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도의 한가운데 우뚝 솟은 봉래산에는 영도 주민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알려진 영험한 산신, ‘영도 할매’가 살고 있다고 한다. 봉래산 아래 자리 잡은 봉산마을과 남항시장에서 영도에 부는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느껴보자.
비탈길 따라 퍼져가는 예술의 향기
봉래산 아래 마을, 봉래 2동 일대가 바로 봉산마을이다. 이곳에 오면 짭쪼름한 바다 냄새와 한눈에 펼쳐지는 부산항이 우리를 반긴다. 꼬불꼬불 미로처럼 좁은 골목길, 경사가 높은 비탈길, 빼곡히 모인 집 등의 풍경이 과거로 시간여행을 온 듯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정겨운 모습이다.
봉산마을은 70~80년대 조선산업의 호황과 더불어 유입된 조선업 근로자들이 모여 사는 주택지였다. 하지만 조선산업 불황과 뉴타운 해제 등으로 사람들이 떠나고 그곳에 빈집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때 이 마을에서 100여 채에 달했던 빈집. 현재 그중 절반에 해당하는 50여 채가 새로운 젊은이들의 온기로 채워졌다. 영도구와 소셜벤처기업 RTBP가 함께 추진한 ‘빈집 줄게! 살러올래?’ 프로젝트 덕분이다. 이 프로젝트는 참여한 예술가와 소상공인 등에게 빈집을 주거 및 작업공간으로 내주며 원주민과 융화시키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한다.
옛집을 활용하여 색다른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청마가옥
주민들의 삶을 더욱 행복하게
도시재생을 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흔히 모든 것을 싹 다 뜯어고치고 새로운 건물들을 많이 세우는 것으로 오해를 한다. 하지만 도시재생이란 그러한 개념이 아니다. 그곳에서 오랫동안 살아왔던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바꾸고 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래야 새로운 인구도 유입이 되고 그곳이 더욱 활기를 띠게 될 테니 말이다.
봉산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면 그러한 활기가 느껴지는 장소들이 많다. 꽃차 소믈리에가 운영하는 ‘봉산캠퍼스’, 반려식물 및 인테리어 관련 업체 ‘알로하그린’, 칵테일·커피 등을 판매하는 ‘청마가옥’, 나무로 된 소품을 제작하는 ‘나무배의꿈’, 도자기를 제작하는 ‘일인다색’ 등이 그 예이다. 일인다색을 운영하는 부산의 젊은 도예가 김동주 대표는 방문객들이 자유롭게 토우, 식기, 컵 등을 만드는 핸드메이드 도자기 수업과 물레질 체험 프로그램 등을 제공하며 현지 주민 및 관광객들과 교류하고 있다.
청마가옥에서는 칵테일 클래스 및 문화행사를 즐길 수 있다.
새롭게 단장한 전통시장의 활기
조선산업의 쇠퇴와 더불어 한때 42만 명에 이르렀던 영도구민은 현재 11만 1,100여 명으로 줄어들었 다. 그 영향을 받았던 곳은 봉산마을뿐만이 아니었다. 영도 최대의 전통시장이었던 남항시장도 오랫동안 영도 인구의 감소로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다.
하지만 이곳은 현재 시장 상인회를 중심으로 발 빠르게 현대화를 추진하며 다시 부활하고 있다. 2012년에 문화·관광 특화형시장으로 선정돼 시설·경영 현대화 등 하드웨어사업뿐만 아니라 다양한 소프트웨어 사업을 전개했다. 2019년에는 중소벤처기 업부의 전통시장 시설현대화사업으로 길이 196m, 폭 8~17m, 연면적 1,805㎡ 규모의 아케이드를 설치해 새롭게 단장했다. 지난해 5월부터는 3만 원 이상 고객에게 무료배달 서비스도 실시해 고객의 편의성을 높였다.
전기물레 체험을 할수 있는 일인다색
일인다색 김동주 대표의 작업 모습
훈훈한 정과 사람 냄새를 느끼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시장 상인들의 얼굴에도 웃음이 늘어나고 있다. 남항시장에는 원래 부추전, 손칼국수, 생선회, 돼지국밥 등 가격이 저렴한 맛집이 많다. 그 중에서도 재료 본연의 맛을 잘 살린다는 평이 자자한 ‘원조순두부’와 이곳에서 65년째 장사하고 있다는 ‘예단과일’ 등이 남항시장의 터줏대감이다. 어머니의 손맛이 깃든 집밥을 차리고 싶다면 남항시장에서 파는 반찬이 천군만마 역할을 할 것이다. 영도 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싱싱한 해산물로 만든 어묵 또한 별미다.
남항시장은 한국전쟁 당시 밀려 내려온 피란민이 일군 시장이라는 점에서도 특별하다. 그래서인지 남항 시장에 오면 시간의 거친 풍파를 이겨낸 영도 사람 들의 강인한 기백이 느껴진다. 이와 함께, 어려운 시절 서로를 보듬어 안았던 이웃 간의 훈훈한 정과 진한 사람 냄새도 맡을 수 있을 것이다.
65년 전통의 예단과일에서 느끼는 시장의 정
친근하고 산뜻한 이미지의 시장 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