치 관계로 보지 말라

 

새 정부가 출범하는 3월 이후 경제 정책의 방향타는 어떻게 잡혀야 할까? 발언권이 강해진 정부는 시장과 어떤 관계를 설정해야 할까? 크게 세 가지를 짚어보려 한다.

 

첫째, 팬데믹의 ‘여진’은 최소한 1~2년 이상 더 이어질 것이라는 게 지배적 전망이다. 그런 만큼 경제와 보건 안보 위기를 안정화하기 위한 ‘큰 정부’의 역할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게다가 국가 간 산업정책 경쟁이 가열되고 있는 상황에서 기후변화 대응, 양극화 해소 등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하나둘이 아니다. 그런 만큼 새 정부에 들어서더라도 ‘글 로벌 신국가주의’에 흐름에 올라타는 것은 불가피할 것이다.

 

둘째, 이를 감안하면 시장과 정부를 대치 관계로 보는 일부의 논쟁은 시의적절하지도 않고 생산적이지도 않다. 그동안 한국 경제는 어느 진영이 정권을 잡든 친기업 대 친노조 등 성향에서 상대적 차별성을 보였을 뿐 기본적으로는 정부의 발언권이 압도적으로 강한 상태를 유지해왔다. 원론적 시장경 제를 제대로 운영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따라서 ‘시장이냐 정부냐’를 가르는 이분법적 사고는 어색하고 낡은 기준에 불과하다. 포트폴리오 짜듯 정부와 시장을 어떤 비중으로 섞어 혼합적 경제 운영을 할 것인지 정하는 실용적 방안이 솔직한 접근 방식이다.
 

유능하고 실용적인 정부와 효율적인 시장을 위해

 

셋째, 시장과 정부의 ‘분업’은 경제의 변화에 맞춰 유연하게잘 조정해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는 세계적 경제학자인 마리 아니 마추카토가 역설한 것처럼 민간의 활력 제고를 선도하는 기업가형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실리콘 밸리가 미국 정부의 대규모 연구개발 투자를 자양분으로 해 꽃을 피웠듯이 4차 산업혁명과 기후변화 대응 등 분야에서 정부 투자는 민간이 경쟁력을 강화하는 길을 열어주는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위기 대응용 카드로 선택된 ‘큰 정부’는 영구불 변의 조건일 수는 없다. 코로나 상황이 안정되고 경제가 회복돼가면 큰 정부는 출구 전략을 구사하면서 민간의 활력이 되살아날 공간을 넓혀주는 게 필요하다. 국가 및 가계부채 증가, 자산 버블, 물가상승 등 문제가 연착륙하도록 하는 정책을 펴면서 점차 시장의 영역을 키워줘야 한다.

한국 경제의 재기를 위해 필요한 조건은 정부와 시장 사이에 금을 긋는 경직적 이분법이 아니라 유능하고 실용적인 정부와 공정하고 효율적인 시장을 유연하게 혼용하는 경제운용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