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인생이란 어디로 흘러갈지 예측하기 참 어렵다. 기린을 사랑하던 동물원 사육사가 영도에 새로운 커피 문화를 꽃피운 카페의 사장이 되었으니. 신기카페 이성광 대표가 사랑하는 영도와 커피 이야기를 들어본다.
사육사 청년이 카페 사장이 되기까지
커피와 카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제 부산의 영도를 주목하고 있다. 기장 오시리아의 오션뷰 카페들이 지나치게 말쑥한 휴양지 리조트 같은 느낌이라면 영도의 카페들은 그리스 산토리니의 소박한 어촌 마을 카페 같은 정취를 풍긴다. 스타벅스 같은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조차 없었던 카페 불모지 영도에서 처음 유명세를 탔던 곳이 바로 신기산 업의 신기카페다.
이곳을 운영하는 이성광 대표는 삼십대 중반의 청년 사장 이다. 처음 카페 문을 열기 전만 해도 커피에 대해 전혀 몰랐던 동물원 사육사였다고. 그는 어렸을 때부터 동물을 사랑해 사육사가 됐고 용인에서 2년 정도 일하며 인정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2009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금속 방울 제품을 만들던 회사를 그의 형이 물려받으면서 그의 인생에도 큰터닝 포인트가 찾아왔다.
“형은 빛에 허덕이던 회사를 물려받아 뛰어난 사업수단을 발휘해 회사를 다시 일으켰습니다. 회사를 확장하면서 옛건물을 허물어 그 자리에 신사옥을 짓고 직원 카페를 만들었는데 저에게 한 번 운영해보지 않겠냐고 제의하더군요.”
환상적인 야경으로 입소문 타다
신사옥의 일부 공간에 불과했던 직원 카페였지만 기왕 시작한 카페이니 만큼 제대로 해보고 싶었다. 오픈 초기에 들었던, ‘커피가 맛없다’는 불평도 그의 오기를 불러일으켰다. 일본을 비롯해 몇 군데에서 커피를 공부하며 1년을 보냈고 최상의 원두를 찾기 위한 연구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저희는 영도 토박이어서 영도에 대한 애정이 컸습니다. 좋은 카페를 만들었으니 영도 주민들도 함께 이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외부 손님도 받아들였지요.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더 많은 손님들이 몰려들어 신사옥 전체로 카페를 확장한 것입니다.”
그의 말처럼 신기카페는 루프탑에서 바라보는 원도심과 부산항의 야경이 환상적이라는 입소문이 나서 유명해졌고 이제 인스타 그래머들의 필수 방문지로 자리 잡았다. 그 후 도시재생 붐과 맞물려 영도의 원도심에는 저마다 다양한 개성을 뽐내는 카페들이 들어섰고, 영도는 곧 부산의 커피 성지로 떠올랐다. 실내수영장을 개조한 ‘젬스톤’, 옛 목욕탕 굴뚝을 그대로 살린 ‘카페 드 220볼트’ 를 비롯해 신기산업이 새롭게 선보인 ‘신기숲’도 폐유치원을 개조한 카페다. 최근에는 세계 바리스타 챔피언을 배출한 동래 온천장의 커피 명가 ‘모모스’도 영도에 분점을 냈다. 2019년부터는 영도의 카페들이 힘을 합쳐 영도의 커피 문화를 널리 알리는 커피 페스티벌도 매년 열리고 있다.
영도만의 느낌을 살린 카페 문화 선도
이성광 대표는 영도가 커피로 인해 그 브랜드 가치가 높아졌다는 점은 반갑지만 한편으로는 작은 우려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영도의 카페들이 매력 있는 이유는 ‘도시재생’이라는 테마로 오래된 건물들만이 갖고 있는, 흉내 내기 힘든 오리지널리티를 잘 살렸기 때문이거든요. 그런데 최근에는 카페나 식당들이 너무 대형화되어 영도 만의 ‘동네’ 느낌을 잃어가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나중에 청학동에 저희 가족이 옛날에 살던 집을 개조해 작고 소박한 카페로 만들어볼까 하는 구상도 갖고 있습니다.”
신기카페도 항만을 끼고 있는 영도의 지역 특색을 드러낸 컨테이너 형태로 되어 있고 그 옆에 딸린 잡화점도 옛 건물의 낡은 느낌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신기숲, 신기여울을 비롯해 거제도에 새롭게 오픈할 신기카페도 그러한 분위기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는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오히려 옛것을 새롭게 발견하고 그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려는 뉴트로 트렌드에도 부합 한다. 가족 사업의 일환으로 시작해 의도치 않게 영도 커피 문화 부흥의 최전선에 서게 된 이성광 대표.
이제는 그 누구보다도 커피를 사랑하게 되었고, 매일매일 커피와 카페 인테리어에 대한 공부와 연구를 멈추지 않는다. 자신이 나고 자란 영도가 모든 이들에게 편안한 쉼터를 제공해주는 커피 향 가득한 낙원으로 자리매김할 그날을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