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박기옥 마린제니스 PB
코로나19 장기화 및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 곡물 가격이 상승해 애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있다. 이는 ‘농업(Agriculture)’과 물가 상승을 의미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로, 곡물 가격 상승 때문에 일반 물가가 상승하는 현상이다.
전쟁으로 곡물 가격 급등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세계 각국에 밀, 옥수수를 공급하는 주요 수출국이다. 두 나라가 전 세계 밀 공급량 중 약 30%, 옥수수는 20% 정도를 차지한다. 농업 환경이 열악한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 우크라이나가 ‘유럽의 빵 바구니’로 불리는 이유다. 이번 전쟁으로 많은 국가가 식량 안보를 위협받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곡물 생산에 차질이 생기면서 식료품, 에너지 등의 물가가 급등해 생활고를 겪고 있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 주요 수입국 내 정치적 불안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농부들이 종자, 비료를 제때 구하지 못해 봄철 파종 시기를 놓쳤고 아울러 우크라이나 항만 인프라 파괴, 흑해 탄광 붕괴 등으로 인해 곡물 수출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올해 우크라이나의 옥수수 수확량은 1,900만 톤으로 지난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되며, 농산물 가격은 당분간 계속 오를 것으로 보인다.
비료 가격 상승도 영향 미쳐
비료 가격의 상승은 바로 곡물 가격의 상승으로 바로 이어지기 때문에 곡물 가격 예측 시 비료 가격에 대한 변동 예상은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다. 러시아의 경우 전 세계에 13% 물량의 비료를 공급하는 주요 수출국이었지만, 올해 3월 비료 수출을 전면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비료 공급량이 줄어들게 되면 당연히 비료 가격에 대한 가격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고, 농민들도 농작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비싸진 비료 가격으로 농작물의 생산 단가가 계속 오르고 있어 농가에서는 비료를 덜 쓰기 시작했고, 전 세계 곡물 수확량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곡물, 식품 가격의 독특한 특징
곡물은 수요보다 공급이 가격에 미치는 영향이 커서 공급에 문제가 생기면 가격 변동성이 커진다. 경기에 따라 수요 변화가 큰 에너지나 비철금속과는 달리 곡물은 수요가 매우 꾸준한데, 사람에게 식품은 생존과 직결되는 기본 욕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급 계절성은 다른 원자재에 비해 훨씬 강하다. 원유와 천연가스, 비철금속은 계절에 상관없이 채굴이 가능하지만, 곡물은 파종하고 수확하는 시기가 정해져 있다. 따라서 파종이나 수확기에 문제가 생기면 공급에 치명적이다. 그런 점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곡물의 공급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쟁의 영향이 에너지에서 곡물로, 유럽을 넘어 글로벌 곡물 가격 상승으로 확산되고 있다. 농산물 시장의 구조적인 변화, 이로 인한 농산물 가격 상승, 공급 차질, 비료 가격 급등, 수출 제한 조치는 식품 가격의 상승세를 지속시킬 것이다. 전 세계 물가가 높은 수준에 머무를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먹거리 가격이 물가 상승을 주도하는 애그플레이션 현상은 올 하반기 더욱 두드러질 전망이다. 전 세계 식량 공급망 위기로 자국 소비를 우선하기 위한 수출 제한 조치가 앞으로 더 빈번하게 일어날 수 있고 개별업체의 대응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한 시기다. 곡물 가격은 식품 가격에 시차를 두고 반영되므로 애그플레이션은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켜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