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최남수 서정대 교수, 전 YTN 대표이사
직원을 대하는 기업들의 생각이 바뀌고 있다. 직원의 마음을 얻는 일이 관계 유지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회사의 가치를 높이는 경영 성과로 이어진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직원 살림까지 관리하는 페이팔
온라인 결제 시스템을 운영하는 미국 기업인 페이팔은 팬데믹 기간 중 직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직원 중 3분의 1이 살림살이가 빠듯한 상태임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중요한 생활비를 쓰고 세금을 낸 다음 남은 돈인 순(純)가처분소득 비율이 4~6%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페이팔은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직원 가계의 순가처분소득 비율을 20%로 올려주기로 하고 즉시 행동에 들어갔다.
페이팔이 동원한 방법은 네 가지이다. 먼저 건강관리 비용을 지원해 이 비용이 60%가량 줄어들도록 도왔다. 직원 모두에게 주식도 지급했다. 임금 수준도 직원들이 살만한 수준으로 올려주었다. 또 직원들에게 금융 교육을 실시해 재무 설계를 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결과는 아주 긍정적이었다. 현재 순가처분소득 비율이 18% 미만인 직원은 한 명도 없다. 페이팔은 올해 안에 이 비율을 당초 목표대로 20%로 끌어올릴 생각이다. 페이팔의 이런 조치로 직원들은 생계를 유지하는 스트레스가 줄어들었다고 얘기하고 있다. 당연히 이직률이 떨어지고 업무에 대한 열정도 높아졌다는 평가다. 페이팔은 직원, 소비자, 주주, 정부, 사회가 자사의 5대 이해관계자인데 이 중 직원이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직원들이 생활이 안정돼 업무에 헌신하면 고객에게도 열정적으로 대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물론 이런 일은 아무 기업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재무적 여력이 있어야 가능한 복지지원이다. 하지만 페이팔의 사례는 기업이 직원을 얼마나 중시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ESG(환경, 사회적 책임, 투명경영)를 주도하고 있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은 올해 초 투자대상 기업에 보낸 ‘자본주의의 힘(The Power of Capitalism)’이라는 제목의 서한에서 직원과 강한 유대를 맺은 기업은 팬데믹 기간에도 이직률이 낮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핑크 회장은 거꾸로 직원에게 잘해주지 않는 기업은 생산성이 떨어지고 기업문화가 훼손되는 등 스스로 위험을 키우게 된다고 경고했다.
경영 성과로 이어지는 직원 존중
그동안 ESG 중 환경에 관한 관심이 커지면서 과소 평가돼온 게 있다. 바로 사회적 책임을 뜻하는 ‘S’이다. S는 한 마디로 사람, 즉 이해관계자를 존중하는 경영을 뜻한다. 많은 기업의 위기는 S 관리의 실패에서 비롯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이해관계자 중 직원의 중요도가 매우 높다는 점이다. 지속가능발전소가 펴낸 ‘2021 ESG 사건사고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ESG 관련 사건 사고 중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직원’이었다. 과로사, 직장 내 괴롭힘, 성차별 등이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이와 관련해 주택담보대출 중개 기업인 베터닷컴(Better.com)의 사례는 직원을 사려 깊게 대하지 않으면 얼마나 큰 위기를 맞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회사의 CEO 비샬 가그는 지난해 12월 1일 직원 900여 명을 화상회의에 초대한 다음 “이 회의에 참여한 사람은 모두 해고 대상자”라고 일방 통보했다. 이 회의가 시작된 지 3분 만에 직원들은 내부망과 이메일 접속이 모두 끊겼다. 피도 눈물도 없는 CEO의 냉정함에 대해 여론의 비판이 쏟아졌다. 결국 비샬 가그는 일주일 만에 휴직에 들어갔고 관련 임원 3명이 옷을 벗고 회사를 떠났다. 함께 일한 직원에게 회사의 경영 실패에 대해 사과한 다음 적절한 지원을 하며 따뜻하게 ’이별‘하는 일을 외면한 이 결정은 경영진에게 그대로 부메랑이 돼 돌아갔다.
정반대로 직원을 존중해 업무 만족도가 높은 기업은 산업 평균보다 주가 수익률이 2.1%가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펜실베이니아대학 와튼 스쿨, 알렉스 에드만스 교수). 좋은 경영 성과를 얻고 싶으면 직원의 마음부터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을 많은 사례가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