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생사를 초월해 지켜낸 약속
산악인 엄홍길

삶은 유한하지만 신성한 약속은 죽음을 뛰어넘는다. 산악인 엄홍길의 인생에서 히말라야 16좌 등정이라는 위대한 업적 이상으로 중요했던 것은 먼저 간 동료들을 두고 다짐했던 약속을 지키는 일이었다.

  

교육으로 네팔에 희망을 심다


대자연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기도 하지만 거꾸로 그 생명을 거둬가기도 한다. 히말라야에 도전해본 산악인들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다. 5,000m의 베이스캠프까지만 가도 혈중 산소포화도는 90%로 떨어진다. 8,000m를 넘으면 60%로 뚝 떨어지는데, 피가 찐득해지고 눈은 튀어나올 것 같다. 서 있기만 해도 목숨이 위태롭다.

산악인 엄홍길은 그 위험한 히말라야 8,000m급 14개 봉우리를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완등한 후, 다른 8,000m급 위성봉 두 개까지 등정하여 16좌 등정에 성공한 우리나라 산악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수많은 시련과 좌절을 거쳐 도전과 극복의 기록을 써내려간 그의 이야기는 영화나 다큐멘터리로도 제작되어 많은 이들에게 진한 감동을 전해준다.

 

그런 그가 이제 남은 인생에서 17좌 등반에 도전한다고 밝혔다. 그것은 바로 ‘네팔 교육사업’이다. 네팔을 ‘제2의 조국’이라 부를 정도로 특별하게 생각하는 그는 지금까지 총 16개의 학교를 네팔에 세웠다.

“단지 학교를 세우는 것뿐만 아니라 교사들의 월급을 주고 건물을 유지·보수하며 장학사업까지 벌이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열악하고 척박한 환경 속에서 제대로 된교육이나 의료 혜택도 못 받고 꿈도 희망도 없이 살아가던 아이들에게는 교육만이 배고픔을 해결하고 현재의 환경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이라 믿었습니다.”

 


 

먼저 떠난 동료들을 위한 다짐


그가 이 사업에 뛰어든 계기는 죽음의 문턱에서 히말라 야의 신들과 한 약속 때문이었다. 1985년부터 22년 동안 38번 히말라야에 도전했다. 그 과정에서 산악인 6명, 셰르파 4명 등 모두 10명의 소중한 친구들을 잃었다. 그 자신도 치명적인 부상을 당하거나 살인적인 추위 속에서 죽음의 공포와 싸워야 했던 적이 부지기수였다.

“16좌 성공을 앞두고 목숨이 위태로웠던 순간, 히말라야의 신에게 간절하게 ‘살려달라’고 빌었습니다. 내 목표를 달성하게 해주시고, 여기서 무사히 내려가게 해주시면 남은 인생은 먼저 간 동료들을 위해서라도 제가 받은 것을 주위에 나누면서 봉사며 살겠다고.”

 

또한 1986년 그가 두 번째 에베레스트 도전에 나섰을때 식량 보급을 하던 셰르파, 술딤 도르지가 추락 사고를 당한 일도 그가 그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만든 한(恨)이자 원동력이었다. 당시 열아홉 살의 어린 셰르파였던 술딤 도르지는 열여덟 살의 신부와 홀어머니를 세상에 남겨두고 숨을 거뒀다. 그는 아직도 바위 위에 남겨진 그의 선명한 핏자국과 찢어진 옷자락을 잊지 못한다.

 

엄홍길 대장은 산악인 은퇴 후 2008년 엄홍길휴먼재단을 설립해 사랑과 봉사의 정신을 설파하며 종횡무진 활동한 끝에 드디어 2010년 술딤 도르지의 고향 팡보체에 1호 학교를 세울 수 있었다. 현재 16개 휴먼스쿨에 재학 중인 학생은 6,000명이 넘는다. 졸업 후엔 대부분 생활 전선에 뛰어들지만 대학에 진학하면 장학금을 주고 필요한 경우 기숙사비나 하숙비도 지원한다.

“네팔 현지 마을에서 학교발전협의회를 만들긴 했지만 그곳도 경제적 여력이 없어서 재단 예산으로 꾸려가야 합니다. 그런데 최근 코로나19 여파로 기존에 후원하시던 회원 분들이 많이 빠져나가서 어려운 상황이죠. 요즘은 자나 깨나 어디서 후원받을 데 없을까 그 생각뿐이에 요.(웃음)”

 

 


 

산에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라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도전에 성공한 덕분일까. 그에게는 많은 이들이 더 이상 진전할 곳이 안 보이는 막다른 길에 이르렀을 때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물어보곤 한다. 그는 산이 자신에게 그러한 물음에 대한 답을 주었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살면서 편하고 좋은 길만 갈 순 없잖아요. 결국 우리 인생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성에 대한 도전의 연속입니다.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는 ‘나만 힘든 것이 아니다’라고 먼저 떠올려야 합니다. 그 자리에서 영원히 정지되어 있을 순 없습니다. 긍정적인 생각과 자신감을 가지고 어떻게 그 어려움을 빨리 벗어나느냐가 중요합니다.”

 

여기서 끝이라고 생각하면 질 수밖에 없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더 크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시련을 극복해내야만 하는 것, 그것이 산이 그에게 가르쳐준 인생의 지혜였다. 그리고 만약 어떤 문제에 부딪혀 가슴이 답답하고 괴로울 때는 ‘산에 올라가보라’고 조언한다. 혹자는 산악인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뻔한 말이 아니겠느냐고 생각하겠지만 그 말을 하는 그의 얼굴은 형언할 수 없는 자신감과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산을 오르다 보면 당연히 숨이 차고 헉헉거리게 되지만 그 고통을 참고 어떻게든 정상에 도달했을 때의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거기서 자신의 새로운 내면세계를 들여다보고 자신과 많은 대화를 하는 것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굉장히 큰 자산이 됩니다.”

 


 

끝없는 도전, 영원한 청춘 


지난해 12월 1일, 엄홍길 대장은 대한적십자사로부터 ‘적십자박애장 금장’을 수상했다. ‘적십자박애장 금장’은 공평무사하게 인류애를 발휘하여 위난에 처한 인명 구제 및 안전 도모, 불우한 자의 복지증진에 탁월한 공로가 있는 자에게 수여되는 포상이다. 대한적십자사는 엄홍길 대장의 네팔 교육사업뿐만 아니라 2015년 네팔 지진 피해 구호 활동, 그리고 최근에는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과 취약계층 가정에 도시락을 선물해주었던 ‘1004가 전해주는 황금도시락’ 캠페인에 참여한 일도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황금도시락 캠페인은 어느 방송국에서 의뢰가 들어와 처음 시작하게된 것이었습니다. 방송이 나가고 나서 이렇게 호응이 뜨거울 줄은 예상 못했어요. 처음에는 서울과 경기도 지역에서만 하다가 나중에는 전국적으로 확대가 되어 저도 굉장히 큰 보람을 느꼈던 사업입니다.”

 

그는 요즘에도 산을 자주 오른다. 가장 자주 가는 산은 집에서 가까운 북한산이다. 산에 가면 답답했던 가슴도 뻥 뚫리고 스트레스도 해소된 다. 실제 산도 좋지만 그에게 남은 마지막 산은 ‘엄홍길휴먼재단’이라고 한다. 이 재단을 통해 세운 교육사업의 목표를 이뤄가면서, 어떻게든 그 옛날의 약속을 지켜나가는 것이 남은 인생의 소망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면 지난 3년간 중단됐던 ‘DMZ 평화통일 대장 정’도 다시 시작할 계획입니다. 전국에서 100여 명의 남녀 대학생들을 선발해 휴전선 155마일을 행군하는 프로젝트인데, 이를 통해 이 땅의 청년들에게 분단 조국의 역사적 교훈과 통일의 의미를 되짚어보게 하고 싶습니다.”

그의 나이도 어느덧 63세. 하지만 그의 도전은 여전히 청춘의 푸른색을 띠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