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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속 산업 변화와
‘클레이 경영’

팬데믹 국면 속에서 기업 경영은 종래와 같은 안정된 자세의 조준 사격에서 어느 각도에서 튀어오를지 모를 진흙 접시(리스크)를 향해 빠르게 격발해야 하는 ‘클레이 경영’으로의 전환이 필요하게 됐다. 

 

글. 최남수 서정대 교수, 전 YTN 대표이사 

 

K자형 양극화 현상 뚜렷해져


팬데믹이 장기화하면서 미래를 내다보는 기업의 시선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다. 상공회의소가 국내 기업 316개 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0개 중 7개 기업이 현재의 불확실한 경영 환경이 짧게는 올해 상반기까지, 길게는 1~2년 더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팬데믹은 이처럼 기업 심리를 냉각시키면서 산업 자체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몇 가지의 흐름으로 정리해볼 수 있을 듯하다. 먼저 기업의 K자형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졌다. 많은 부문이 코로나19로 큰 타격을 받고 있는 반면에 경영이 호전된 부문도 적지 않다. 업종별로 보면 대면 서비스 업종인 예술·스포츠, 숙박·음식 등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가장 큰 피해를 본 예술·스포츠 업종은 2020년에 성장률이 –30%를 기록했다. 하지만 바이오와 반도체, 온라인 유통업은 코로나 특수를 누렸다. 인터넷 쇼핑과 반도체는 각각 성장률이 31%와 23%의 고공(高空) 행진을 했다. 재택근무와 디지털 소비 등의 바람을 탄 덕분이다.

 

발등의 불, 기후변화 대응

 

산업에 불어닥친 두 번째 변화는 디지털화의 가속화이다. 이미 시동이 걸려있던 4차 산업혁명이 비대면 사이버 공간을 급속하게 파고들면서 디지털이 일상의 인프라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온라인 쇼핑과 원격 근무, 그리고 원격 교육이 대표적 예이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온라인 쇼핑은 급성장했다. 통계청 집계를 보면 지난해 3분기 중 온라인쇼핑 상품 거래액은 모두 36조 4,395억 원으로 전체 소매판매액의 28.0%를 차지해 2019년의 21.4%보다 대폭 상승했다. 특히 전체 온라인 거래액 중 모바일 쇼핑 비중이 72.4%에 달해 ‘내 손안의 쇼핑’이 대세가 됐다. 

 

팬데믹 국면에서 산업이 겪은 세 번째 변화는 기후변화 대응이 발등의 불로 떨어졌다는 점. 최근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 (COP26)가 진통 속에 폐막했지만, 2050년(중국은 2060 년)까지 탄소 순증(純增)이 제로 상태인 탄소중립을 달성하자는 글로벌 공감대는 확고한 상태다. 이런 추세에 맞춰 우리 정부도 2030년의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NDC)를 종전의 26.3%(2018년 대비)에서 40%로 올려 국제 사회에 공표했다. 기업들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지만, 탄소중립을 향한 글로벌 시계는 이미 2050년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해 ‘진정성 있는 참여’가 불가피해졌다.

 

공급체인 불안에도 대응해야

 

기업들은 이와 함께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공급체인의 불안이라는 대형 리스크에 직면하게 됐다. 세계 곳곳에 펼쳐져 있는 공급체인 중 일부에서라도 코로나 감염 등 문제가 생기면 전체 가치 사슬이 마비되면서 생산을 멈추거나 크게 줄여야 하는 비상 상황을 경험했다. 기업들은 이제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원료나 부품의 공급원을 다변화하고 국내 조달원도 확보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하게 됐다. 공급체인의 생산 상황을 실시간 모니터링해 위기 조짐에 선제 대응할 수 있는 조기경보체제의 구축도 중요한 과제로 부각됐다.

 

사격 경기 종목에 클레이 사격이 있다. 다양한 각도로 방출되는 진흙 접시를 재빠르게 맞춰야 하는 경기이다. 사대(射臺)를 옮겨가며 사격해야 하기도 하고 한꺼번에 두 개가 날아오는 때도 있다. 팬데믹 국면 속에서 기업 경영은 종래와 같은 안정된 자세의 조준 사격에서 어느 각도에서 튀어오를지 모를 진흙 접시(리스크)를 향해 빠르게 격발해야 하는 ‘클레이 경영’으로의 전환이 필요하게 됐다. 팬데믹, 급속한 디지털화, 기후변화 등으로 경영의 불확실성이 심화된 상황에서 짙은 안개를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돌출되는 리스크에 신속하게 대응하며 상황에 따라 진로를 수정해가는 민첩성과 유연성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