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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결코 쉽게 쓸 수 없는 말!

글. 장한업 이화여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흔하게 사용되는 말이지만 그 뜻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단어의 원래 뜻을 잘 알고 사용해야 정확한 소통이 되는 건 당연한 일. 이번 호에서는 자주 사용하지만 결코 쉽게 사용할 수 없는 말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학문의 전당이 된 아카데메이아 


우리는 ‘아카데미’라는 말을 참 많이 써요. 동네 작은 미술학원도 아카데미라고 하고, 상가 음악학원도 아카데미라고 하니 말이지요. 하지만 최초의 아카데미는 “기하학을 모르는 자, 이 문을 들어서지 마라”고 할 정도 높은 수준의 학문의 전당이었어요.

아카데미라는 말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카데무스(Akademus)라는 사람의 이름에서 유래한 말이에요. 그리스 사람들은 아카데무스가 살던 동산을 아카데메이아(akademeia)라고 불렀고, 이 단어가 라틴어로 들어가 아카데미아(akademia)가 되었고, 15세기에 영어로 들어가 오늘날처럼 아카데미(academy)가 된 것이지요.

그렇다면 아카데무스가 살던 동산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플루타르크 영웅전>에는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것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아요. 테세우스와 페리토오스는 스파르타 신전에서 춤을 추는 헬레네를 보고 반해 그녀를 납치해요. 사람들이 헬레네를 구하러 추격해 오자 이 두 사람은 그녀를 데리고 테세우스의 고향이 있는 펠로폰네소스로 도망쳐요. 이렇게 추격자를 따돌린 두 사람은 누가 헬레네와 결혼할지를 결정하기 위해 제비뽑기를 하지요. 여기에서 이긴 테세우스는 헬레네를 차지하지만 50살인 테세우스에게 고작 12살인 헬레네는 너무 어리다고 보고 하인들이 헬레네를 잘 보살피게 해요. 그리고 그 어느 누구도 헬레네가 있는 곳을 말하지 말라는 함구령을 내리지요. 

얼마 후 쌍둥이 형제인 카스토르와 폴리데우케스가 누이인 헬레네를 찾으러 아테네로 와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를 물었어요. 함구령을 받은 사람들은 당연히 헬레네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대답하지요. 이에 격분한 두 사람은 군대를 이끌고 아테네를 공격하겠다고 협박을 해요. 이때 아카데무스가 나타나 그녀가 있는 곳을 말해줘요. 아카데무스 덕분에 쌍둥이 형제는 누이를 찾을 수 있었고 평생 그 은혜를 결코 있지 않았다고 해요. 스파르타가 아테네를 침공할 때도 아카데무스가 사는 동산인 아카데메이아는 건드리지 않을 정도로 말이지요. 

시간이 흘러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이 아카데메이아에 사람들을 모아 놓고 철학, 천문학, 수학, 생물학, 정치학, 윤리학 등 다양한 주제를 가르쳤어요.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훌륭한 인재를 많이 배출한 이 학문의 전당은 529년 동로마제국 유스티니아누스 대제가 폐교시킬 때까지 이어졌지요. 하지만 이것은 중세 이후 유럽에서 부활해 오늘날 아카데미가 되었어요.

 

 _아카데미상 트로피

 

진정한 의미의 아카데미 


아카데미의 역사에서 뺄 수 없는 것은 1635년에 프랑스 리슐리으(Richelieu) 추기경이 설립한 아카데미 프랑세즈(Académie française)에요. 1635년 1월 29일 루이 13세가 내린 칙허장은 이 기관의 목적을 “우리 언어에 확실한 규정을 부여하고 그것을 순수하게, 우아하게, 예술과 학문을 다룰 수 있게 만드는 것”이라고 밝히지요. 이 기관의 노력 덕분에 프랑스어는 오늘날처럼 정교하고 우아한 언어로 발전할 수 있었어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 아카데미 프랑세즈는 총 40명의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이들은 시인, 소설가, 극작가, 철학자, 역사가, 과학자 등 매우 다양하지요. 한 자리가 비면 회원들이 상의하여 새로운 신입회원을 선출하는데, 그때는 국적이나 자격 등은 따지지 않고 프랑스어를 빛낸 공적이 있느냐 없느냐만 본다고 해요.

이런 기원과 역사를 비추어 볼 때, 아카데미는 결코 함부로 쓸 수 있는 말이 아니에요. 조선시대 집현전이나 요즈음의 대한민국학술원 정도는 되어야 진정한 아카데미라고 할 수 있지요. 앞서 말했듯이 우리나라에서는 이 말을 너무 쉽게 사용해요. 학문적이라기보다는 상업적인 말이 되어 버린 것이지요. 저는 이것을 ‘언어적 허영’이라고 불러요. 이런 언어적 허영은 가능한 삼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Tip 아카데미상은 학술상? 


오스카(Oscar)상으로도 불리는 아카데미상은 매년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어요. 영화상의 이름이 왜 아카데미상이 된 걸까요? 

이는 주최 기관인 미국 영화단체 ‘영화예술과학 아카데미(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and Sciences)’의 이름과 관련이 있어요. 1927년 영화사 사장인 골드윈 메이어는 파티를 개최해 영화협회의 필요성과 영화상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고, 참석자들은 그해 여름 아카데미를 설립했지요. 2년 뒤인 1929년 5월 16일 제1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이 열렸어요. 그 시작은 미약했지만 지금은 각국에서 생중계를 진행할 정도로 권위 있는 별들의 잔치가 되었습니다.