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예능 프로그램 MC, 라디오 DJ, 화가 등 다방면을 넘나들며 ‘종합 엔터테이너’로 활발한 활동을 펼친 조영남.
그가 데뷔 50주년을 기념하는 앨범에 그간 묵혀두었던 속마음을 고이 담아 우리에게 건넸다.
힘든 일도 있었지만 불평하지 않겠다며, 남은 인생 마음 가는 대로 즐겁게 살아보겠다는 그를 만나보았다.
50년 음악 인생을 기념하며
누군가에게는 뜨겁고 호소력 있는 발성으로 감동을 전하는 가수 로, 또 누군가에게는 엉뚱하지만 기발한 유머로 폭소를 안겨주는 방송 진행자나 라디오 DJ로, 또 누군가에게는 화투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조영남은 가수이면서 다방면에서 많은 활약을 펼쳐 오면서 대중에게 늘 가까운 얼굴로 자리 잡았다. 그는 스스로를 ‘화수’라고 칭한다. 화가이면서도 가수라는 뜻이다.
지금이야 가수이면서도 MC도 하고, 연기도 하고 라디오 DJ도 하고 그림도 그리는 등 여러 가지 활동을 하는 연예인이 흔한 세상 이지만 그가 처음 1989년 ‘자니 윤 쇼’라는 토크쇼의 보조 MC로 등장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어리둥절하게 느꼈다. 그런 개념의 연예인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니 윤과 환상의 호흡을 선보이며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끌자 이후 1993년에는 ‘체험 삶의 현장’이라는 프로그램의 메인 MC로도 등장하며 ‘종합 엔터테이너’로서 조영남의 이미지를 확실히 각인시켰다.
그럼에도 그에게 가장 큰 이미지는 ‘노래를 기가 막히게 잘하는 가수’임에는 틀림이 없다. 과거 청춘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세시봉’의 한 축으로서 여전히 그의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이 많고, 공연을 한 번 하면 좌석은 쉽게 매진된다.
그런 그가 데뷔 50주년 기념 앨범을 지난해 말에 냈다. 타이틀곡은 ‘삼팔광땡’이다. “니꺼 내꺼 다 무슨 소용, 너나 나나 빈손 나그네, 세상 잣대 다 무슨 필요, 마음 가는 게 장땡이지.” 이렇게 시작되는 노래다. 구수 하면서도 한층 더 농익은 그의 음색이 듣는 이들에게큰 위안을 준다.
“‘내 나이가 어때서’를 작곡한 정기수 작곡가하고는 ‘삐 뚤빼뚤’ ‘빙글뱅글’ ‘깜빡깜빡’ 같은 노랠 함께 내봤는데 여태까진 큰 호응을 못 얻었어요. 그런데 이번에 들고온 ‘삼팔광땡’이라는 노래는 듣자마자 ‘아, 이건 딱 내노래다.’라는 감이 온 거야. 그래서 이 노래로 데뷔 50 주년 앨범을 내게 된 것이지요.”

무대를 통해 다시 얻은 힘
삼팔광땡은 화투에서 가장 좋은 패이다. 그는 정치인이건 연예인이건 누구나, 모든 국민이 ‘삼팔광땡 같은 좋은 패’가 되고 싶어 한다면서, 새해에는 모든 이들의 삶에 삼팔광땡 같은 행운이 깃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노래를 불렀다고 말했다. 한편, ‘세상 잣대 다 무슨 필요. 마음 가는 게 장땡이지.’와 같은 가사도 그렇 고, 같은 앨범 수록곡인 ‘인생무상’ ‘옴마니 반매훔’ 같은 노래를 들어보아도 이번 앨범은 삶에 달관한 듯 덤덤한 태도가 돋보인다. 어떻게 보면 불교적인 색채가 강한 노래들이다.
“왜 그런 노래들을 부르게 됐냐 하면 내가 지난 6년 동안 어려움을 많이 겪었을 때 불교에 신세를 많이 졌기 때문이죠. 젊었을 때는 기독교가 날 먹여 살렸고, 내가 어려운 처지에 처해 있을 때는 불교가 나를 먹여 살렸 어요.”
특히 부천 석왕사의 고산스님은 그가 그림 대작 논란으로 법정 다툼을 벌이면서 힘든 상황이었을 때 그에게 많은 위로를 전해주었고 4년 연속으로 절에 와서 콘서트를 해달라고 요청을 했다고 한다. 그는 심적으로 많이 지쳐 있는 상황인데다 매번 같은 레퍼토리로 무대에 서는데 사람이 오겠냐고 고사하기도 했으나 스님의 격려로 무대에 설 수 있었다고 한다. 막상 콘서 트가 열리자 수많은 청중이 몰려들었고 그의 노래에 기뻐하고 환호를 보내주었다. 거기에서 그는 심적 치유, 용기, 새로운 힘 등을 얻었다고 한다. ‘인생무상’은 고산스님의 시에 그가 곡을 붙인 노래로 지난해 타계 하신 스님을 추모하는 앨범에도 들어가 있다.

남 부끄럽지 않은 그림 보여주고파
세간에 화제가 되어 많은 이들이 알고 있겠지만, 그는몇 년 전까지 그림 대작 관련 논란으로 법정에도 섰었 다.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그 판례로 인해 현대미술의 제작방식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납득을 하긴 했지만 그 자신은 많은 재산을 잃었고 아직도 그로 인해 부정적인 인식도 다소 남아 있다.
“난 50년 동안 이 나라에서 유명한 가수로 호강을 누리며 별 문제없이 살아왔잖아요. 그런데 고작 5 년 동안 재판 받은 걸 갖고 불만스럽게 얘기하면 쪼잔한 남자가 되는 거예요. 이 나라에 신세를 그렇게 많이 졌으니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 하는 거죠.”
그 사건이 있기 전 그는 그냥 미술을 좋아하는 가수였는데, 법정을 들락날락하는 동안 그는 ‘화가’로 서의 정체성에도 새롭게 눈을 떴다고 한다. 재판이 끝나면 다시 전시를 할지도 모르는데 사람 들이 ‘겨우 이 정도의 그림 때문에 5년 동안 법정 다툼을 했냐.’는 반응을 보이면 안 될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정도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최근 더욱 더 열심히 그림에 몰두하고 있다. 오는 2월 초 남산 UH갤러리에서 그 결실로서 그의 전시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 때문에 지금 공연도 못 하니까 내가 할 일이 뭐 있겠어요. 그림 그리는 것밖에 없지. 요즘에는 클림트, 피카소, 조르주 브라크, 데이빗 호크니등 내가 좋아하는 화가들의 그림을 바탕으로 화투를 덧붙여서 오마주하는 작업을 많이 해요.”
그래서 그의 이번 앨범 재킷에도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를 오마주한 ‘포옹’이라는 화투 그림이 사용되었다. ‘키스’보다는 모든 것을 다 끌어안고 간다는 뜻에서 ‘포옹’을 더 좋아한다며, 이번 앨범의 노래들이 코로나로 지치고 힘든 많은 사람들을 안아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담았다고 덧붙였다

불평할 게 없는 삶
비록 그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는 그것도다 안고 살아가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이다. 널리 알려진 사람에게는 안 좋은 말이 따라다니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그냥 참고 견디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한다.
“신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나의 종씨인 ‘조’물주 께서는 우리에게 기쁨과 슬픔을 교묘하게 반반씩 나눠주신다고 생각해요. 행복도 반, 불행도 반. 외로움도 반, 외롭지 않음도 반. 그런데 나는 지난 50 년간 계속 재수가 좋은 쪽이었으니 요 근래 잠깐 재수가 안 좋은 거라 생각하면 불평할 게 없어요.”
이제 그의 나이도 80세다. 앞으로 남은 인생을 생각하면서 여러 가지 계획을 궁리하기도 했다. 하지만 삶이 늘 계획했던 대로 흘러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 별다른 계획은 세우지 않기로 했다. 그저 벌어 놓은 돈은 좋은 데 다 쓰고 가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하지만 가수로서 다시 무대에 서고 싶은 마음은 여전히 변함없이 크다. 그러니까 앨범도 내고, 방송에도 출연하고, 이런 인터뷰에도 응하는 것 아니겠냐고 한다. 그는 그렇게 마음 가는 대로 그림 그리 고, 마음 가는 대로 노래 부르며 남은 인생을 삼팔광땡 같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치장하고 싶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