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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셔츠’에서 ‘와이’는
무슨 뜻일까요?

오늘날 우리가 무심코 쓰고 있는 외래어 중에는 도무지 그 어원을 유추하기 힘든 것들이 많다. 그중에는 일본인들의 잘못된 발음 때문에 이상하게 변해버린 경우도 적지 않다. 일제강점기 순국열사들의 충정을 기리는 3월을 맞이해, 이런 문제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글 장한업 이화여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와이’는 ‘화이트’였다

 

직장인이라면 ‘와이셔츠’라는 단어는 다 압니다. 남성 정장 에서는 뺄 수 없는 옷이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다 아는 ‘와이 셔츠’에서 ‘와이’가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면 제대로 대답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어 대문자 ‘와이(Y)’를 떠올리지요. 그리고는 목부터 가슴으로 내려오는 선이 영어 Y자와 비슷해서 그렇게 부르는 것 같다고 대답하지요. 이 추정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틀린 거예요. ‘와이’의 어원은 영어 ‘화이트(white)’니까요.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히 모르지 만, 오래전부터 서양인들은 양복 안에 화이트셔츠를 입고 거기에 넥타이를 맸어요. 이들이 동양에 들어올 때도 그랬지요.

 

우리보다 서양인을 먼저 경험한 일본 사람들은 이 셔츠를 ‘와이셔츠’라고 불렀어요. 그들이 이렇게 부른 이유는 ‘화이트’ 라는 발음이 그들에게는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지요.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일본어에는 모음이 다섯 개밖에 되지 않아서 영어 단어를 정확히 발음하기 어려워요. 그래서 ‘화이트’ 를 ‘와이’라고 발음한 것이지요. 그리고 이것이 한국에 그대로 들어왔고, 우리는 영문도 모른 채 ‘와이셔츠’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지요.

 


 

‘머신’에서 ‘미싱’으로, ‘러닝’에서 ‘난닝구’로

 

‘와이셔츠’ 하니 ‘러닝셔츠’도 생각나네요. ‘러닝셔츠(running shirts)’는 ‘운동 경기를 할 때 선수들이 입는 소매 없는 셔츠 또는 속옷’을 말하지요. 그런데 이중에서 운동선수의 소매 없는 셔츠는 이해가 되지만 속옷은 잘 이해되지 않아요. 왜냐하면 속옷은 러닝, 즉 달리기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니까요. 또 한 가지 이해가 되지 않는 건 ‘러닝’을 ‘난닝구’라고 하는 거예요.

이 또한 일본 사람들의 잘못된 발음 때문이에요. 이처럼 일본 사람들의 잘못된 발음을 그대로 따라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아요. ‘미싱’도 그중 하나지요. 50, 60대 이상이면 ‘미싱’, ‘부라더 미싱’이라는 단어를 다 아실 거예요. 요즈음은 거의 사용하지 않지만, 수십 년 전만 해도 웬만큼 사는 집이면 이 ‘미싱’을 한 대씩은 꼭 가지고 있었지요. 우리의 어머니들은 이 기계로 바지 길이도 줄이고 해진 곳을 수선하기도 했지요. 이 단어의 정확한 영어표현은 ‘소잉 머신(sewing machine)’이에요.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바느질 기계’지요. 일본 사람들은 여기서 ‘소잉’을 빼고 ‘머신’을 ‘미싱’이라고 발음했어요.

 


 

‘브라시에르’가 ‘브라자’가 되기까지

 

우리가 흔히 ‘브라자’라고 하는 여성 속옷도 일본식 발음이에요. 이 단어의 어원은 프랑스어 ‘브라시에르(brassière)’인데, 13세기에 생긴 이 단어는 본래 ‘몸에 착 달라붙는 여성용 내의’를 가리키다가, 19세기 중반에 ‘고운 천으로 만든 긴 소매가 달린 짧은 유아용 옷’을 가리켰어요. 이 단어가 오늘날과 같은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은 1910년대 초반이지요. 당시 미국 사교계 한 여성은 새로 구입한 옷을 입고 연회장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이 옷을 입으면 가슴이 너무 훤히 비친다는 것이었 어요. 여러 가지로 고민하던 그녀는 궁여지책으로 손수건 두 장을 묶어서 가슴을 가렸어요. 그녀의 걱정과는 달리 연회장에 모인 사람들이 그녀의 기발한 착상에 큰 관심을 보였어요. 이런 관심에 영감을 얻은 이 여성은 1914년 미국 특허 청에 특허를 냈지만 장사 수완이 별로 없어서인지 큰돈을 벌지 못했고, 얼마 후 그 특허를 한 코르셋 회사에 헐값으로 팔아버렸어요.

 

한편, 한국 여성들은 1930년대에 양장을 입으면서 브래지어를 착용하기 시작했어요. 이 브래지어가 대중화된 것은 1950년대 ‘비너스’, ‘비비안’ 등 속옷 상표가 등장하면서부터였지요. 그때부터 ‘브래지어’는 일본어식 ‘브라자’로 불리기 시작한 것이에요. 일본어라고 해서 다 배척할 필요는 없지만 그 단어가 잘못된 것이라면 고쳐서 부르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