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적인 아트테크를 위해서는 미술품 옆에 부착되어 작품의 정보를 간결하게 기입해둔 ‘캡션’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캡션만 잘 읽을 수 있다면 그림의 정보를 파악하는 데 이미 반 이상은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글. 이지혜 아트 컬렉터, <나는 미술관에서 투자를 배웠다> 저자
사진제공. 서울옥션
미술 시장의 급성장 부른 ‘성투’
3,294억 원. 미술품 경매 시장의 점유율 91%를 차지하고 있는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이 지난해 만들어낸 낙찰 총액이다. 이는 역대 최고 규모임과 동시에, 지난해와 비교해보더라도 매출 대비 3배 상승한 수치를 기록한 것이다. 가장 최근인 올 2월 서울 옥션 메이저 경매에서는 일본 작가인 ‘쿠사마 야요이(Kusama Yayoi)’의 조각 작품 ‘비너스 상’이 경합 끝에 44억 원에 낙찰되는 등 미술 시장이 활황의 노른자위를 점령하고 있는 것은 현재 진행형이라 할 수 있다.
미술 시장이 이렇게 단기간에 급성장한 비결은 무엇일 까? 아마도 이 해답은 아트테크를 막 시작한 신입생들의 학습 목표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성투(성공한 투자)’다. 미술품이 실물자산의 대체투자처로 주목을 받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미술 시장의 핫 키워드는 ‘투 자’가 되었다. 신성한 예술품을 투자의 수단으로 본다는 비판적인 시선들은 여전히 존재하나, 미술품은 음악이나 무용과는 달리 유일하게 거래가 가능한 실재적 예술 이다. 즉,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감상의 즐거움과 더불어 실물자산으로써 양도차익을 노릴 수 있는 가장 매력 적인 투자수단이 바로 미술품인 것이다.
쿠사마 야요이, 무한 그물에 의해 소멸된 비너스 상(1998)
캡션으로 알 수 있는 것들
날로 그 높이를 더해가는 미술 시장의 위치와, 아트테크의 무궁무진한 매력까지 읽어 내려가다 보면 묘한 조바 심이 들 수도 있다. 이렇게 뜨거운 투자처를 두고도 낯설고 막연하게만 느껴지는 마음 탓일 것이다. 하지만 성급해져서는 안 된다. 원래 어떤 분야에서든 ‘기본기’가 만고의 진리인 것처럼, 성공적인 아트테크를 위해서도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림을 대하는 기본 전술을 익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미술품 옆에 부착되어 작품의 정보를 간결하게 기입해둔 ‘캡션’을 이해해봄으로써 거래에 필요한 주요 요소들을 짚어보도록 하겠다.
캡션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들은 다음과 같다. 작가명, 작품명, 제작연도, 재료, 크기, 소장처 등. 여기에 작가의 생년과 몰년, 그리고 ‘프로비넌스(Provenance)’가 추가 되기도 한다.
프로비넌스는 작품의 이전 소장자의 이력을 담고 있어, 작품을 대여해서 열린 전시나 경매 출품작의 캡션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소장자가 저명한 인물이거나 컬렉션의 가치가 높을 경우 작품의 가치를 상승시키는 요소가 된다. 또한 ‘전시 이력(Exhibited)’이나 작가의 도록에 삽입된 이력(Literature)은 작품의 진위성을 뒷받침하는 데 중요한 증명 요인이 될 뿐만 아니라 시장 가치를 증폭시키는 기능을 한다. 만약 우리가 두 작품 중 한 작품을 최종 선택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면, 위와 같은 이력 사항을 갖춘 작품을 선택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작품 크기도 주요 고려사항이다
캡션에서 주의 깊게 봐야할 또 한 가지는 작품의 크기 이다. 작품의 크기를 가리킬 때 센티미터(cm)와 인치 (inch)를 저마다 혼용해서 사용하고 있으므로 단위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설마 그 차이를 육안으로 가늠하지 못할까 싶겠지만 벽의 크기와 층고에 따라서 그 크기는 다르게 느껴질 뿐만 아니라, 액자를 맞추면 작품이한 폭 정도 더 커지기 때문에 실제 규격을 파악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 전시된 작품을 우리 집으로 가져와서 막상 설치하려고 보면 염두에 두었던 공간보다 작품이 너무 크거나 작아서 결국 다른 자리를 찾아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림의 크기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겠다. 미술품의 크기 단위는 ‘호’라고 하는데, 같은 호수라도 인물화 (F)냐, 풍경화(P)냐, 해경(해변 풍경)화(M)냐에 따라 그크기가 달라진다. 게다가 작가에 따라 자신에게 적합한 사이즈의 캔버스를 따로 제작하기도 하고, 그림의 호수가 일정한 비율로 커지지 않기 때문에(다시 말해, 1호의 100배 큰 것이 100호가 아니다.) 입문자들은 호를 가늠 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추천하는 방법은 복잡한 그림의 호수를 외울 필요 없이 캔버스 규격표를 핸드폰에 저장해두고 필요할 때마다 바로바로 확인하는 것이다.
아예 자주 거래되는 호수를 기억해두는 것도 좋다. 아파트 거실에 둘 TV의 크기를 선택할 때 눈이 편안한 시청 거리를 고려하는 것처럼, 벽면을 차지하는 그림에도 감상을 위한 적정 거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림이 주로 설치되는 일반 가정집의 면적을 기준으로 작품의 ‘황금 사이즈’는 작게는 20호에서, 크게는 80호 정도다. 이보다 더 커지면 작품을 설치할 더 큰 벽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만큼 작품에 대한 수요는 줄어들게 된다. 다시 말해, 일반적인 주택 면적에서 수용할 수 있는 크기의 작품을 선택하는 것이 차후 작품을 되파는 시점에 유리하다.
에디션을 통해 희귀성을 판단하라
다시 캡션 이야기로 돌아가서 ‘에디션(Edition)’에 대해 알아보자. 판화나 조각, 사진 작품을 한정된 수량의 복제 미술품을 뜻하는 에디션 역시 캡션에서 확인해볼 수있다. 반복해서 찍어내는 에디션의 총 개수와 각 작품의 순번은 분수로 표기한다. 예를 들어, 4/50이라면 총 50개의 에디션 중 네 번째 작품이라는 뜻이다.
가끔 에디션 넘버 앞에 ‘A.P’라고 적힌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에디션의 총 개수와는 별도로 제작한 작가 소장용(Artist Proof)이라는 뜻이다. 통상 적으로 A.P 작품은 에디션의 개수 10~15% 이내로 제작된다. 한편, ‘P.P’라고 적힌 것은 프린 팅을 담당한 제작사 소장용(Printers Proof)이거나 선물용(Present Proof)이라는 의미다.
판화의 개수는 희귀성의 척도라고도 볼 수 있다. 따라서 총 개수를 정해두지 않고 대량생산 하는 ‘오픈에디션’보다는 소수로 한정 생산된 판화의 시장가치가 당연히 높다. 미술 경매에서 작가가 작고한 후 생산된 ‘사후 판화’가 출품되기도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작가가 생존할 때 작업된 판화와 사후 판화의 가치는 하늘과 땅 차이다. 생전 판화에는 작가가 직접 제작했거나 제작에 참여한 가치가 반영되어 있을 뿐 아니라 작가의 서명이 있기 때문이다. 단지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는 의미에서라면 사후 판화로도 충분하지만, 아트테크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생전 판화를 선택하는 것을 추천한다.
지금까지 공부한 것들을 테스트해보자
캡션을 구성하는 각 요소를 익혔다면, 아래의 캡션 예시를 보며 작품의 정보를 파악해보자.
이 캡션에서 알 수 있는 정보는 다음과 같다. 이지혜 작가(1986년~ )가 2021년 제작한 작품 <나는 미술관에서 투자를 배웠다>는 높이 116cm, 너비 91cm로, 캔버스 사이즈로는 인물화 50호에 해당된다. 총 250개 한정 발매된 에디션의 석판화(Lithograph) 작품이며 P.P로 제작된 25점 중 일곱 번째다. 본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적이 있다.
사람으로 치면 ‘주민등록증’이라고 할 수 있는 캡션만 잘 읽을 수 있다면 그림의 정보를 파악 하는 데 이미 반 이상은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다음 호에서는 두 번째 전술로 그림의 가치와 가격을 결정짓는 요소를 이해해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